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서럽다’, ‘설렌다’, ‘불안하다’
잡히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이 이름 붙여진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감정이라는 건 스스로가 느껴야만 아는 것인데, 감정에 이름이 붙는다는 건, 적어도 그 감정이 어떤 건지 공유할 수 있다는 거니까.
같은 긍정의 마음도, 부정의 마음도, 이름이 붙여진 후로는 같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서로가 어떤 감정인지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사람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나름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았던지라, 심리서적도 꽤나 많이 읽었었다. 한편으로는 불안정한 심리를 평온하게 만들고 싶은 것도 컸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연습하고, 효과를 본 것은 ‘감정을 읽는 것’이었다.
다른 누구보다 ‘나’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것.
더 한 발짝 나가 서서,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생각보다 한국사람들은 감정에 무디다. 사실은 가장 먼저 나 스스로의 감정을 읽어주지 않으면, 지금의 내 상태가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다.
갑자기 우울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 무너져내리는 순간에는 막막하기도 하고, 깊은 우울감이나 불안, 분노, 혹은 알 수 없는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땐 대다수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한다. ‘힘들다.’
힘들다는 것 이면의 내 상태와 감정이 어떠한지를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생각보다 이 방법을 연습하고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적어도 사소한 연습과 기회들로 자신의 상태를 마냥 힘들다고만 여겨지 않고, 그 이상으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힘들다는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로는 수시로 내 감정을 헤아리는 것이다.
감정에는 여러 가지 언어들이 있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감정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 힘든 감정이 ‘불안’인지, ‘분노’인지, ‘서러움’인지 등등 어떠한 단어로 말하여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금의 감정을 두루뭉술하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세분화시켜보는 것이다. 이것은 해보지 않으면 처음에는 어렵다.
그러니까, 연습이 필요하다. 단순히 내 감정이 어떠한지를 핸드폰 메모장이든, 작은 노트라도 사서 적어보는 것이다. 오늘의 감정은? 하고 매일밤 자기 전에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여러 감정이 적힌 글들을 참고하여, 여러 감정에 대한 언어를 다시 습득해 보면 더 좋다.
감정을 이해한 다음에는,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오늘 느낀 ‘분노’에 대해 알아보자. 이건 구체적인 예시가 필요할 테니, 최근 내가 느낀 감정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1. 최근에는 너무 힘들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엄청나게 ‘서럽고’, ‘서운하고’, ‘화도 나고’, ‘불안하고’, ‘허탈하고’, ‘비참하고’, ‘회의감’이 들었다.
어떤가? 최근 느낀 나의 감정들은, 애석하게도 부정적이었다. 단순히 ‘힘들다’고 말하는 것에는 모든 부정적 감정이 다 들어가 있다.
힘들다고 말하는 문장하나에 들어간 감정은 여러 가지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이 힘듦의 감정들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마음껏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에, 조금 더 마음이 괜찮아지면, 더 나아가서 감정의 원인을 알아보는 것이다.
2. 최근에는 일이 너무 많았다. 같이 일하던 직원도 그만둬서, 3명이서 하던 일을 2명이서 해야 했다. 팀장님에게 ‘이건 아니다’라며 나름의 대안책을 제시하고, 항변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결국 ‘힘들다고 그만해라. 더 이상 이야기하면 서로 좋지 않을 거다’라는 감정 없는 서운함 투성이의 답변이었다. 진짜 엄청나게 ‘서럽고’, ‘서운하고’, 내 힘듦을 알아주지 않고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 ‘화도 났다.’ 직원이 그만두고 나서 내가 앞으로 이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잔존했다. 이직을 하고 나서 새롭게 온 직장인데, 여기도 똑같구나 싶은 ‘허탈감’도 컸다. 몸이 상해서 임파선염에 신경통까지 겹쳐 올만큼 힘들었다. 약을 먹으며 일을 하는 기분이란. ‘비참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상 계약직이 많은 탓에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업무로 뽑힌 사람들에게 시킬 수 없다는 조직의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럼 조직을 잘 구성하든가. 노력이라도 해주든가. 아무것도 없이 희생을 강요하는 구닥다리 문화는 어딜 가나 똑같네 싶어서 한국을 떠야 하나라는 ‘회의감’ 마저 들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 힘들게 ‘ 했다.
감정의 원인들을 찾는다. 감정의 원인을 찾고 나서, 조금 더 힘이 있다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건 사실 1번만 연습하는 것도 시간이 꽤나 걸렸기 때문에, 1번이 가능한 사람들은 2번을, 2번이 가능한 사람은 3번을 추천한다.
3. 내가 부정적인 느낌을 느끼는 이유는, 구조적인 이유 탓이며, 조직이 나에게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희생을 강요받은 나는 ‘힘들단 말도 하지 말아라’라는 말까지 들었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조직을 위함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때문이었다. 나의 직업적 소명과 가치를 조직에게 이용당하는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우선, 지금 상황적으로 조직에게 내가 요청할 수 있는 대안들을 모두 제시한 상황이었다. 이를테면, 과업을 줄여주든가, 타 사업 직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든가, 올해 신규 채용이 어렵다면 내년에 곧바로 채용을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노력해 주든가. 그 모든 것들을 제시했을 때, 결과적으로 마지막 대안에 대해서 어느 정도 노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는 일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일, 중요한 일 2가지를 놓고 그 외에 것들은 꼭 하지 않아도 된다면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다. 조직이 알아줘서도, 남들이 몰라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1-3번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1번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꽤나 회피적인 사람이었으며, 부정적 기운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항상 우울했고, 왜 그런지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더 힘들었다. 그러나, 감정을 알고, 이해하고, 근원 깊은 곳에서의 원인을 찾아가며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스스로 격려도 많이 해줬다. 실제로 나는 매일 일이 고되거나, 힘들면 스스로 말해준다 ‘오늘 너무 고생 많았다. 어려운 일이었는데, 잘 해냈네.’ ‘대견하다.’. 아무도 듣지 않을 말이 아니다. 나 스스로 나에게 해주는 귀한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들은 수백 번 해줘도 아깝지 않다.
최근에 힘이 든다면, 힘이 드는 상황에서 무얼 더 할 필요 없다. 그저 힘들지? 고생했다. 이 말 한마디라도 부디 아끼지 말고 스스로에게 다정하게 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