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쫌 쓰는 어린이> 활동 14
그날은 그랬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희곡의 몇 문장을 들려주고 싶은데, 어떤 문장을 골라야 하지 궁리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서 '어린이들에게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알려주고 말테야!'라는 독백이 들렸습니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예요!) 어쩌면 어린이들이 처음 만나는 희곡 문장일 수도 있는데, “셰익스피어야 해” 하는 마음이 갑자기 확 올라왔습니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가 ‘무조건 최고’라는 뜻은 아니고요!)
나와 너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린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말의 힘으로 쓰인 글이 희곡일 뿐 아니라, 좋은 희곡은 좋은 시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들과 희곡을 읽고 희곡을 쓰는 건, 무리이지만 희곡의 방식을 빌어 시 쓰기가 더 확장될 것 같다는 기대도 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계획과 기대 속에서 등장했습니다.
“별들은 불이라고 말해도 좋다. 사랑이 거짓이라 말하지는 말아라.” (햄릿)
“나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리어 왕)
“내 마음은 네 마음에 기대어 있다.” (헨리 5세)
참 아무것도 아닌 문장인데, 이야기 속에서 이 문장은 특별해집니다. 어린이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쉬운데요." "나도 많이 하는 말인데요."
이런 반응으로 어른은 할 말이 많아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이, 어떤 순간에서 특별해지는 거야. 시를 쓸 때 너무 특별한 글을 쓰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어. 이렇게 툭툭."
셰익스피어가 너무나 유명한 희곡 작가라 제 이야기에 힘이 붙습니다.
이다음 시는 어떻게 썼냐고요? 그림책 보다 글이 많고, 그림이 적은 그림동화 시리즈 <꼬마 곰>(글 엘스 미나릭, 그림 모리스 센닥, 역 엄혜숙, 비룡소)을 읽었습니다. 꼬마 곰 시리즈는 우선 어린이들의 일상과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야기는 희곡처럼 대사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그 대사가 간결하고 풍부합니다. 꼭 시와 비슷합니다.
내 소원은 커다랗고 빨간 차를 한 대 갖는 거예요.
난 아주 빨리빨리 달릴 거예요.
난 커다란 성에 닿을 거예요.
- <꼬마 곰> 중에서
시리즈 중 어떤 책을 고르든, 상관없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몇 가지 문장을 칠판에 쓴 뒤 "우리도 이렇게 쓰면 희곡작가 셰익스피어처럼 될 거야."라고 말해줍니다.
그렇게 대사인 듯, 시인 듯, 저와 어린이들이 시희곡이라고 부르는 글을 쓰고 서로 발표하다 보면, 400년 전 셰익스피어의 웃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흐뭇한 표정의 그 얼굴이.
<활동순서>
1. 셰익스피어 대사 읽기
- 셰익스피어의 짧은 대사 몇 줄을 들려주며, 대사가 시처럼 들릴 수 있다는 감각을 엽니다.
- 셰익스피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줍니다.
2. <꼬마 곰> 이야기 읽기
- <꼬마 곰> 시리즈 중 한 권을 읽고, 장면 속 대사와 감정에 대한 느낌을 어린이들과 나눕니다.
- 대사를 쓸 장면 서너 가지를 함께 고릅니다.
3. 대사 한 줄 쓰기
- 어린이가 꼬마 곰이 누구에게 말하고 싶은지 정한 뒤, 말하듯 자연스럽게 대사 한 줄을 씁니다.
4. 시로 확장하기
- 작성한 대사 뒤에 마음이나 풍경 한 줄을 덧붙여 시희곡으로 확장합니다.
5. 낭독하기
- 감정을 넣어서 자신이 쓴 시 희곡을 발표합니다.
<준비물>
- <꼬마 곰> 시리즈 중 한 권
- 시희곡 쓰기용 종이와 필기도구
<똑똑똑>
1. 꼭 셰익스피어가 아니더라도, 꼭 <꼬마 곰>이 아니어도 됩니다. 어른이 끌리는 희곡과 책을 고르면 되지요. <꼬마 곰>뿐 아니라 같은 출판사의 <개구리와 두꺼비>(저 아널드 로벨, 역 엄혜숙, 비룡소)도 추천합니다.
2. 가끔 어린이와 만나는 어른은 '어린이스러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셰익스피어를 떠올리고 좋아하는 것도 어린이스러움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