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를 위한 결정의 감각 1

<동네 쫌 아는 어린이> 활동 9

by 열무샘

'어린이'와 '자치'라는 두 단어를 연결합니다. 이 두 단어 앞에 서면, 어른인 저는 한 없이 쪼그라듭니다. '나는 두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하는 질문에서부터 '나는 이 두 단어를 실현하고 싶어 할까?' 아니, '나는 이 두 단어가 불가능한다고 생각하기도 해.'로 나아갑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어린이 자치와 관련한 활동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계속 실패했습니다. 교육 활동에서 성공이 어디 있고, 실패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실패였습니다. 활동 후 무척이나 창피했습니까요.


'동네 쫌 아는 어린이' 활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이들과 동네 이야기 책을 만들고 나서, 어린이와 동네를 이어주고 싶었습니다. 어린이가 동네의 주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린이도 동네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몇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우선,일회성이 아닌 평소에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 두 번째, 평소에 자신이 없고, 주도권을 펼치지 못했던 어린이들이 실행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그리고 '동네 생활'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었으면 좋겠다였습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공동체 정원(저희 동네에는 주민이 돌보는 공동체 정원이 있습니다)의 식물을 가꾸는 일, 동네 어르신 건강 사랑방의 활동 재료를 정리하는 일. 이 두 가지라면 제가 세운 원칙에 맞고, 또 어린이들과 이야기 나누기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계획할 때 제 머릿속에는 이런 말이 왔다 갔다 했지요.

"놀이터 정원 수국 옆에서 사진 찍었잖아. 그 수국이 저절로 크는 게 아니라...."

"할머니들이 색칠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 건강에 무척 좋아. 열무에 오시는 할머니 중에서도...."

결과는 어땠을까요? 어린이들은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잡초 뽑기'와 '정리'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잡초를 뽑아야 하는 거잖아. 더운데."

"색연필 잘 고르면 되죠. 일 시켰으니까 뭐 사주세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당연하잖아요."라고 말씀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떤' 어린이든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동네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이상에, 그 당연함을 까먹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실패일 수밖에요.


이 지점에서 제가 놓쳤던 부분은 단순했습니다. 어른이 정한 일이라면, 어린이는 언제나 ‘수행자’로 남습니다.

그래서 방식 자체를 바꿨습니다.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결정할지’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어린이를 주체로 만드는 일은 ‘일상적 결정’을 경험하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보았습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정'의 감각을 깨우고, 이 결정 속에서 동네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로 말이죠.


'스파게티 탑 쌓기'로 결정의 감각을 깨우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협력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서 사용했던 스파게티 탑 쌓기의 목적을 '결정'으로 바꾸었습니다. 재료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스파게티와 마시멜로만 제공합니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할 재료는 모두 어린이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 활동의 목적은 ‘결정의 순간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활동 중 저는 여러 차례 “스톱”을 외치고, 그 시점의 결정을 짚었습니다.

“지금 이 모양으로 가기로 한 건 누구의 결정이야?”

“누가 의견을 냈어?”

아이들은 ‘탑을 쌓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결정과 팀 결정의 차이를 이해했습니다.


탑 쌓기가 끝난 후, 어떤 모둠이 탑을 높이 쌓았는지 확인한 후 수많은 '결정'에 대해서 회고했습니다.

- 결정하기 가장 어려웠던 점은

- 모둠을 위해서 내가 제일 잘했던 결정은

- 우리 모둠의 결정 중 최고의 결정은

회고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모둠 전원이 이렇게 말했거든요.

"마시멜로를 탑 쌓기에 사용하지 않고, 나눠 먹었던 게 최고의 결정이었어요!"


<활동 순서>

1. 활동 알림

- 스파게티와 마시멜로를 보여주고, 어떤 활동을 할지 물어봅니다.

- 어린이들은 무슨 활동을 할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미 해 보았기 때문이지요.

- 어른은 지난번 활동과 이번 활동의 다른 점을 이야기해 줍니다.


2. '결정' 하기

- 두 가지 재료 외 나머지 재료는 모둠이 '결정'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 마시멜로를 먹어도 되냐는 질문에 역시 모둠이 '결정'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 활동 중간중간 스톱을 외치고 결정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3. 탑 쌓기 완료와 '결정' 회고

- 제일 높게 탑을 쌓은 모둠을 정합니다.

- 결정을 키워드로 오늘 활동을 회고합니다.


4. 다음 활동 예보

- 오늘 교사가 제일 많이 말했던 단어를 맞춰보기로 합니다. 몇 번의 시도 후 어린이들이 정답을 맞힙니다.

- 다음에는 '결정'하는 능력을 키워본다고 말해줍니다.


<준비물>

- 스파게티와 머시멜로우

- 스카치테이프, 실, 스펀지, 고무줄, 핀, 빵끈, 목공풀 등등 가능한 많은 재료

- 어린이들이 많은 경우 스톱을 알리는 종 혹은 호루라기


<똑똑똑>

1. 같은 활동도 ‘어떤 목적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린이에게 늘 새로운 활동을 제시하는 것보다, 자기 활동을 다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경험을 주는 편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2. 스톱을 적절히 외치는 게 이번 활동의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중요한 걸 잘하는 데, 딱히 정답이 없습니다. 활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면서, 어린이들을 잘 관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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