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집 이야기
그 집은 크고 환했다. 7살이었다. 크고 환한 집에 살기 시작한 그 때 내 나이는. 집 하나를 짓고 그 집을 팔고, 집을 판 돈으로 또 집을 짓고 집을 팔던 아버지가 작정하고 지은 크고 환한 집이었다. 궁금하다. 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 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우리가 살았잖아, 우리가 살았던 집을 팔았잖아, 그리고 아버지는 새 집을 지었잖아, 그럼 우리 식구는 중간 중간 어디에서 살았던 거야. 무언가 또 복잡한 사정과 살림의 고단함과 리어카에 짐을 실어 나르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다. 한 달 살다 이사를 하고 두 달 살다 이사를 했다는데, 궁금함과 그 이사는 연결된 걸까.
아버지가 작정하고 지은 크고 환한 집에서 우리 식구는 만 육년 남짓 살았다. 70년대 집장사를 선택한 아버지는 친척들이 부러워할만큼 성공했다. 성공은 집 만큼 환했다.
마당 한 쪽에 자리잡은 동백 나무, 창고 위에 놓인 장독대, 연탄 아궁이, 그 연탄 아궁이때문에, 엄마는 한 밤에 연탄을 갈러 갔다. 다 타버린 연탄은 희고 맑았다. 집 옆 수돗가의 고무 다라이, 나는 여름 내내 그 고무 다라이에서 하늘을 보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크고 환환 집의 마지막 기억은 엉망이다. 부러워할만큼 성공한 아버지는 일년 동안 암 투병을 했고, 그 집에서 돌아가셨다. 그 집에서 아버지는 병증으로 입맛이 떨어진 걸, 엄마가 차려 놓은 밥상에 화풀이하시곤 했다. 병원에서 나온, 그러니까 이제 어떤 희망도 없는 마지막 큰 방에서 아버지는 누워 있었다. 어느 날 큰 방 장롱 문이 바닥에 떨어졌다. 쿵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검은색과 갈색의 중간 쯤이었던 그 장롱 색과 당초 무늬도 눈에 선하다. 장롱 문은 왜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을까.
그 집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집이고, 친가 쪽 친척들이 돈 문제로 행패를 부리던 집이었다.
나는 그 집이 좋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후 쯤으로 짐작되는 가을. 그 집에서 환하게 웃는 사진 속 어린 내 얼굴이 그 좋음을 증거한다.
십 삼년 전 쯤이었다. 구글 위성 지도로 검색을 했는데, 그 집이 그대로 있었다. 갈색 대문은 그 때와 똑 같았다. 그 해 부산에 내려간 나는 그 집을 찾으로 옛 동네로 갔다. 동네가 변한 건 당연한데, 길은 같았고, 무엇보다 그 집이 있었다.
그 집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면, 그 누군가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집의 누군가가 행복한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이제 곧 부숴지고 무너질 집이었다. 키 큰 나무는 그 어린 시절의 나무와 같은 나무일텐데,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집 마당에 쓰레기가 가득했다.
슬픈 게 아니라 무서워서, 나는 도망치듯 그 집을 떠났다. 뭐가 무서웠던 걸까, 내 유년이 쓰레기가 될 것 같아서, 아니 내 삶이 저 낡은 집과 낡은 집 가득한 쓰레기가 될 것 같아서, 무서웠을까?
칠 년 전에 다시 그 동네를 찾았다.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그 집이 무너지고 부숴지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이미 그 집은 없을 것이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를 찾고 집을 찾았다. 집은 없었다. 이번에는 집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동네는 공동 주택으로 가득했다. 아, 여기가 미영이네 세탁소 였고, 여기가 문희 집이었고, 여기가 또 누구 집이었으니까, 이 자리가 우리 집이었겠지 했다. 원룸 있습니다라는 벽보가 붙은 진회색 공동주택이 우리 집 대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련 된 진회색이라, 매끈매끈한 벽면이라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우리 집 대신 자리 잡은 그 집이 그냥 마음에 들었다.
이 주 전 아이들이랑 동네를 돌아다녔다. 아이들은 동네 탐험 경로에 자기 집을 넣었다. 자기 집이 목적지일 때 아이들이 얼마나 당당하고 활기찬지 모른다. 그 집이최신 빌라이든, 그 집이 삼각형의 작은 집이든, 그 집이 오래 된 붉은 색 구옥 빌라이든, 아이들은 자기 집 가는 길 맨 앞에 서고, 집에 도착하면 자기 집 소개를 하느라 바빴다.
그렇구나, 그랬구나, 나도 그랬지, 그 집이 좁고 그 집이 작고, 그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유쾌하지 않고, 어쩌면 불행할지라도, 아이들은 집을 좋아하는구나, 혼자 있으면 가끔 집이 어둡고 집에 아무도 없어서 속상하지만, 누군가에게 집을 안내할 때는 의기양야해지는 구나, 나도 그랬다.
그 집은 내게는 크고 환한 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