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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Dec 03. 2020

[산티아고 순례길]  힘들어도 꽃 같은 인성은 피어난다

[11일] 비아나에서 로그로뇨(Logroño)까지

다음 날 보니, 비아나는 생각보다 규모가 있었다. 윗 지대는 순례자들이 머물기 좋은 곳이었다. 화장품들을 파는 가게가 보이자 세미가 얼른 들어섰다. 원래 까무잡잡한 피부인 듯했는데, 햇살에 타서 점점 더 진한 피부가 됐다. 여태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걸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탄력 잃는 피부로 난리를 치는데, 세미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했다. 순례길에서 선크림은 기본이다. 보통 햇살이라야 말이지, 버닝 그 자체니까! 아직 해가 미치지 않은 골목 사이를 걸어갔다.

순례길을 나서는 사람들이 골목 여기저기에서 분주한 모습이다. 우리가 저지대 숙소 주인장에게 눈총을 받는 사이, 다른 순례자들은 이 높은 지대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했던 것이다. 여기서 하루를 지냈더라면 비아나의 매력에 흠뻑 빠졌을 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신기한 일은 이렇게 많은 순례자들이 출발 이후 다 어디로 가는지, 길 위에서 늘 혼자일 때면 나 혼자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착각에 놓인다. 세미와도 출발은 같이 해도 길 위에서는 각자도생이다. 


마을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골목에서 한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순례자들끼리 출발할 때 파이팅 하자는 의미 치고는 뭔가 목적이 있는 듯한 과한 미소! 음, 뭐지? 이 아저씨, 자기랑 얘기 좀 하잖다. 뜬금없이, 기습적으로, 성경구절을 읽어준다. 잠시 서울 도심 한복판을 누비신다는 그 '도를 아십니까' 양반들이 오버랩된다. 그는 미국 개신교인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그는 너무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스탠팅 코미디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우리 앞에 서서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댔다. 아침 응달 골목, 바람까지 불어서 유난히 추웠다. 그가 서서 말을 계속하길래 나는 천천히 골목을 걸어 나갔다. 그가 나를 마크하듯 뒷걸음질로 말을 했다. 

나는 멈춰서 그의 눈을 바라봤다. 그는 천연덕스러운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최대한 그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희 배낭이 무거워요. 이제 출발해야 합니다."

"아! 그래요. 제 얘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세요."

"골목 바람도 차요. 해가 있는 쪽으로 가고 싶어요."

"그럼 따뜻한 카페로 갈래요?"

나는 인상을 조금 구겼다. 그러자 그가 한 발짝 물어서더니, 이제는 세미에게 말을 걸었다. 세미는 거리낌 없이 그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같이 움직이는 사람인데, 한 사람이 끊어놓은 수다를 다른 사람이 이어서 하고 있다. 결국 계속 목에 서서 그 남자의 얘기를 듣고 있는 거다.


"세미, 이제 가야지!"

내가 아무리 눈치를 줘도 세미는 오히려 그의 말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장벽 없는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다. 성경 아저씨는 내 눈치를 보다가 슬쩍 곁눈질로 말했다.  

"저기 카페로 가서 얘기해요. 저 카페 내가 잘 알아요. 갑시다."

"금방 아침을 먹고 와서 커피를 더 마실 필요가 없어요."

완곡히 거절했지만 그는 작정을 한 듯 계속 말을 했다. 그나마 제안한 카페에 가지 않으면 계속 골목에 세워둔 채 수다 감옥에서 놔주질 않겠다는 듯! 빨리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은 나와 달리, 세미는 한가롭기만 하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왜 응달 골목에서 덜덜 떨고 있어야 하는지! 


그가 다시 성격 좋은 사람처럼 말했다.

“춥죠? 나도 추워요! 그러니, 카페에 갑시다. 나도 추워서 커피 한 잔 마셔야겠어요. 거기 주인장을 내가 잘 알아요. 그러니까, 당신들은 커피 안 시키고 앉아만 있어도 뭐라고 하지 않아요.”

아, 이게 무슨 말인가? 주인장을 잘 알아서, 커피를 훌륭하게 내려준다든가, 양을 많이 준다든가, 서비스를 줄 거라든가, 뭐 그런 종류가 아니고, 주인장을 잘 알아서 커피 안 시켜도 욕 안 먹을 테니, 자기 커피 마시는 거 구경이나 하면서 일방적인 수다를 들어달라? 사실 그가 공짜로 커피를 사준다고 해도 꺼림칙해서 마다했을 텐데, 좀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커피 사달라고 조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양반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겠다고 단호하게 말해야지 싶었는데, 세미가 이미 저항 없이 그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아, 세미 왜 그러냐! 완
전 홀렸네! 짧은 순간, 세미를 두고 먼저 가버릴까 고민했지만, 어찌 그러겠는가. 성경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럴 수도 없었다. 커피숍에 들어가자 그는 정직하게 자신의 커피만을 시켰다. 주인장의 눈빛을 보니, 뭐야, 또 누굴 데려온 거야, 하는 눈빛이지, 결코 그가 커피를 많이 팔아줘서 우리는 좋은 친구, 라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가 확실히 무슨 종교인지 들어봤지만, 뭔가를 제대로 말하지 않고, 계속 성경구절만 내세웠다. 아무래도 더는 시간을 뺏기면 안 되겠다 싶었다. 어차피 까미노 길에서 주님을 만나는 일은 다 똑같으니! 


나는 이미 가톨릭이라고 말했다. 까미노 길에서 가톨릭이라고 말하는 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 세미야 말로 종교가 없다더니, 이제 좀 알아볼까? 하는 분위기로 경청하는 듯했다. 나야말로, 범우주론적 종교관으로 어떤 종교인들 선입견 없이 봐왔던 사람이지만 공격적인 전도를 하는 이들에게는 마음이 안 갔다. 내가 이제 떠나자고 종용하자 그가 단념한 듯 성경 구절 하나만 더 듣고 가란다. 그리고 사진도 찍자고 하고, 메일 주소도 주고받자고 했다. 약간 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어딘가에 보고용으로 확보할 자료들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세미가 어느새 내가 그와 메일 주소를 주고받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왜 이 사진을 찍나 싶었다. 혹시 현란한 영어 솜씨로 모종의 거래? 나 내일, 배 타고 뭐 잡고 다는 건 아니겠지? 나는 곧바로 귀를 막다시피 하며 카페 문을 열고 나왔다. 안 맞아! 어제 숙소 주인장부터, 비아나는 나랑 기운이 안 맞나 보다. 마을은 매력적인데 사람들과 결이 안 맞네!



로그로뇨까지만 가자


비아나에서 로그로뇨까지는 10킬로 조금 안 되는 거리다. 12킬로를 더 걸어서 나바라떼까지 갈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로그로뇨를 그냥 지나친다는 게 섭섭했다. 대도시의 포스,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으니! 무엇보다 20킬로 넘는 일정을 소화하려면 일찍 출발했어야 했다. 남보다 느린 걸음인데 오늘은 출발까지 늦었다. 세미의 무릎 때문에라도 오늘은 그냥 로그로뇨에서 지내자 싶었다. 원래 이틀 정도 묵고 가는 곳인데, 하루 동안 충분히 둘러보는 걸로 만족하자 싶었다. 


다시 일정을 조절하니, 시간이 생겼다. 로그로뇨까지 가는 거면 천천히 가도 됐다. 그런데 물을 많이 먹어서인지 갑자기 급했다. 적당한 장소가 나오길! 아, 드디어, 좁은 오솔길, 큰 나무, 망 봐주는 친구, 음, 역시 세미!

“멈추시오! 거기 딱 멈추시오!”

오늘도 두 팔 벌려 사람들을 막아 세우는 세미! 잠깐이라 다행이지만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 세미는 내가 볼 일을 볼 때마다 만방에 고하노라,였다. 세미의 적극적인 모습, 음, 마음에 든다. 진짜, 마음에 드는데, 살짝 창피한 건 있네? 어쨌든 땡큐야!






<알아두면 좋아요>

로그로뇨(Logroño)는 산업화 시설이 많은 도시로 구 시가지에는 중세 느낌의 흥미로운 건물들과 가죽 공예들, 이 고장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선술집이 있다. 입구 석조 다리에서 보는 도시의 수평선은 멋을 더한다. 상점과 카페가 밀집한 엘 에스뽈론과 그란 비아 주변은 밤이 되면 펍과 디스코텍이 호황을 이룬다. 매년 1월 브레똔에서 열리는 연극과 콘서트의 축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열리며, 국제 연극 페스티벌도 이 도시의 주요 문화 행사이다.                         

-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




삶에 있어 배고픈 나그네가 된다는 것


로그로뇨는 크고 평온한 도시다. 하루 이틀 묵을 만큼 매력이 있는 곳이다. 너무 느리게 온 탓에 차마 더 머물 수 없었지만 저녁식사는 근사한 곳에서 먹기로 했다. 어중간하게 도착하면 낮잠 자는 시간, 시에스타에 걸린다. 대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시간에는 식당이 문을 닫는다. 늦은 점심은커녕 커피 조차 마실 곳을 찾지 못해서,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어린이 전문 서점 진열장 앞에 섰다. 한참 동안 진열장에 놓인 책들을 들여다봤다. 언젠가 내 책도 유럽의 한 책방에 꽂힐 날이 있으리라는 기대 반 망상 반으로 기념 샷 찰칵! 배가 고프다. 글을 써서 벌어먹지 못한 현실이 배가 고픈 건지, 늦은 점심을 기대하며 걸어온 대도시에서 배를 곯아서 배가 고픈 건지! 어쨌든 둘 다 처량한 일!






<알아두면 좋아요>

로그로뇨 대성당으로 불리는 산따 마리아 라 레돈다 대성당(Catedral Santa Maria la Redonda)은 15세기에 만들어진 성당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되었으나 고딕 양식의 요소도 보인다. 측면에 소성당이 위치하고, 지붕은 궁륭으로 덮여 있다. 늘씬한 쌍둥이 탑이 바로크 양식이다. 성당 안 ‘십자가의 길’은 미켈란젤로 작품으로 전해진다.             

-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


기도의 응답으로 
식당이 안내됐다.


로그로뇨 대성당 앞 광장, 현지 관광객들이 가이드 설명을 듣고 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단체 관광객은 처음 본다. 그들이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모습이 왜 그리 신기하게 보였는지! 나이 드신 분들이 단체로 관광하며 사진 찍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그들을 구경하며 성당 앞 광장을 배회했다. 정말 배가 고프다. 성당 쌍둥이 탑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배 고파요. 문 연 식당 어디 없나요? 네?"

배가 고프니 별 짓을 다한다 싶었다. 혹시라도 문 연 식당이 있지 않을까? 배가 고파도 계속 찾아보자 싶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익숙한 얼굴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앗! 아일랜드 친구 주벨이다. 그녀는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자기도 문 연 신당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희소식 하나를 알려왔다. 누군가 낮잠 시간 없이 영업하는 식당을 알려주었다는 것! 아! 신이시여! 제 하찮은 기도를 들어주셨군요. 설마 이걸로 제 소원을 퉁치시면 아니되옵니다. 아까는 배가 고파서 한 말이니까요. 아셨죠?  



주벨이 앞장서 걸었다. 이 길 상가 쪽에 있다는데, 관광도시니 문 연 식당 하나 정도는 있는 게 맞지 싶었다. 오, 괜찮아 보이는 식당 앞, 안내판처럼 음식 그림이 그려진 메뉴판이 문 밖에 나와있다. 순례자 코스 가격도 있었다. 주벨이 대충 훑어보더니, 여기 괜찮다며 들어가자고 했다. 

깔끔한 식당, 이 시간에도 우리처럼 배고픈 사람들이 많다니! 테이블에 사람들이 차 있었다. 이 시간, 다른 식당들이 문을 닫아서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메뉴판에 스페인어가 한가득이었다. 영어만 아는 관광객들에게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주벨은 염려 말라며 메뉴판을 대충 읽더니만 우리에게 영어로 설명해줬다. 주벨은 모국어 말고도 영어와 스페인어를 비롯 서 너 개를 더 알고 있는 눈치였다. 유럽은 국경을 쉽게 넘나 들며 다양한 언어를 접하니,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여러 언어를 배울 기회들이 많은 듯했다. 내가 만났던 많은 이들이 두세 개 언어를 구사하는 게 흔했다. 오히려 영어를 몰라서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 중에도! 

“메뉴 이거랑 이거 먹자.” 

“좋지!”

주벨이 능숙한 스페인어로 주문을 마쳤다. 내용물이 뭔지 제대로 알고 먹은 지가 언제였던가? 대충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정도만 알고 사진대로 고르거나, 순례자 코스 외에는 추천을 받아서 먹기도 했다. 사진 없는 음식을 시킬 때 혹시라도 잘못 시켰을까 봐 조마조마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영어가 구비되지 않은 메뉴판도 심심치 않게 있으니!


주벨은 빰쁠로나 때와 다르게 적극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행여 누군가와 친해지는 게 방해가 될까 봐 경계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한 번 봤다고 그런 건지, 외롭게 길을 걸어와서인지, 적극적이었다. 그녀가 열심히 얘기할 때는 삼백안이었다. 눈알 굴리며 이야기를 펼치는 모습! 그 눈알에 압도되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절로 리액션을 취하게 되는 마력이 생성되는 듯했다. 그런데 오늘 세미가 기운이 없다. 우리 모두 빰쁠로나 숙소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때 둘 사이에 직접적인 대화가 없어서였는지, 나를 사이에 두고 좀처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빰쁠로나에서 주벨과 긴 얘기 나눈 것도 없었다. 서로 빨래를 함께 돌렸다는 것, 샤워부스에서 옷 갈아입었다는 것? 아, 복도에서 함께 사진 찍은 것도 있다. 주벨이 식사 전부터 텐션을 올려서인지, 밥을 먹어서인지, 비로소 기운이 났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도 한참 동안 얘기도 나눴다. 주벨은 다른 숙소에 머문다고 했다. 그녀도 내일 이곳을 떠날 거라고 했다. 또다시 만나겠지 싶어서 가벼운 인사로 헤어졌다.


 

순례자도
호텔을 기웃거릴 수 있는 이유!


우리식으로 명동 한가운데 정도 되는 번화가에 호텔이 하나 있었다. 로비 입구에 순례자를 위한 숙박비가 쓰여있었다. 우리가 짐을 놓고 온 알베르게와 값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작 알았더라면 호텔에서 제공하는 순례자를 위한 숙소에 머물렀을 텐데! 아쉬웠다. 간혹 수준 있는 호텔에서도 순례자를 위한 배려 차원으로 순례자 숙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숙소가 따로 마련되었더라도 기본적인 식사나 이용시설은 호텔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아, 호텔이라고 해서 우리식 호화 호텔처럼 찬란한 정도는 아니다. 소박하고 아담한 수준이지만 나름 호텔은 호텔인 곳이다. 대도시 호텔에서는 일정 객실을 순례자들에게 제공하는 일도 있었다. 대부분 공립 알베르게를 선점하려고만 했지, 호텔에 있는 알베르게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호텔은 아무리 싸도 비싸지 싶었다. 하지만 호텔에서 제공하는 알베르게 역시 순례자들을 고려한 수준이라는 게 매력이다. 머물 수만 있다면 한번쯤 머물러 보는 것도 좋으리라. 물론 극히 드물고 객실 수도 적다는 것, 성수기에는 아예 꿈도 꿀 수 없을지도!




아름다운 유럽 거리에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도시를 대충 둘러보고 큰 슈퍼에 들렀다.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정리하고 나간 까르프가 여전히 이곳에서는 우뚝 서있었다. 이렇게 크고 신선하고 싼 식재료들을 보기만 하고 사질 못하다니! 치즈와 우유, 빵과 초콜릿, 과일 정도만 간단히 사서 나왔다. 원래 내일 아침과 간식을 사는 용도였지만, 점심을 거하게 먹어서인지 저녁 식사도 간단히 슈퍼에서 사 먹자 싶었다. 나는 샐러드 종류를 샀고, 세미는 오믈렛을 샀다. 잘 구워진 빵도 더 샀다. 대형마트 빵도 제과점 못지않게 싸고 맛있었다. 그래서인지 큰 마트에 가면 빵을 사곤 했다. 


비닐봉지에 담긴 간식거리, 도시를 가로지르며 걷자니 조금 쓸쓸해졌다. 기세 꺾인 햇살은 오늘이 지나면 볼 수 없는 로그로뇨 거리를 낭만적으로 비추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유럽풍 건물, 예쁜 카페들을 보면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언젠가 이 도시에서 여유롭게 책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까. 문득 내가 왜 이 순례길을 걷고 있는지,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 마음 둘 곳 없어 눈물이 핑 돈다. 중간에 벤치가 있는 공원 같은 곳에 잠시 앉았다. 벼룩시장 같은 곳이 보인다. 중고서적을 전문적으로 팔고 있었다. 관심은 갔지만 미련을 갖지 말고 지나치기로 했다. 책 한 두 권 사는 것도 낭만이겠지만, 지금은 배낭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가진 것을 덜어내지 못한 숙제 때문에!       

 



힘들어도 꽃 같은 인성은 피어난다.


숙소로 돌아왔다. 일찍 도착한 덕에 나는 1층 침대를 선점할 수 있었지만 세미는 그냥 내 위로 2층 침대에 있겠다고 했다. 내게도 남모르는 사람이 오르내리는 것보다는 그 편이 좋긴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아마도 다른 이들에게 1층 침대를 남겨두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세미는 천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큰 방에 침대가 빼곡히 놓이고, 배낭을 따로 놓아두는 선반들도 있어서 조금 복잡해 보였지만, 오랜만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 있으니 좋았다. 


맞은편 2층 침대에는 아까부터 팬티 바람으로 누워 있다가 후다닥 나름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믿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보통 내일 입을 옷을 미리 입기 마련인데, 아마도 빨아놓은 옷이 마르지 않았거나 원래 잘 때 아무것도 걸치기 싫어하는 부류 일지 모르겠다. 그들은 침낭을 덮고 자서 아침에 옷을 입고 가는 것이다. 별로 놀랄 것도 없다. 대략 방이 여러 개로 나뉜 곳은 남녀 혹은 연령대 또는 동서양 그런 기준으로 나눠 주는 곳도 있지만, 한 방에 들어가는 곳에는 이렇듯 모두 섞여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이런 곳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순례라는 동질감으로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재미가 있다. 내 앞에 있는 1층 침대 아저씨는 양말을 어디에 흘렸는지 모르겠다면서도 나랑 수다를 떠느라 찾을 생각도 안 했다. 혼자 오랫동안 걷다가 모처럼 누군가와 말을 하니 좋은 거다. 또 이건 뭐가, 1층 내 침대로 주인모를 옷들이 떨어져 있다. 이미 짧은 거리를 온 사람들이 구석 켠 침대를 차지해서 우린 사람 구경하기 좋은 문 앞 침대 쪽을 택했다. 그래서인지 시장통인가 싶게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오갔다.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어수선했다. 하필 이곳 통로에 남자들이 몰려있어서 이래저래 남자들과 얘기를 주고받게 된 자리다. 시장통 같아서 목소리 줄이지 않고 얘기하기는 좋았다. 세미는 내 위층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 이 모든 풍경을 관조 중이었다. 


조금 더 비싼 사설 알베르게는 편하고 좋지만, 공립이 주는 일체감은 덜했다. 많은 순례자들이 오픈된 마음으로 서로를 허물없이 대하는 것이 위안이 되는 곳이다. 사설은 아침 식사를 신청할 수 있는데, 공립은 없었다. 자기가 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이 딸로 마련되어 있긴 했다. 음식을 만들면서 다른 순례자들과 친해지기도 한다. 세미와 나 역시 빰쁠로나에서 만나 저녁식사를 해 먹으며 마음을 나눈 친구였다. 하지만 힘든 일정으로 걸어온 날에는 저녁을 만들어 먹는 일이 힘들다. 컨디션과 예산에 따라서 식사를 조절해서 먹을 수 있다. 대충 슈퍼에서 산 음식으로 간단히 먹는 날, 숙소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제대로 차려서 먹는 날, 카페나 바 같은 곳에서 대충 간단히 먹는 날, 좋은 식당에서 순례자 코스로 제대로 먹는 날, 뭐 이런 정도의 차! 순례길에서는 온전히 자신이 모든 걸 결정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을 좀 더 알아가는 것도 같다.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결정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이 길에서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고나 할까?

      

오늘 로그로뇨라는 도시를 그나마 잘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이렇게 여유 있게 도착해서 제대로 둘러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항상 부랴부랴 걷는 길이었다. 이번 순례길은 걷는 데 초점을 두자. 다시 올 날이 있을지 모르지만, 800킬로를 걸어갈 수 있는 데 까지 걸어가 보자. 언제나 꺾여왔던 나약한 인간이 걷는 것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  물론 그 걷는 게 이토록 힘들고 괴로운 일이란 걸 시간이 지나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모두가 이 힘겨움 속에서도 길을 걸어왔구나! 그래, 나와 다르지 않은 당신들, 그래서 순례길에서 사람들이 좋아졌다. 똑같이 아프고 힘들어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그 와중에도 '꽃 같은 인성'을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천사가 되기 위해 관문을 통과 중인 사람들, 이들의 발자취만 따라가도 성공적인 순례가 되지 않을까?


<알아두면 좋아요>

로그로뇨 축제!

뻬스회의 승리 - 매년 6월 11일, 베르나베 성인(San Bernabe)의 축일에 뻬스회는 튀긴 생선요리와 포도주, 빵을 무료로 나누어준다. 축일의 행사는 1521년 6월 11일 프랑스 군인들이 도시를 포위하고 식량 공급을 막으려 했던 사건에서 시작된다. 프랑스 군의 포위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 강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프랑스군이 계획이 실패한 것을 알고 포위를 풀고 로그로뇨에서 후퇴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이다. 

벤다미아 축제 - 9월에 열리는 벤다미아 축제는 마테오 성인을 기리는 축제이다. 포도를 발로 밟아 즙을 내는 이 축제는 가장 좋은 스페인 관광 축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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