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얕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사는 게 낫지

by 서쨍


지난 몇 달간은 글을 쓸 수 없었다. 일이 많기도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좌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부정적 기운을 남에게 주고 싶지 않은 탓에, 혼자 글을 끄적거렸다.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는 듯한데, 그 언젠가 또 비슷한 마음이 들 수 있으니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겨본다.


내가 노력해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서른 살 중반이 되어, 여전히 나는 작은 원룸에 살고 있으며, 내 또래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 시기에 여전히 결혼조차 못했다.

돈을 다시 모으기 시작한 건 작년 여름 무렵부터였으니, 모아둔 돈도 많지 않다. 차도 사고 싶고, 집도 사고 싶은데, 내 것인 게 하나 없는 기분이랄까.

나는 분명 노력한다고 사는데, 어째서 이룬 것 하나 없는 기분이 들까. 그런 좌절감.


생각해 보면, 이직을 위한 노력은 열심히 한 덕에 나름대로 안정적이고 몇 가지 빼면(많이 빼야 하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던 방향에 맞는 직장을 찾았다.

가치 있는 일을 애써서 해보고 싶다는 꿈도 이뤘던 것 같은데. 어째서 나는 이루지 못한 것들만 자꾸 보이는지.

결정적인 일은 작년 말, 같이 일하던 분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던 일이다. 이전에 복지관에서 일을 할 때 돌아가셨던 주민분들도 생각이 났다.

사람의 살고 죽음이 예기치 않게 오는 것은 알았지만, 인생의 덧없음 속에서 갑작스러운 가까운 지인의 죽음이 어찌나 허무맹랑하던지.

앞으로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어쩌지? 나이는 들어가는데, 나이가 들수록 몸도 마음도 아플 텐데. 이런 두려움도 커졌다.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도대체 뭐가 문제이길래 내 삶이 이렇게 이룬 것 하나 없이 외롭게 혼자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져야 하는 건지.

비참하달까. 내가 노력하지 않는 건 아닌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하며 사는 것 같은데.

정해진 운이 있는 것일까, 정해진 몫이 다 정해져 있어서 사람마다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정해진 것일까? 노력과 무관하게 말이다.

삶이 허무하고, 덧없다는 것을 알고 있자니,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지?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이루지 못함. 그것에 마음이 쓰여 지난 몇 달을 슬프게 보냈다. 이럴 때 정답을 알고 있는 게 더 비참했다.

‘가진 것에 감사하기, 순간에 더 기뻐하기, 남과 비교하지 않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기.’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꽤나 지친 탓에 부정적 마음만 덧입혀졌다. 바쁘게 살면서도, 마음 이면에는 놓아지지 않는 깊은 허망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원래 인생은 덧없고, 덧없는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며 사는 거지. 할 수 없는 노력과 가지지 못한 것은 왜 이렇게 커 보이는지.

버스 안에서 혼자 힘이 빠져 있는데, 출근길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타이어가게 현수막이 보였다.


‘내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아, 또 희망이래. 기적이고 희망이고 다 싫은데 그냥 현실에 순응하면서 나 같은 소시민은 노예처럼 일만 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야 하는데.

희망이라니. 진짜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구나. 순간 화마저 났다. 어찌나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지. 그것마저 화가 났을 지경이었다.

그래. 그냥 나는 그지같이 정해지고, 순응해야만 하는 게 더 큰 삶에 신물이 났던 것이었다. 노력해도 주어진 것이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깊이,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자꾸만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현실에 화가 난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화를 느낀다고 무언가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이 또한 내 마음이 변하면 다시 수그러들겠지. 열받지만, 그렇겠지.

스스로를 달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그것 밖엔 답이 없기도 했다. 당장 할 일이 산더미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를 밥 먹여줄 사람이 없으니까.

꾸역꾸역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해나갔다. 감정의 덧없음도 알면서 모른척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깊이 들어갈수록, 부정적인 생각만 드니까.


그러다가 며칠 전 출근길엔 또 다른 이유로 허탈해졌다.

그렇게 우울해하더니, 이 추운 날 오들오들 떨며 버스를 타러 가면서도 ‘그래서 내가 올해 차를 사려면 얼마를 모아야 하지?’ 이 생각에 빠져있는 스스로가 어이없기도 하고, 약간은 우스워보이기도 했다. 차를 사겠다는 마음이 든 것은, 혼자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이고 차고, 경제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차를 살지 집을 살지 고민하다가, 차를 사서 주말에 놀러라도 다니자 싶어서.

결국엔 나는 허무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또 찾아냈구나 싶어서.


코끝이 찡할 만큼의 바람이 찬 날씨에도 점심을 다 먹고 걷고 또 걸었다. 인적이 드문 산책길에서, 몇 주전 보았던 ‘희망‘이라는 단어가 문득 생각났다.

매일의 이치처럼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사는 게 삶이라지만, 그 자연을 걸어가는 나 스스로가 희망이든, 기적 같은 마음을 바라며 산다면, 적어도 가만히 당하며 사는 삶보단 낫겠지.

어차피 살아내야 할 삶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깊은 허무함보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얕은 희망이라도 붙들고 사는 게 낫겠지.

내가 가진 것, 가질 것, 이룬 것, 이룰 것, 오늘과 내일이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삶이 아니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좋은 마음도 가질 수 있겠지. 그러니까, 다 알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다 보면, 모를 일도 생기겠지.

그냥 그렇게 살 수밖에 없구나,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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