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2025)

by 그냥저냥 ㅏ랑


(아래는 영화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의 <계엄 1년과 영화들> 에피소드를 위해 작성한 리뷰 중 하나이다.)






기억하십니까? 12월 4일 새벽 1시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안을 결의한 이후에도 우린 줄곧 맘을 놓지 못했죠. 왜냐?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해 707 특임대까지 국회에 투입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총체적으로 위헌적인 무력 행사를 취한 막가파 대통령이라면 국회의 의결조차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비상계엄이 재선포될까봐 불안을 느꼈고(실제로 윤석열은 추가 비상계엄을 검토한 것으로 보이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와 최상목이 국회 몫 헌법재판관을 (전부) 임명하지 않고 버티는 것에 안절부절못했으며(임명 거부에 위헌 판결이 난 이후에도 이들은 '결과적으로' 파면되진 않았죠), 서부지법 폭동을 목도하면서는 '진짜' 내전이 발발할 것을 걱정했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법에 대해 꽤나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단지 합법적인 것과 우리의 원초적 정서 사이에 있는 필연적 간극(예컨대 윤석열은 죽어 마땅하지만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국가가 쥐어선 안 된다는 '원론')을 넘어서, 법의 느림과 무력함과 과신중함에 답답해하면서 동시에 법의 힘과 당위와 역할을 요구했던 거죠. 공수처의 윤석열 체포영장 청구를 둘러싼 갑론을박에서 볼 수 있었듯 이는 이론과 실천의 차이와도 좀 다릅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태도는 큰 정치적 진영 모두에서 나타났죠) 좀 더 수사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법을 믿기 위해서 믿고 동시에 믿을 수 없기에 믿지 못하는, 변덕스럽고 선택적인 동어반복을 온몸으로 표출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자체는 항시 일어나고 있던 일이죠. 하지만 이런 동어반복이 법을 둘러싼, 혹은 법이 작동하는 실정적 현상이라는 걸 지나치게 가시화한 게 바로 지난 내란 정국이었으며, 우리는 여기에 걸맞은 조치를 결국 (어쩌면 당연하게도) 취하지 못한 채 2025년을 지나가버렸다는 게 제 인상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제6공화국이 사실상 여러 방면에서 마비된 것을 여러 차례 봤음에도 개헌 논의가 사라진 '야비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잖아요?


최근 영화 중 이런 인상과 강력한 공명을 이루었던 한 작품이 떠오릅니다. 캐서린 비글로우의 신작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A House of Dynamite)>인데요. 핵 미사일 하나가 갑자기 미국으로 향하면서 이에 대한 서로 다른 공직자들(미사일 기지의 군인부터 대통령까지)의 긴박한 대응을 기민하게 묘사한 작품이에요. 물론 이 간단한 설명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터이니 부연해 보겠습니다. 비글로우가 이런 설정과 줄거리를 통해 만든 것은, 말하자면 그래프와 숫자의 스릴러이자 관료제의 액션 영화예요. 그러니까 날아가는 미사일이나 폭발의 현장을 잘 묘사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난무하는 역학을 수치화/단순화한 이미지-즉 그래프와 숫자들로써 (잘못) 돌아가는 관료제의 현장'들'을 묘사하는 데 전력을 다한 것입니다(예컨대 '60%'나 '시카고' 같은 기호). 이런 이미지들은 너무나 연약한 동시에 강력하죠. 물리력의 현장을 수많은 절차 속에서 매개적으로만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약하고, 또 반대로 그 현장을 단순화 속에서 압축적으로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것입니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탁월함은 바로 이 역설에 대한 독특한 접근에서 나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미지의 이런 역설 앞에서 방어 기제처럼 아이러니의 수사를 취하곤 하죠. '이 종이 한 장에 인류의 운명이 달렸다니'라든가, 반대로 '이 아무것도 아닌 종이에 인류가 벌벌 떨었다니' 같은 것들 말입니다. 특히 관료제를 무대로 끌어들일 경우엔 더더욱이요. 비글로우는 이 아이러니를 거부하고 '동시에'가 지시하는 역설성을 부상하는 데에 전력을 다합니다. 예컨대 거의 겹치는 시간대를 다각도로 보여주는 3개의 파트 속에서 대통령의 "대학 시절이 생각나네"라는 대사 하나가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것처럼 말이죠. 급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실없는 농담, 혹은 너무 혼란한 나머지 새어 나온 당혹감의 토로... 정리하자면 이런 겁니다. 유한하고 주관적인 우리 인간은 이런 이미지로서만 현장과 제도 나아가 법을 구상적인 체계로 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미지가 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한계/유한성을 알면서도 양자가 일치하는 듯이 굴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이미지가 법을 작동시킨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완전하게 몰입하지 못합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말이죠.


그리고 비글로우가 잘 보여주었듯 이런 역설의 역설, 이중의 이중구속의 곤란은 비단 대중인 우리만 겪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법의 권력에 가까운 이들이 더욱 격하게 겪는 곤란이겠죠. 이 트럼프 시대에 영화가 끌어들인 (오바마적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우발적 핵전쟁의 가능성에서는 더더욱이요. 바로 이런 차원에서 저는 (양자의 심원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상계엄 정국과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사이의 공명을 느낍니다. 물론 앞서 어느 정도 암시했듯 이는 한국에서 비상계엄 정국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가령 현직 대통령께선 당선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된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대해, 임기가 끝나면 재판을 다시 받겠다는 말조차 안 하고 있잖아요? 그냥 말만 던져놓는 것마저 꺼림칙하다는 듯이요. 여기서도 우리는 동류의 곤란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90년대 말의 최장집 선생께선 '정치의 사법화'라는 비판을 하신 적이 있지만, 그보다는 법의 불통합성이 분출된 것으로 보는 게 맞지 않을런지요) 반복하건대 법을 믿기 위해서 믿고 동시에 믿을 수 없기에 믿지 못하는, 변덕스럽고 선택적인 동어반복에의 '과도한' 인식이 오늘날 '국제적' 현실의 기본값임을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아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이 영화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첫 해의 미국 영화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되새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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