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어린이 작가에게
참견이란

<이야기 쫌 만드는 어린이> 활동 8

by 열무샘

이야기를 그림으로 드러내는 일, 저와 어린이는 이 일을 '원화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원화 작업은 ‘이야기 쫌 만드는’ 시간의 꽃입니다. 어린이들이 가장 하고 싶어 했고, 가장 오래 걸리며, 가장 힘들어하고, 가장 재미있어하는 과정입니다.


어린이들은 원화 작업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자신임을 온몸으로 증명합니다. 정해진 활동 시간이 아닌 평소에도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수도 없이 '실패, 실패'를 외치는 어린이, 한 회에 다섯 장 이상의 그림을 그리는 어린이,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리기 위해서 눈이 빠져라 도화지를 쳐다보는 어린이... 원화 작업을 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저는 이 어린이들에게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 주기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른이 뭐라고 하든, 옆에서 뭐라고 하든, 이 이야기를 만드는, 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나라는 사실을 어린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작가라면, 작가는 이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원화 작업을 할 때, 어른이 할 일은 없을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원화 작업의 주체가 어린이라는 점에서, 어린이들이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어른이 할 일은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는 어린이입니다. 어린이에게 어른이 필요하다는 점은 원화 작업에도 적용됩니다.


1. 자기의식 저 밑에서 이야기를 끌어오는 어린이는,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부수고, 상처 주고, 죽이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작품 속에 그립니다. 그러다 평소에 자신이 싫어했던 실제 친구를 작품 속에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어린이가 이야기로 나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어른은 그 장면에서 이야기를 멈춰줘야 합니다. “안 돼.”라고.


2. 욕망은 적당을 모릅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놀면 놀 수록, 어른만 그런 게 아닙니다. 어린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 만들기의 욕망은 같은 패턴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게 합니다. 끊임없이 남자 친구에게 고백하는 이야기, 끊임없이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 등등. 꼭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게임과 비슷합니다. 역시 어른이 멈추지 않는 욕망에 선을 그어주어야 합니다.


3. 어린이는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를 훨씬 더 많이 감각합니다. 원화 작업을 할 때도 비슷합니다. 저는 "전에 주인공이 보선이 있는 곳을 모른다고 했지!" "맞다. 보석을 찾고 추리를 해야 끝이 나는 거죠."라는 어린이의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제까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는지, 이 이야기는 끝이 나야 한다는 사실을, 어른이 어린이에게 짚어 줘야 합니다.


물론 어린이들은 싫어합니다. 원화 작업으로, 이야기 만들기로, 훨훨훨 신나게 날아가고 있는데, 어른이 잔소리하고 참견하는 게 좋을 수가 없지요. 어린이 작품 속에 종종 제가 악당 마녀로 등장하곤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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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마녀가 되어도 할 수 없지요. 너무 멀리, 너무 높게 날아가다 추락하면 안 되니까, 어른 옆에 어린이가 있는 게 아닐까요? 프로 작가에게 편집자가 있듯이, 어린이 작가 곁에도 참견하는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참견 방법>

1. 정기적으로 참견합니다. 참견의 방법은 일대일 만남입니다.

2. 참견하는 시기는 시간 순서에 따라 다릅니다. 초반에는 원화(뒷 면 글 포함) 1장을 완성한 후, 중반 이후에는 원화 작업과 상관없이 한 회에 한 번입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장시간 만남을 갖습니다.

3. 만남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 어린이가 자기 입으로 지금까지 이야기 내용을 말합니다.

- 이야기 내용을 말하면서, 어른이 말하기 전에 "앗차. 내가 까먹었네."라고, 어린이 스스로 작업의 문제를 알아차리는 경우가 꽤 있어요.

- 어른은 어린이와 함께 원화를 살펴보면서, 어린이가 너무 높게 너무 멀리 날아가지 않나 주의를 기울입니다.


<똑똑똑>

1. 참견은 어렵습니다. 어디까지 참견하고, 어디까지 가만히 있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정답은 아니지만 몇 가지 원칙을 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어린이의 개성은 칭찬하자, 이야기 만들기를 통해 어린이가 힘을 얻어갈 수 있도록 하자 등등. 어른에게도 자기만의 원칙이 필요합니다.


2. 어린이 개개인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원화 작업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원화 작업이 일률적 기준으로 평가된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어린이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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