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나바라떼(Navarrete) 가는 길
오늘 걸을 길은 약 12킬로! 로그로뇨에서 나바라떼까지! 이제 하루에 20킬로는 거뜬히 걸어야 할 테지만 여전히 하루 10킬로 안팎으로 걷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머문다는 나바라떼를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엽서처럼 예쁜 공원, 관리사무소인가 싶은 건물에 호수 뷰가 있는 카페가 있다. 사람들은 빵과 커피로 느긋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카페 콘 레체와 크로와상을 시키고 얼마간 여유를 만끽했다. 이런 곳에 살면 참 좋겠다. 내내 살면 우울증 걸린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멋진 풍경은 우리의 로망 아니겠는가. 이제 강렬한 해의 위력을 느낄 시간이 다가온다. 볼이 얼얼할 정도로 달아오를 시간, 아침나절에 조금이라도 더 걸어둬야 하리라.
바나나를
전투적으로 먹지 않아야 할 이유
한참 걷다 보니, 임시 대피소 같은 곳이 보였다. 판매대 같은 곳에 사람들이 서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간이 슈퍼인가? 가까이 가보니,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순례자 쉼터였다. 이따금 순례길에서 볼 수 있다더니! 아무도 없고, 덜렁 기부금 통만 있다. 과일과 순례자 상징 조개껍질, 그밖에 물과 책, 더러 사람들이 돈 대신 놓고 간 물품들도 보였다. 나는 바나나를 집었다. 다른 건 별로 당기지 않았다. 공짜라도 막 가져갈 수 없다. 머리카락 무게도 느껴지는 길인데, 그냥 먹고 가야지,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 대개 1유로 정도를 도네이션 박스에 넣는다. 사실 과일값이 싼 곳이니, 사 먹으면 더 쌀 수도 있다. 그저 이 한적한 길까지 가져다 놓은 수고에 대한 감사랄까? 어쨌든 기본 1유로 정도는 넣고 가는 듯했다. 물론 그 이상을 먹으며 대박 기회(?)로 여길 수도 있으려나? 하지만 굳이 그런 마음까지 들진 않을 것이다.
태연스럽게 바나나를 먹고 있으니, 한 순례자가 다가왔다. 나는 꾸역꾸역 먹으며 눈인사를 날렸다. 말로 하면 "꾸엑" 정도로 들릴만큼 입안에 바나나를 구겨 넣고 있는 중! 내 썩은 눈웃음 때문이었을까? 그는 조심스럽게 바나나와 오렌지를 집더니, 나를 바라봤다.
"저기요, 제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요."
어 뭐야, 이 익숙한 도입부? 차비 내지, 소주 값 내지, 라면 값 등등? 그런 요구? 나는 억지로 바나나를 삼키며 경청 모드로 진입했다.
"저기, 그러니까, 도네이션 대신 제 가이드북을 놓고 가면 어떨까요?"
오, 신선한 반전!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관여할 내용도 아닌데, 왜 내게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씹다만 바나나를 우물거려 씹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다시 내 눈치를 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여기에, 이거 놓고, 이거 가져가요.”
마치 내가 총이라도 들고 "어이, 거래는 똑바로 해야지! "라고 협박이라도 하는 듯, 그는 쏘지 말라는 식으로 천천히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너무 바나나를 전투적으로 먹은 탓일까? 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마침 바나나도 깔끔하게 다 삼켰다.
“어, 좋을 대로 해요! 나도 순례자인데 왜 나한테 말해요. 하하하!”
내 실없는 웃음이 청년을 긴장에서 해방시켰는지, 그도 그제야 웃으며 바나나를 까잡쉈다.
아무리 1유로가 없을까 싶었다. 공립 알베르게가 5유로라서 싸다고 호들갑을 떨어도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알베르게에서는 그마저도 안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네이션 알베르게를 공짜 알베르게로 표현하기도 했다. 유럽인이라고 모두 부자는 아닐 테지만 우리보다 사정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순례길 중간중간 힘든 순례자들을 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진짜 돈이 없어서 이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았다. 도네이션 알베르게, 기부 쉼터, 저렴한 식비와 숙소들, 이 모든 게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마련된 품위 유지 제도가 아닌가 싶었다. 가난한 이들에게도 똑같이 길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레이스에 서서 함께 시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길 이후 이들이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으니, 일종의 투자인 셈이다. 모두 힘들다. 나 역시 빠듯한 예산으로 오래 머물 계획을 했다. 순례길에서 아껴서 산티아고 도착 후에 최대한 누려보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순례길을 무사히 마쳐야 이후도 있지 않나 싶었다. 그나마 소박한 순례길에서 고행은 하지 말자! 조금 여유를 가지니, 살이 안 빠졌다. 이게 함정!
영국 BBC는 살아있다.
바나나를 다 먹은 청년은 먼저 길을 떠났다. 마치 일행이었든 뒤따라 갈 테니 먼저 가라고 했다. 도네이션 박스에 1유로를 넣고 돌아서던 차, 누군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쉼터에 나타났다. 그는 근처에 섰던 흰머리 아저씨를 붙잡았다.
“영어 할 줄 아시오?”
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두 팔을 벌리자, 뒤도 안 돌아보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영어 할 줄 아시오?”
“네, 조금 합니다만!”
세미와 내가 나서자 그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행이오. 혹시 나랑 동행 좀 해줄 있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의 상기된 표정 때문에 조금 긴장되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잉? 일은 무슨 일? 그냥 혼자 가기 심심해서 그런 건데?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어서 말할 사람이 없어 심심해!”
아, 뭐냐, 어째 야단스럽다고 했다. 그는 조금 막무가내 스타일이었다.
“난 영국 사람이오. 그대들은?”
각자 소개 시간이 진행되었다. 그가 무척 반가워한다는 건 알겠다. 그리고 시작된 영국식 BBC 뉴스! 마치 내 귀에 리스닝 평가 시험을 내는 듯, 일방적이었다. 미국 사람들이 칭송한다는 그 영국식 발음, 잘 들려서 우리에겐 듣기 좋은 발음이긴 하다. 't' 발음도 명확히 들리니 말이다. 그런데 어째 뉘앙스가 '나 영어 발음 죽이지?' 하고 잘난척하는 모드? 이후, 그의 발음을 두고 칭찬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걸 의식하듯 그는 주변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쩌렁쩌렁 울리는 대화를 했다. 나는 그때마다 귀를 후벼 팠다. 아주 귀에서 피나겠다.
나바라떼로 들어서는 마을 중간에 와인 공장이 있었다. 와인 향이 마을 전체로 은은하게 퍼졌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향 좋은 건 안다. 마을 전체가 향기로 젖으면 저절로 향기 치유 명상이 되겠다 싶었다.
<알아두면 좋아요>
나바레떼는 1195년 알폰소 8세가 양도를 하면서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언덕 위에 위치해 지역 방어의 중요한 도시였다. 성곽 안에는 수많은 중세풍 집들이 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전통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나바레떼의 까미노는 마요르 바하와 마요르 알따 길과 겹친다. 현재 유일한 고대 도기 터가 남아있다. 마을 외곽 언덕에서 가장 높은 로렌소 산을 볼 수 있다. 꼬데스 산과 똘로뇨 산을 볼 수 있는 전망도 훌륭하다.
-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
누군가 밀고 싶으면
2층 침대로 데려가라
드디어 나바레떼에 도착했다. 접수처에 먼저 온 순례자가 등록을 하고 있었다. 관리자들은 비교적 친절한 미소를 가졌다. 어쩐지 노부부 같다. 비교적 일찍 도착했기에 1층 침대를 원했지만, 2층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발이 아파서 1층은 쓸 수 없냐고 재차 물었지만 없단다. 하는 수 없이 침대 번호를 받고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아,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한국분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인데, 세 분이 함께 이동하는 중이라고 했다. 일단 인사만 간단히 하고 자리부터 잡아야 했다. 그런데 내 침대 아, 뭐냐! 벽 쪽도 아니고 중앙에 놓인 난간이 없는 2층 침대였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돌바닥으로 떨어지면? 내 염려를 알고 세미가 자신과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그녀가 받은 번호는 화장실 쪽 구석자리 2층 침대였다. 하여간 갸륵한 친구다. 하지만 누구든 저 불안한 침대는 위험해 보였다. 어째 저런 구조에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았을까? 다른 자리는 없는지 알아봐야겠다. 둘러보니, 아직 사람들이 꽉 차지 않았다. 벽 쪽에 붙은 2층 침대도 더러 있었고, 1층 침대도 빈 곳이 있었다. 그들이 접수 후에 짐을 풀지 않은 것인지! 내려가서 한번 사정이나 알아보자 싶었다. 세미는 말해서 안 되면 자기랑 번호를 바꾸자고 했다. 내게는 고마운 차선책이지만, 나 좋자고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관리자가 자리를 바꿔줬다. 역시 2층이지만 세미와 내가 나란히 화장실 문을 두고 좌우 2층 침대에 배치되었다. 사실 1층 침대는 환자와 노인을 위해서 한 두 개 비워둔다고 쳐도, 애초에 이 벽 쪽 2층 침대를 왜 주지 않았을까 싶었다. 먼저 온 혜택이라는 것도 있는데 말이다. 가끔 자리 배치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것저것 마음에 담아두면 나만 기분 나빠진다. 그래서 마음을 덜어내는 훈련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주어진 것에 적응해보는데, 아무래도 아니다 싶을 때는 사정을 한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잊어버리는 연습! 시정해주면 감사하는 마음도 가져야지! 이 작은 연습이 마음을 닦는 훈련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어쩌다 보니, 세미와 나는 화장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눈 스캔'으로 검문하게 됐다. 사방 벽 쪽으로 쭉 둘러쳐진 2층 침대, 그리고 아까 내 침대가 될 뻔한 가운데 놓인 2층 침대들, 2층 침대는 오르내리기는 좀 귀찮았지만 한가하긴 했다. 내 아래층 침대는 여태 비어있더니, 프랑스 청년 하나가 차지했다. 키가 껑충하게 커서 2층에서도 불편함 없이 대화가 가능했다. 여하튼 2층에서도 그의 큰 키는 돋보였다. 그는 짐을 대충 바닥에 던져두고 침대에 구겨져 있었다. 길이가 커서 침대가 작아 보였다.
고기에 대한 철학
한국인 삼총사 분들은 내게 요리 재료로 소고기를 권했다. 한국보다 질 좋은 소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크용으로 고급을 택하라고 했다. 순례길에서 싸다고만 할 게 아니라, 고급 고기에 돈을 더 들여 먹으라고 했다. 한국에서 그 정도 퀄리티는 훨씬 비싸다는 것이다. 사실 식당에서 사 먹는 것도 아닌데, 요리 재료를 고급으로 사서 먹지는 않았다. 여럿이 모이면 더 싸게 재료값이 들어간다. 굳이 고급스럽게 먹을 거면 식당에서 와인부터 후식까지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사실 일반적인 고기도 한국에서는 비싸지만 스페인에서는 어떤 고기도 만족스러웠다. 그분들은 연륜에서 묻어난 조언을 해준 것이다. 이왕이면 한국에서 먹던 수준으로 싸게 먹을 게 아니라,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먹던 고기 기준 값으로 여기서 훨씬 고급스럽고 맛 좋은 고기를 먹으라는 말이다. 같은 말 같지만 엄연히 다른 말이다. 대충 먹고 다니던 내가 한 번쯤 제대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한 말이다. 나름 고기에 대한 철학이랄까? 소비 패턴과도 연결된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쩌지? 나는 고기 맛을 잘 모른다. 심지어 돼지고기랑 소고기도 헷갈린다. 이러니 비싼 거 사 먹인 보람이 없다는 말도 나오겠지! 어차피 X로 나오는 거, 대충 먹자! 귀찮다. 그래도 용케 상한 고기 맛은 안다는 거, 다행이지 않나?
반짝이는 마을에서
까미노 스텝을 밟다.
도시가 참 예뻤다. 햇살을 잘 받아서인지,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세트장 같은 반짝임이랄까? 어쨌든 에너지가 넘치는 동네 같았다. 살짝 경사진 곳에 위치한 숙소, 슈퍼도, 성당도 가깝지만 오갈 때 짧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그때마다 엇박자로 걷는 순례자들을 보게 된다. 나와 세미 역시 엇박자로 골목을 누볐다. 덩치 큰 남자 하나가 앙증맞은 스텝으로 계단을 오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깔깔깔 웃었다. 어차피 처지가 비슷한 순례자여서 오가는 사람들이 말 걸기 쉬웠다.
"당신의 스텝이 익숙하네요? 이거야 말로 까미노 스텝이죠!"
나 역시 엇박자로 계단을 내려가며 한 말이었다. 그러자 그가 '하하하' 웃어댔다.
“맞아요. 이게 바로 까미노 스텝이네요. 하하하!”
까미노 스텝은 내가 그 자리에서 붙인 이름이다. 다들 발바닥부터 발목, 무릎 어디 하나 성한데 없어서 엇박자로 걷는데, 이곳에서는 유난히 슈퍼 앞을 오르내리느라 걸음이 더 코믹하게 연출되었다. 실제로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을 보고 웃으면 돌 맞아 마땅하나, 같은 순례자라서 처지를 알아서 웃은 것이다. 길 위에서는 정신력으로 버티며 걷다가 마을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려서 엇박자로 걷는데 이곳은 계단 때문에 더 유난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먹겠다고 돌아다니는 모습, 살겠다는 의지라고 봐야 할까? 다들 애쓰며 걸어왔구나, 하루를 열심히 산 흔적이기도 했다. 우린 서로 까미노 스텝을 밟으며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넸다.
모두에게
평화가 함께 하길!
미사 시간을 알아봤다. 모처럼 미사에 참석하려 하자 세미도 갈 거란다. 그녀는 종교가 없지만 성당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기도 장소는 어디나 다 그런 듯하다. 티베트 사원에서도 성당과 똑같은 평화가 전해졌으니! 저녁을 먹고 미사에 가기로 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냉장고에 재료를 넣고 방으로 갔다. 그런데 출입구 쪽 2층 침대에 한국 여인 하나가 뭔가 문제가 있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요는, 발이 아프니 1층 침대를 달라고 했지만 자리가 없다고 했단다. 그런데 더 늦게 온 멀쩡한 사람에게 1층을 줬다는 것! 내 아래층 침대의 프랑스 남자가 화근이었다. 환자도 아니고 노인도 아닌 멀쩡한 젊은 서양 남자에게 1층 침대를 준 것은 동양인 차별로 여겨져서 다시 내려가서 따졌다고 했다. 그래도 별반응이 없어서 화가 난 상태였다. 사실 그녀가 과민하게 반응한 것일 수 있다. 딱히 동양 사람을 배척할 이유가 없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뒤늦게 온 젊은 남자에게 1층 침대를 주는 일은 흔치 않은 듯했다. 남자는 여전히 강인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프랑스 남자가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던 걸로 봐서 그도 아프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까였던 처지라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일일이 따지다 보면 내 기분만 상할 수 있다. 그저 하루만 버티자는 정신! 자고 나면 끝이다, 털어내는 마음이 필요하다. 화제 전환을 위해, 그녀에게 저녁을 먹었냐, 우린 저녁 먹고 미사에 갈 거라고 하자, 그녀가 또 다른 신경 쓰임을 털어놨다. 바로 옆 할머니가 미친 사람처럼 자기를 쳐다보며 욕 한다는 것이다. 보기에 얌전한 커트 머리에 안경을 쓴 백발 서양 할머니였다. 보기에 별 문제없어 보이는데, 왜지? 하는 생각, 아무래도 이 젊은 여인이 예민한 사람인가 싶었다. 세미도 그래서인지 멀찍이 떨어져서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말로 하는데도, 그게 느껴지나? 다른 한국인 삼총사 분들과는 잘 어울리면서 말이다.
영어로 말하는
'나 영어를 못해'
내 아래층 꺽다리 청년이 부스스 일어나 축 처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일찍부터 퍼져있던 청년 때문에 2층으로 오르내릴 때 얼마나 신경 쓰였는지, 괜히 "네 녀석이 왜 1층이야!" 하고 시비라도 걸어볼까? 하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저녁은 먹어야죠?”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 영어 잘 못 해요. 프랑스어 할 줄 알아요?”
“아니오! 봉쥬르, 마드 모아 젤!”
있는 불어를 다 끌어다가 썼더니, 그가 키키키 웃었다. 사실 나도 이 상황이 정말 웃겼다. 예전에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을 때 상대에게 “미안, 나 영어 잘 못해!”라고 말하면 그들이 항상 말했다. “너 지금 뭐로 말하는 건데? 영어로 말하면서 왜 영어를 못한다고 해?” 식이었다. 그도 지금 자기가 영어를 못한다고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 말이나 프랑스 말로 떠느니, 그가 뜨문뜨문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대체로 알아들을만한 영어였다. 나 역시 영어를 죽이게 잘하는 게 아니니! 어쨌든 이럴 때는 몸짓을 동원해 마임식 대화를 나누면 좋다. 눈알을 크게 굴리고 입모양도 최대한 과장해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두 팔과 몸짓, 잘 쓰면 얼추 대화가 된다. 스페인 말만 하는 사람과도 이 바디 랭귀지로 통했으니까.
“나 오늘 까미노 시작했어. 그래서 너무 힘들어!”
"오늘 시작했어? 까미노를?"
생장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길이 일반적인 까미노 루트지만, 대도시에서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유럽권 사람들은 중간에 하다가 가고, 다음에 와서 또 이어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다양한 루트를 이용하는 듯했다. 그도 마드리드에서 와서 중간에 합류하는 길이라고 했다. 이 청년이 오늘, 까미노 첫날이라서 힘들도 아팠나 보구나 싶었다. 첫날의 고통을 알기게 1층 침대의 혜택이 주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그는 그제야 좀 씻고 저녁을 해 먹을 거라고 했다. 나는 세미랑 30분 후에 식당에서 보기로 하고 조금만 쉬다가 가자며 2층 침대에 올랐다.
모처럼
모국어 파티가 터졌다.
프랑스 청년은 시중에서 파는 간이 스파게티를 해 먹었다. 내가 장 봐온 것 중에 이것저것을 건네자, 고마워했다. 나는 쇠고기 구이를 해서 한국인 삼총사 분들과 조금 나누어 먹었다. 그분들이 이미 식사를 하고 넣어둔 재료들을 꺼내 줘 더 풍성하게 먹었다. 세미가 소화가 안 되는지 감자 계란 케이크만 먹고는 고기는 안 먹겠단다.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다.
부엌에 모여서 저마다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이 분주했다. 모처럼 한국 사람도 많고, 세미 외 대만 남자도 있었다. 나나 세미나 모처럼 모국어를 쏟아내는 시간이었다. 대만 남자는 서양 여자애한테 마음이 있는지, 꽃과 케이크를 준비해서 생일을 치러주기로 했단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꽃과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고 준비하느라 떠들썩했다. 저녁에 있을 깜짝 파티란다. 같이 있던 또 다른 서양 친구 말고는 다른 순례자들에게는 배타적이었다. 이해한다. 사랑에 빠지면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 그런데 세미가 이상하리만치 대만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지도 않고 오래도록 얘기하더니, 갈 때도 인사도 없이 그가 가버리게 했다. 그들의 문화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꼬박꼬박 그녀를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게 했다. 서로 얘기를 끝내고 갈 때도 한국사람들은 세미에게 인사를 건네고 갔다. 대만의 젊은 사람들이 세미 또래의 사람들과 다르게 변해서 일까? 아니면 그가 여자한테 정신이 팔려서 그냥 보낸 것일까, 뭐가 됐든 오늘따라 입을 꾹 다문 세미가 이상하다 싶었다. 저녁을 얼추 먹고 미사 겸 동네 한 바퀴를 돌려고 준비하는데, 아까 2층 여인에 있던 그녀가 와서 자신도 함께 미사에 가겠다고 했다. 사실 세미는 아까 그녀가 불만을 터뜨리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는지, 그녀와 함께 나서는 걸 꺼려하는 눈치였다. 사람 좋아하는 세미가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가겠다는 사람을 주저앉힐 수도 없는 노릇! 안 가겠다는 세미를 달래서 함께 길을 나섰다.
누구인가?
마음의 잠금장치를 연 존재가?
저녁이 주는 아름다움에 취해 우린 기쁘게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그리고 미사를 드리고, 숙소로 돌아오니 접수처에 있던 여성 관리인이 반갑게 우리를 불렀다. 그러더니 뜻밖에도 출입구 2층 여인에게 침대를 바꿔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예 옆 방으로 옮겨야 한단다. 우리 방이 가득 차자, 더 늦게 온 사람들을 위해 오픈한 방이라고 했다. 아까는 안 되고 지금은 왜 되지? 2층 그녀는 반가운 마음으로 옮기겠다며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여성 관리인이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산책을 나가기 전에 미사 시간을 정확히 알아봐 달라고 한 게 이유였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미사가 때때로 잘못된 정보인 경우가 있어서 한 차례 더 확인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나를 대하는 눈빛이 '기특한 녀석'이었다. 내가 세미와 출입구 2층 여인과 함께 나가며 미사 갔다 온다고 하자, 빙그레 웃어줬다.
그분께서 관리인의 마음을 움직여주신 걸까?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 어디에서 생겨났겠는가? 사람의 마음을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신의 손길만이 마음 잠금장치를 열 수 있지 않나? 오, 이러니 내가 꽤 신앙이 깊은 사람 같다. 어쨌든 길을 걷다가 미사를 드리는 순간이 오면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라고 해도 참석하면 좋다. 정말 은혜로운 시간이 되니까!
판타지처럼 등장한 분이시여!
마늘이 왜?
방이 조용하다. 대부분 산책을 가거나 식당에 앉아 있는지, 침대가 비어있다. 세미도 대만 남자가 해준다는 케이크 이벤트를 보러 갔다. 방은 일찍부터 누군가 소등한 상태였지만, 창문이 커서인지 거리의 불빛이 방안에 쏟아져 들어왔다. 비상등 불빛은 복도와 연결된 문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일찍부터 쉬고 싶어서 침대에 누웠다. 복도 쪽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음에도 방안은 고요를 머금고 있었다. 어쩐지 이 순간이 현실적이지 않은 시공에 걸쳐진 세계 같았다. 2층 침대에 앉아 명상 상태 같은 순간을 맞이했을 때였다. 비상등 아래에서 백발 여인이 나타났다. 장르가 판타지인가? 아, 아까 출입구 2층 침대 여인이 말한 백발 여인이었다.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백발 여인이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었다. 설국열차 느낌! 그녀의 이는 건강하지 않았고, 안경알은 뱅글뱅글 돌만큼 두꺼웠다. 그녀는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와 2층 침대에 얼굴을 디밀었다. 워워, 딱 거기까지!
"식사하셨어요?"
"어, 먹었어요."
그런 걸 물어주니 감격이었는지, 친숙한 할머니 표정으로 내게 속삭였다.
"그런데 저기에서 마늘 냄새가 너무 나서요."
백발 여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볼 수 있는 식당 쪽이었다. 그곳에서 마늘 스테이크라도 구웠나 싶었다. 나는 건성으로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백발노인이 물러갈 생각 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마늘 냄새가 너무 나서 문을 열었다니까요."
뭔 소린가 싶었다. 그런데 묘하게 손가락이 출입구 쪽 2층 여인 침대를 가리켰다. 다른 방으로 이동해서 빈 침대였다. 백발 여인은 침대에서 뭔가를 꺼내서 방을 나갔다. 아까 내가 닫아놓은 출입문을 환히 열고서! 꿈처럼 백발노인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처럼 멍해졌다. 그런데 마늘은 뭔가? 사람 되라는 신의 메시지? 그런데 춥다. 다시 활짝 열린 출입문을 닫았다. 2층 침대 끝쪽에서 문을 잡으면 닫혔다. 내 침대는 좌우 출입구와 화장실이다.
나중에 2층 출입구 여인과 얘기하다가 알게 되었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식당 쪽 골목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 있는 그녀의 침대였다는 것을! 자신에게 마늘 냄새가 난다고 조롱한 것이란다. 그녀는 백발 여인을 두고 ‘미친 할망구’라고 했다. 그녀의 심정이 헤아려져서 피식 웃음이 났지만 설마 또 만나겠냐 싶었다. 내가 인종차별에 대해 못 알아차린 게 문제였다. 그런데 백발 여인은 왜 인종차별주의자가 됐을까? 나는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멍해졌다. 또다시 내 앞에 그런다면 가만있지 않고 그녀의 편을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간사한 노인네다. 자기에게 인사를 하는 사람에게 친절한 웃음으로 같은 동양인을 차별하는 말을 하다니! 나중에 세미와 나는 백발 여인과 2층 출입구 여인으로 살짝 갈등을 겪었다. 세미는 2층 출입구 여인이 싫어서 백발 여인을 두둔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순례길에서 사람을 시험하는 관문이 있는 것일까? 백발 여인은 2층 출입구 여인의 짝으로 나타났다. 작정하고 그녀의 마음공부를 위해 역할자로 나타난 것이리라. 그런데 세미와 나는 이들 말고도 영국 BBC 아저씨를 다시 만나면서 또다시 갈등을 겪는다. 사람으로 인한 시험은 언제나 순례길에서 도사리고 있다.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알아두면 좋아요>
성모승천 성당 (Iglesia Asuncion de la Virgen)
1553년에 시작된 건축이 한참 중지되었다가 1645년에 완공되었다. 내부의 제단화는 리오하 바로크 양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17세기 말, 18세기 초 후기 바로크 양식의 모든 경향이 모여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참고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