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해'라고 써도 다 알아.

창현이 이야기

by 열무샘

<사랑의 체험 수기>, 수기는 열 편 정도, 작가는 주로 15세에서 20대 초반까지 여성, 주제는 사랑, 내용은 체험, 체험 중에서도 사랑의 체험.

내 나이는 열다섯, 또래 친구보다 2차 성징이 늦게 나타난 딱 봐도 어정쩡한 십 대 초반의 여자 아이. 친구에게 빌린 <사랑의 체험 수기>를 책가방 안에 두고, 쉬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읽겠다는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머릿속에 정확히 저장된 장면. 선생님이 갑자기 내 가방 안을 뒤지더니 <사랑의 체험 수기>를 꺼내서 높게 흔드는 거다. 반 친구들 중 반은 웃고, 반은 경멸(정말 경멸이었을까?)에 찬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이 반은 장난, 반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랑의 체험 수기라, 어디 사랑을 어떻게 체험했나 볼까?”

선생님이 고른 체험 수기 제목은 ‘아방궁에서 키스’였다. 아방궁이라니, 키스라니. 다음 장면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부끄러워했는지, 아니면 재미있어했는지 그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 ‘사랑 이야기’를 떠올려 보는데, 웬걸! 애틋하고 두근두근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사랑의 체험 수기> 사건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아무리 옛날 옛적 고루한 시기에 사춘기를 맞았다 하더라도 너무 하다. 바보 같으니라고, 남자 친구가 없는 것 그렇다 치더라도 가슴 두근거리는 짝사랑도 안 해 봤는지.


창현이는 초등학교 1학년. 한쪽 귀에 달린 귀걸이와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만 보더라도 “음, 제법…….”(말줄임표 속 말은 생략) 하는 말이 나오는 개구쟁이다. 사탕을 좋아하고, 잘 웃고, 공책을 꼭 가로 방향으로 써서 ‘왜 그러니?’라는 말을 듣고, 수업이 조금이라도 재미없으면 꾸벅꾸벅 존다. 한글 교실에서 실력은 딱 중간, 읽기는 하는데 더듬더듬, 쓰기는 하는데 받침이며 모음은 죄다 틀린다.

창현이는 편지 쓰는 걸 좋아한다. 수업 시간에도, 노는 시간에도, 심지어 받아쓰기를 하는 동안에도 편지를 쓴다.

창현이에게 편지를 받는 대상은 백 프로 여자, 여자 아이 이름은 매일 바뀐다. 한글 교실에 다니는 여자 아이들 모두 창현이에게 편지를 받았다.

창현이 편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사랑해’다. 주희야 사랑해, 은아야 사랑해, 연수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그런데 ‘사랑해’를 온전히 쓴 편지가 없다. ‘사라해’, ‘살랑해.’ ‘사란해.’ 받침이 있다 없다, ‘라’ 밑에는 ‘ㅇ’이 들어가야 한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자꾸 틀린다.

어느 날은 심각한 얼굴로 창현이에게 말했다.

“창현아, 사랑해를 제대로 써야지. 그러니까 한글 공부 열심히 해야 하는 거야.”

창현이가 내 얼굴을 쓱 보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엉터리로 써도 다 알아요. 사랑해라고 쓴 거 다 안다고요.”

할 말이 없다. 창현이 말이 맞다. ‘사랑해’를 ‘사라해’로 쓰고, ‘살랑해’라고 써도 편지를 받은 아이는 다 안다. 창현이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창현이는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는 꼭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 옆에 앉고, 사탕이며 연필이며 아끼지 않고 친구에게 준다. 수업이 끝나면 문방구에 들려 닭꼬치며 아이스크림도 사준다. 창현이의 사랑을 받는 아이는, 창현이의 여자 친구인 동안 행복하다. “넌 참 예쁘고 귀여워.”라는 말을 계속 들을 수 있으니까. 여자 친구가 자주 바뀌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창현이는 원래 여자 친구를 자주 바꾼다고, 자기네끼리 인정하는 눈치였다.

내가 '사라해'에 받침 'ㅇ'을 써 줬다. 주희 이름도 주힌이라고 썼는데, 그래도 주희는 자기 이름이라는 걸 안다.

반팔 옷이 쌀쌀한 초가을이었다. 창현이는 또 여자 친구를 바꾸었다. 이번에는 연수. 연수네 집에 고양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창현이가 너네 집에 가고 싶다고 조른다. 연수가 그러자고 했더니 신나서 가방을 멘다. 가방을 메다 말고 창현이가 연수에게 말한다.

“우리 가방 바꿔서 메자.”

연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라고 묻자, 창현이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한다.

“친구니까, 원래 친구는 서로 바꿔서 하는 거야.”

창현이가 분홍색 연수 가방을 메고, 연수가 파란색 창현이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선다. 어쩐지 창현이와 연수가 가는 길이 궁금해서, 연수와 창현이 뒤를 몰래 따라갔다. 두 아이는 교문 밖으로 나가면서 뭐가 좋은지 할 말이 많았다.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었는데, 바싹 다가가면 아이들이 눈치챌까 봐 듣지 못했다.

교문을 통과하자, 창현이와 연수가 손을 잡는다. 동그랗고 작은 두 손이 앞으로 뒤로 그네를 탄다. 아이들은 손을 잡고 또 그렇게 한 참을 걸어갔다.


창현이가 나보다 훨씬 낫다. 한글을 쓸 줄 아면 뭐하나, 영어도 쓸 수 있는 나이인데도 나는 연애편지 한 장 쓰지 못하고, <사랑의 체험 수기>를 읽다가 선생님한테 창피나 당했다. 창현이 말대로 ‘사랑해’를 ‘사라해’라고 써도, 사랑은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해진다. 네가 참 좋다고, 네가 예쁘다고, 내 사탕 먹어볼래, 우리 가방 바꿔 메고 집에 갈래, 우리 손잡자 속에 사랑은 존재한다.

글자를 엉터리로 쓰면 어떻고, 글자를 못 읽으면 어떠랴. 사랑한다면,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버티는 데 가장 큰 힘이라는 걸 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창현이가 ‘사랑해’라고 쓴다면 더 좋다. 그러니까 난 한글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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