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2학기 수업은 12월 25일 전에 끝났다. 수업이 끝날 즈음에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성탄 장식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작년은 어쩐지 마지막 수업이 12월 26일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몇 명의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깔깔마녀, 크리스마스 선물 못 받았어요."
머릿속에서 따르릉 소리가 났다. 입으로는 자동적으로 "산타 할아버지가 아팠나. 깔깔마녀가 할아버지께 전화해서 물어볼게."라는 임기응변이 줄줄 나왔지만, 머리와 가슴은 복잡했다.
한 번도 짐작하지 못했던 현실을 나는 또 맞닥뜨렸다. 세상을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일이다.
그러니까 난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셔."라는 말로, 아이들을 실망시켰던 거다. 산타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믿으면 믿는 만큼, 믿지 않으면 믿지 않는 만큼 아이들은 속상하고 슬펐을 테다.
존 버닝햄의 <크리스마스 선물> 속 산타 할아버지는 높은 산 꼭대기에 사는 가난한 하비 슬렘 펜 버거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한다.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하비 슬렘 펜 버거 집에 도착한 산타 할아버지는 굴뚝을 타고 내려가서 작은 선물을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다. 성타의 의미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런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선물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랑 장난치고 나랑 깔깔거리는 그 아이들 중에.
어제도 나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읽어주었다.
"얘들아, 산타 할아버지가 깔깔마녀 어릴 때 선물을 안 주신 적이 많아."
"왜요? 엄마 말 안 들었어요?"
"아니, 까먹으셨데. 어제 산타 할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할아버지가 자꾸 까먹으니까 나보고 일단 너희들에게 선물을 주래. 할아버지가 안 까먹으면 선물 두 개 받는 거고, 까먹으면 깔깔마녀 선물로 대신하라고 하시더라."
선물은 라바 스티커와 피카추 모양 쿠키 하나였다. 아이들이 라바 스티커를 보고 팔짝팔짝 뛰었다. 그냥 작은 라바 스티커였다.
누군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울지 않아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뭘 어떻게 하지 않아도, 사실을 사실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학교 안에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그렇게.
모두에게 복된 크리스마스를! 무조건 아무튼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