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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Jan 30. 2022

보통으로도 충분합니다.

문화기획의 재료는 생활, 일상, 당신

우리동네지역아동센터 대식구의 밥과 반찬을 만드는 토끼를 생각합니다. 토끼는 밥 잘 먹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사람에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 포함입니다. 과식을 하면 쉽게 체하는 저는 토끼한테 잘 보이고 싶어, 토끼가 떠주는 밥을 다 먹다 고생을 했습니다. 요즘은 "선생님 덜어주세요"라고 말을 합니다. 토끼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건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요. 토끼가 잘 만드는 음식은 여러 가지입니다만, 토끼 스스로 "내가 잘해"라고 했고, 저도 이 음식만은 토끼가 최고지 하는 음식은 오이생채입니다. 고춧가루, 설탕, 식초 등의 양념이 잘 배인 오이 생채는 깔끔하고 시원하고 달달합니다. 토끼는 오이생채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가 생채는 내가 제일 잘한다고 했어, "

토끼의 엄마는 토끼가 어렸을 때, 스물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토끼 엄마가 살아계실 때 칭찬했으니, 짐작컨대 토끼는 10대부터 집안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토끼가 언젠가 제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있으니 참 좋겠다."


꿈을 꿉니다. 목표라고 하기에는, 그야말로 목표의식이 없어서, 그냥 꿈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토끼가 "뭔가"를 하면 좋겠습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뭐든. 토끼가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토끼는 완경과 함께 찾아온 우울을 달래기 위해서 등산도 하고, 노래교실에도 가고, 댄스도 배웁니다. 몸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서 함께 웃은 그거 하면서, 또 따른 뭔가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으 그리고, 영상을 찍고, 연극을 하고. 토끼한테 제가 이 말을 하면 뭐라고 할까요?

"글  같은 거 못 써." "그림은 뭐." "영상 찍을게 뭐 있다고." "연극을?"

제가 어쩌고 저쩌고 대답을 한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내가 해 보니, 너무 좋은데, 너무 좋아서 권하고 싶은데.


제일 먼저 넘어야 할 산은 잘하고 못하고 하는 그 능력치겠지요. 제가 만나는 아이들이라면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고 주입식 교육을 하면 됩니다. 어른을 설득하기란 어렵습니다. 한국 교육 정말 진짜 싫어! 며칠 전에 아이 한 명인 자기는 못하고 누구는 잘하고, 망했다고 하소연을 하길래 역시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고 했더니, 그러더라고요. "그럼 보통이야?"  그 자리에서 제 대답은 "보통도 없어. 너는 너대로, 나는 나 대로가 있지"였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답을 바꿀 걸 그랬나 봅니다. 

"맞아. 우리 모두,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보통이야."


그리고 또 하나 넘어야 할 산. 토끼도 그렇고 이웃들도 그렇고 가끔 저도 그럽니다. 우리 모두는 특별함에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는 아니고 저기, 현재가 아닌 미래 혹은 과거, 그래서 뭔가를 하자는 제안의 답은 이럴 때가 많습니다. 


"내가 만드는 이 음식이 뭐가 별 거라고" "아유, 내 살아온 이야기 그냥 그래." "좋은 곳으로 여행이라도 떠나야 사진 찍을 게 생기지요." "다른 사람이랑 똑같아요. 복잡하고 짜증 나고 구질구질하고." "예쁘고 좋은 걸 봐야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각나지요." "내 일상이라는 게 항상 똑같지요."   


특별함과 보통.


음식을 하기 싫어하고 실력도 없는 제게 토끼는 대단해 보입니다. 원래 잘 만들었던 음식은 잘 만들 뿐 아니라, 새로운 음식도 토끼 식대로 만듭니다. 요렇게 요렇게 하면 일본식 불고기가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스파게티가 되겠더라고 그러십니다. 토끼는 요리 비법을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불을 끄고 뚜껑을 닫고 익혀야 해." 음식에 관한 요리에 관한 토끼의 이야기는 때로 찡하고 때로 재미있습니다. 저는 오이생채를 마주할 때마다 토끼의 말을 떠올립니다. 

토끼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냥 남들 다 하는 거라고 하지만, 토끼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는 제게 토끼의 음식은 특별합니다. 

토끼 말대로 보통의, 일상의 음식이 맞습니다. 하지만 특별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보통입니다. 특별함은 그 보통에서 빛을 냅니다. 


제가 토끼라면 <나의 음식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토끼가 아닙니다. 토끼가 아니니까, 출근길에 보았던 횡단 나무의 사진을 찍거나, 아이들과 했던 뭔가를 기록합니다. 역시 보통 동네의 풍경, 보통 센터 교사의 일상입니다. 


보통과 보통.  그 보통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특별함. 


언젠가 제 내공이 더 쌓인다면, 토끼에게 제안해야겠습니다. 뭔가를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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