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숨을 고르기 위한 선

어린이 복지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일

by 열무샘

선을 긋는다는 표현을 좋아하세요? 야박하고 냉정한 느낌이라 별로 인가요? 관계, 특히 어린이와 관계를 맺을 때 선을 그어버리면 안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어린이는 친근하고 편안한 어른에게 마음을 열어줄 테니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어린이가 많이 모인 곳에서, 학교나 학원이나, 저희 같은 복지 현장에서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다르다고 확신하기에는 아직 2%가 부족하므로) 모두가, 다 함께, 골고루, 편안히 같이 지내기 위해서 ‘선’을 찾고 ‘선’을 그을 때가 많습니다.


폭력과 상처를 금지하고, 존중과 배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약속과 규칙이라는 ‘선’이 필요합니다. 어린이가 세계와 불화하지 않을 학습이란 ‘선’도 필요합니다. 진짜 중요한 ‘선’이 있습니다. 다 다른 어린이를 돌보느라 몸과 감정이 지친, 어른을 위한 거리 조절과 휴식이라는 ‘선’입니다. 또 많은 선이 있어요. 우리는 이 선을 잘 긋기 위해서 고민합니다. 구불구불한 선이 좋을지, 색깔 있는 선이 좋을지, 선의 길이는 어느 정도일지, 점선과 실선 중 어느 선을 고를지 정하고, 반성도 합니다.


프로그램도 ‘선’의 일종입니다. ‘어린이를 위해서, 어린이를 잘 돌보고, 어린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사랑과 정성을 쏟는다!’는 의지에 적당하고 적절한 선을 긋는 형태입니다.


프로그램은 ‘선’이 되어서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우선은 의지와 목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모양을 만드는 선입니다. 어린이 각각과 어린이 부분과 어린이 전체에게 필요한 형태를 그리는 일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선이기도 합니다. 하루의 리듬, 몸의 리듬, 에너지의 리듬. 기운의 리듬을 만드는 선이지요. 기타 등등 프로그램의 일에 관해서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 다른 어린이들 옆에 있어야 하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에게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숨을 고르기 위한 ‘선’이 되어줬습니다. 잘하고 싶다, 이 어린이에게 필요가 되고 싶다, 모든 어린이가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린이의 개별성을 모두 다 받아들이고 싶다, 어린이들이 모두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좋겠다 좋겠다는 희망. 그리고 실망. 그다음에 또 희망과 실망, 이 뺑뺑이 속에 프로그램은 언제나 ‘선’이었습니다.


지금 전체는 이렇고, 누구누구는 이러니까 이런 방식이 좋겠네. 이 방식은 이 정도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겠네, 우리 역량은 이 정도이니 요만큼 하면 되겠구나! 하는 ‘선 긋기’가 프로그램 기획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숨을 골랐습니다.


‘후유’ 하고 숨을 고르고

‘아하’하고 현재를 살펴 보고

‘으응’하고 미래를 맞이했습니다.


예술 활동을 기록해야겠다, 교안이라는 형식을 띠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숨을 고르기 위한 ‘선’!

나와 누군가, 우리의 ‘선 긋기’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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