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바보예요.

4학년 혁준이, 준범이 이야기

by 열무샘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책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찍어 먹어 보렴!”

소녀는 손가락으로 꿀을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맛이 어떠니?”

소녀는 대답했습니다. “달콤해요!”

식구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맞다, 지식의 맛은 달콤하단다. 하지만 지식은 그 꿀을 만드는 벌과 같은 거야. 너도 이 책장을 넘기면서 지식을 쫓아가게 할 거야!”

- 패트리샤 폴리코 <고맙습니다, 선생님> 중




책 맛을, 글자 맛을 보려고 책 가장자리를 핥은 적이 있다. ‘달콤한 지식의 맛’이 궁금해서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일 텐데……. 놀다가 아이들이랑 같이 그랬다. 아이들에게 어떤 맛이냐고 물었더니, 짜다, 쓰다, 맛있다!, 찝찝하다, 대답이 각각이었다. 나는 어땠나, 시큼한 침 냄새 말고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지식의 맛은 침 맛이었나, 지식의 맛이 달콤하려면 꿀을 끼얹어야 하나 보다. 꿀이 없다면 설탕이라도.



혁준이와 준범이는 자기들이 5학년이란다. 지금은 4학년 교실에 들어가지만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으니까, 5학년이라는 거다. 하얀 콧등에 살짝 드러난 주근깨, 호리호리한 몸매의 혁준이와 작은 눈매에 다부진 체격의 준범이는 항상 붙어 대닌다. 놀 때도, 밥 먹을 때도, 싸울 때도, 공부할 때도, 한글 수업 때도 같이 있다. 아니다. 공부하는 걸 본 적은 없다. 혁준이는 제 시간에 공부방에 오 하는데, 저학년 아이들이랑 분신사바를 하면서 놀 때가 더 많고, 준범이는 밥시간이 다서야 공부방에 들어설 때가 많다. 나랑 하는 한글 수업은 밥 먹기 30분 전이라 참가할 수 밖에 없는데, 얼굴에 싫 기색이 역력하다.

공부방 한글 교실은 일주일에 세 번, 1학년 아이, 그러니까 3월이면 2학년에 올라가는 아이 두 명, 2학년 아이 두 명, 4학년 아이 두 명이 함께 한다. 내가 주로 그림책이나 짧은 동화를 읽어주고 질문을 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수업이 가능할까, 혁준이와 준범이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그래도 4학년인데, 글자를 읽기는 한다는데 같이 수업을 해야 하나 싶었다.

첫 시간 자리를 잡고 혁준이와 준범이는 내가 시킨 대로 두 줄 문장을 더듬더듬 읽었다. 그런데……. 에구머니나! 두 아이는 내가 던진 질문에 묵묵부답 벙어리로 변했다. 자기들이 읽은 짧은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는 거였다. 여섯 줄 동시를 읽어보라고 주었더니 두 아이 모두 5초 안에 다 읽었다고 한다. 한 눈에 봐도 안 읽은 게 분명했다. 혁준이와 준범이는 글자를 읽을 줄 알지만,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비문해 상태였다.


학교 안 한글 공부는 주로 쓰기에 집중된다. 쓰기라고 하기도 뭐하다. 받아쓰기 등급을 기준으로 공부를 시킨다. 받아쓰기도 곧잘 하고 읽기도 가능한데, 글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은 예상보다 많다. 어릴 때부터 무난하게 읽기, 쓰기 과정을 거쳐 온 어른들은 아이의 이런 비문해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혁준이와 준범이를 가르쳤던 학습 선생님들도 읽기는 하는데, 집중을 하지 못한다고, 공부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다.

혼자서 이유를 찾아보았다. 대부분 자료는 유아 시절 그러니까 6세 이전 시기에 적절한 듣기 말하기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떠올려 보면 맞는 말 같다. 그러다 받아쓰기도 봐야 하고, 선생님께 혼이 나지 않으려고, 급하게 억지로 한글을 떼다 보면 ‘읽어도 읽는 게 아닌’ 상태가 된다. 기이한 비문해 상태가 지나가는 과정이라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오랫동안, 어쩌면 성인이 돼서도 변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더라도 사는 데 큰 불편은 없으니까 가능하다. 학교? 초등과 중등은 꾸역꾸역 다니고, 고등학교는 올라가서 생각하면 된다. 안 다니든, 학교서 잠을 자든.


늦었든 말든 결과가 어떻든 말든 나는 한글 교사다.


준이와 준범이는 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한다. 내가 유아와 초등 1, 2학년이 주로 본다는 책을 읽어주면, 듣고 있다가 내가 내는 퀴즈나 질문에 답한다. 답을 하는 걸로 치자면, 혁준이와 준범이는 우리 6명 아이들 중 거의 꼴찌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혁준이는 나랑 어떤 사건을 겪은 후 완전 모범생으로 변해서 가부좌를 한 채로 듣고 대답을 한다. 준범이는 왔다 갔다 한다. 그제는 수업 내내 언제 끝나냐, 자기가 꼭 이 공부를 해야 하냐 투덜거리는 바람에 크게 혼이 났다. 이렇게 계속 읽다 짧은 문장을 읽어보라고 하면 읽지도 않고 “다 읽었어요.”라고 할 게 분명하지만.

두 명씩 편을 먹고 읽기 퀴즈 대회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혁준이와 준범이가 한 편이 된다고 하니, 1학년 2학년 아이들이 항의를 했다. 형들이 4학년이니까 더 잘할 텐데 공평하지 않다는 거였다. 나 역시 혁준이와 준범이의 자존심을 위해서 학년을 섞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언제나 붙어 있는 혁준이와 준범이가 웃는 눈으로 말한다.

“선생님, 우리 바보예요!”


책을 읽다 보면 모르는 게 스트레스가 아니라 기쁘일 때가 있다. 다른 책을 더 읽겠다며 흥분해서 책 검색을 할 때다. 모른다고 야단을 치는 사람은 물론 신경 쓸 누구도 어떤 것도 없는, 오로지 책과 나만 마주한 상황에서, 지금 모르는 건 앞으로 알 수 있는 것으로 바뀐다. 지식이 벌꿀보다 더 달콤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아이들이 지식을 달콤하게 여겼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바란다. 할 수 있다면 책을, 공책을, 피시를, 모든 글자란 글자를 큰 꿀통에 덤벙 빠트렸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혁준이와 준범이 같은 비문해 상태에 있는 아이를 발견하는 일, ‘글을 읽지 못하면 글자를 읽는 게 아무런 소용도 없어요.’라고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는 일이다.


혁준이와 준범이가 “우리 바보예요!”라고 말할 때 두 녀석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쥐어박지 않기를 잘했다 싶다. 혁준이와 준범이보다 우리 어른들이 더 바보니까. 아니, 바보면 어떻다고. 아이들은 여전히 놀면서 싸우면서 숨을 쉬고 우린 아이들 옆에 있는데.


얘들아. 사실은 우리 모두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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