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쫌 만드는 어린이> 활동 13
어린이 옆에 있는 어른은, 어떤 면에서는 괴롭습니다. 어린이 옆에 있는 일이 지닌 '윤리'적 특징 때문입니다. 약하고 작은 존재인 어린이는, 어른의 짐작보다 더 많은 영향을, 어른에게 받습니다. 비난, 칭찬, 미움, 사랑 모두 어린이가 어떤 사람이 되는 데 영향을 줍니다. 때로는 자립을 돕는다고 믿은 선택이, 자립을 막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어린이는 자기 옆에 있는 어른을 닮아갑니다. 말, 말투, 습관, 생각, 성격까지 다 흡수해 버립니다. 가끔 이렇게 무서운 일을 내가 하고 있구나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만둬야 하나? 나도 그렇지만 어린이를 위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도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거창한 목표가 있어도, 목표는 설명에 불과합니다. 어린이들은 그 목표에 따라 성장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경험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예를 들면 그런 거지요. 활동 시작에 '예술의 다양성을 실현하다.'는 목표가 있다고 어린이에게 알립니다. 그런데 활동 마무리 시간에 어린이 작품에 순위를 매겨서 시상을 합니다. 이때 어린이들은 무엇을 더 강렬한 경험으로 기억할까요? 목표의 설명일까요, 시상의 장면일까요?
올해는 책 출판과 함께 어린이들이 직접 '과정'을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목표와 활동이 불일치하다는 찝찝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마감을 독촉하고, 결과물의 질을 요구했으니까요. 오직 결과만을 위해 달려가는 저를 보면서, 어린이들이 이 활동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실패, 고민, 기쁨, 재미를, 그 과정을 전시해 보자! 어린이 작가들은 물론 하겠다고 했지요. 아카이빙 박스라는 단어를 배우는 시간부터 재미있어합니다. 몇 회기 동안 아카이빙 박스를 준비하면서, 몇 번의 정적을 만났습니다. 어떤 자료를 아카이빙 박스에 넣을지 결정하는 시간, 이렇게 저렇게 아카이빙 박스를 채우는 시간, 꽤 긴 시간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모두 다른 아카이빙 박스를 마주합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배워 나갑니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활동 순서>
1. 아카이빙 전시 이해하기
- 우선 아카이빙이라는 단어를 알려주지 않고, 아카이빙 전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 어린이들이 알고 있는 결과 전시와 아카이빙 전시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 초성놀이로 '아카이빙' 단어를 맞춥니다.
- 함께 아카이빙이 무슨 뜻인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 내용을 이해합니다.
2. 다 같이 아카이빙 전시 계획하기
- 아카이빙 전시에 무엇을 전시할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말합니다.
- 어느 정도 아이디어가 나왔으면, 각자 포스트잇에 무엇을 전시할지 적습니다.
- 포스트잇 하나에 전시 내용을 적습니다. 한 사람 앞에 최소한 포스트잇 5장을 제안합니다.
- 포스트잇을 모아서 칠판에 붙입니다.
- 어른이 비슷한 내용끼리 모읍니다.
- 다 함께 칠판으로 나와 전시 내용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3. 나의 아카이빙 전시 계획하기
- 각자 자기 아카이빙 전시를 계획합니다.
- 실패 원화, 아이디어 메모, 연습 종이, 작가 수첩 등을 자유롭게 전시하기로 합니다.
4. 아카이빙 박스 만들기
- 어린이 책 아카이빙 박스 예시 사진을 보여줍니다.
- 말이 아닌 '실제' 이미지를 보면서 어린이들은 자신의 아카이빙 박스 만들기에 자신감을 가집니다.
- 종이 박스를 조립합니다.
- 아카이빙 박스에 여러 오브제를 넣습니다.
- 완성된 아카이빙 박스를 한 곳에 두고 함께 바라봅니다.
<준비물>
- 종이 박스(반제품) 재료
- 아카이빙 오브제를 임시 보관할 서류 봉투
- 다양한 아카이빙 오브제(어린이들이 선택하고 준비한 오브제)
- 포스트잇
<똑똑똑>
1. 최소 2회 이상의 활동입니다. 저희는 총 3회로 진행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새로운 욕구를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2. 아카이빙 박스를 만들면서, 새로운 작업도 가능합니다. 작가 모습을 그리고 싶다, 내 소개를 하고 싶다는 어린이의 결정을 적극 받아들여요!
3. 어린이들이 왜 아카이빙 박스 만들기를 좋아할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과정 전시라는 이름도 있지만, 어린이들이 본래 모으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