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특별히 뭔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어떻게 지내나, 그 틈새에서 밀린 일을 어떻게 마무리 하지, 늙고 아프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군 정도의 문제였다. 진짜 문제는 피곤이었는지 모른다. 커피를 마셨는데도, 택시를 탔는데도, 좀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택시가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였다. 창문 밖, 내 눈이 수평 일직선으로 맞닿은 지점에 나무 기둥이 보였다. 고동색과 갈색과 진녹색이 섞인 나무였다. 직경 50센티 남짓한 나무 기둥. 까칠하고 건조한 겉이 보였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나무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말을 건 게 아니라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내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어요. 겉은 건조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단단하게 서 있잖아요."
이 날도 특별히 뭔가 있었던 건 아니다. 역시 피곤이 문제였다. 체육관과 축대 사이, 어둡고 축축한 길을 걷는데 나무가 들어왔다. 빽빽하게 들어선 초록, 무성한 초록 사이에 나무가 일열 횡대로 서 있었다. 나무의 잎과, 덩굴과 풀이 뒤섞여서 온통 어지러운데, 나무 하나하나가 그냥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번째는 신기한 일이 아니다.
또 나무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렇게 복잡하게 섞이고 어지러워도, 나는 나예요. 이렇게 단단하게 서 있잖아요."
진짜 나무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면, 나는 뇌 검사를 받아야겠지, 나무가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진 저 말은 다 내 뇌 어딘가에 박혀있다 의식으로 올라온 말이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무의 말은 나무의 말이었다.
나무는 나에게만 말을 거는 걸까?
a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켜보는 나는 우울했다. a의 특별한 자질을 확인할수록, a의 가정환경이 떠올랐다. 현재 시점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무엇일까. 그림으로 대학을 가고 생업을 삼기 위해서는, 경제적 환경은 물론, 학업 성취와 문화 자본까지 취득해야 한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다. b는 어떤가? 저 여리고 약한 심성이 방과후에서는 보호받고 있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도 가능할까? c와 d와 e와 f를 떠올려도 생각은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아니야. a와 또 많은 a에게도 나무는 말을 걸 테다.
나무는 어디서든 존재하니까, 나무는 그 나무가 튼튼하든, 약하든, 낮든, 높든, 나무이니까, 분명히 말을 할 테다.
김중혁의 짧을 소설을 읽다가 나무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과 비인간, 난민과 비난민 사이의 경계, 그 보더라인에서 나무의 말을 듣는 어떤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속 나무는 내가 본 나무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고 우람하고 포근하고 튼튼하게 느껴진다. 내 나무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자기 존재를 지킨다. 충분하지 뭐. 하지만 a와 많은 a에게 말을 거는 나무는 나와 달랐으면 좋겠다.
어떤 나무냐고? 나무가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냐고?
바람에 기분 좋게 흔들리고, 가지는 연두와 초록 모두를 지닌 잎들이 가득하고, 다람쥐와 새와 곤충이 가득한 그런 나무. 그리고 나무가 하는 말은 이랬으면 좋겠다.
"춤추는 건 잊지 마."
어떤 순간에서도 춤추는 건 잊지 마.
삶의 최선선에도 춤추는 건 잊지 마.
후기 : <춤추는 건 잊지 마>는 나무와 경계 지역이 등장하는 짧은 소설의 제목이다. "삶의 최선에서도 춤추는 건 잊지 마"라는 워딩은 작가 김중혁의 인터뷰에서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