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노예였던 걸까. 아니 소였나.
최근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로 보낸다.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생각하거나. 일의 양도 어마어마 하지만, 혼자서 일을 해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겼다.
같이 손발을 맞추던 팀장님이 갑자기 타 부서로 발령이 난 것이다. 같이 일을 하던 계약직 직원도 3월에서야 와서, 최근엔 다시 하나부터 열까지 일을 알려주며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새 팀장님과 적응하고, 다시 온 계약직 직원들과 합을 맞추느라 중간에서 끼인 둘째처럼 일을 하고 있다.
직장만큼 불친절하고, 회사만큼 잔인한 곳도 없다.
마음을 다 털어놓아서도 안되고, 회사에서는 매 순간이 평가를 받아야 하며, 사무실에서 전화받는 것 하나, 타기관과 소통하는 회의 하나 모든 것이 해내야 하는 과업들인 것이다. 그 와중에 새로운 팀장님은 꽤나 나와 맞지 않아서, 같이 일을 하는 데 곤욕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팀장님과 합을 맞추며 생기는 불협화음들로 마음마저 지쳐가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팀에는 멋진 차장님 한분이 계신다. 조직의 상황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조직구성원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두루 살필 줄 아는 멋진 차장님.
그날도 팀장님과 업무적 소통을 하며 속상해하면서도, 결국엔 혼자 또 해야 하는구나 싶어서 야근을 하던 차였다. 차장님은 퇴근 후에도 나에게 ‘팀장님과 무슨 일이 있었냐’며 나에게 톡 하나를 보내오셨다.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여러 일들을 거치며 느낀 점은, ‘팀장은 팀장이며, 팀장들은 팀장편이다.’라는 것. 결국 다른 팀장님이든 상사든 팀장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해도, 손해 보는 건 나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팀장과의 어려운 일은 혼자 잘 정리해 두었다가, 무언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sos를 쳐야지 하던 차였다.
그날도 팀장님과 일이 있어서, 하루 종일 마음이 울컥한 상태로 일을 하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퇴근까지 하신 차장님이 나를 챙기려 보내주신 카톡 하나가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세한 내막을 말하진 않았다. 그냥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하니, 차장님은 기어코 장문의 카톡을 보내오셨다.
카톡의 요지는 그것이었다. ‘이전에 일하던 직장상사 덕에 인격적 수양도 많이 하고, 오히려 그 팀장보다 자신이 신뢰를 더 받게 되기도 하고, 그렇게 힘들 때 윗선에서 자신의 힘듦을 알아주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자신보다 이 상황을 잘 이겨내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다.
그제야 하루 종일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회사에서 우는 바보천치 안되려고 했건만. 그냥 내 마음을 알아주는 차장님이 감사했다. 창피하긴 하지만 울컥한 마음에 사무실 뒤편으로 가서 몰래 눈물을 닦고 차장님께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어제오늘 있던 일들을 간단히 말씀드리면서, 이런 일들이 있어서 속상했지만 차장님 덕에 잘 이겨낼 수 있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차장님이 내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 줄 의무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조직 내 어떤 마음들이 오가야 하는지, 그게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내 삶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며칠 뒤에 다른 팀 직원이 자신의 힘든 상황, 팀 내에서 자신의 힘듦을 공감받지 못하는 상황을 이야기 나누다가, 나 또한 차장님처럼 그 직원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더 해주고 싶었다.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은 뭘까 마음이 더 쓰였다. 사실 그날도 야근하느라 둘 다 11시 넘어서까지 있던 차에, 자연스럽게 서로의 힘듦을 이야기하던 차였다. 그 직원의 힘듦을 내 힘듦보다 더 들어줘야겠다 생각한 것은, 차장님께서 나에게 그렇게 해주셨던 이전의 마음덕이었다. 아마 차장님께서 내 마음을 먼저 살펴봐주신 이전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그냥 나도 서로의 힘듦만 토로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없는 곳이라면, 나 스스로 사랑을 주어라. 그렇다면 그곳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
오늘 들은 설교 말씀 중 한 구절 또한 마음에 절절히 남는다.
힘들고 고된 회사생활. 직장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이 많아지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사랑을 놓지 말아야지. 내 사랑을 흘려보내야지. 기어코 이 불친절한 세상에서.
라고 다짐이 드는 일요일밤이다.
아, 그래도 월요일 출근은 고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