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재의 인중

by 열무샘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 심보선 ‘인중을 긁적거리며’ 중에서



한글도, 수학도 바닥이다. 툭하면 싸운다. 싸울 때면, 주먹과 발이 주저 없이 나간다. 어른도 처음 들어보는 욕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아이가 이 정도면, 친구도 어른도 좋아하기 힘들다. 경재는 이렇다.

기분이 좋을 때 경재는 팔과 다리, 온몸을 흔들고 팔짝팔짝 뛴다. 그러다 꼭 옆 아이를 건드리고, 끝내 싸움이 시작된다. 밥을 엄청 먹는다. 저렇게 많이 먹는데 왜 살은 안 찌는지, 몸은 삐쩍 마르고, 바지는 깡총하다. 좀처럼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 끊임없이 먹는 아이, 얇고 작은 옷을 입는 아이를 보는 건 힘들다.

어떤 어른은 자신과 닮은 아이를 좋아하고, 어떤 어른은 자신이 갖추지 못한 장점을 지닌 아이를 좋아한다. 밝고, 반듯하고, 잘 웃고, 공부 열심히 하고, 똑똑하고, 잘 따르는 아이. 어른들이 경재를 싫어한다 해도, 그 어른을 탓할 수 없다. 어른도 사람이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이는 대개 비슷하니까.

칭찬을 해도 시큰둥하다. 어떤 때는 “경재 잘했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얼굴을 한다. 눈이 마주칠 때는 거의 화가 난 상태다. 부르르 떨면서, 억울해하는 얼굴, 혹은 겁에 질린 눈. 어른의 좋은 마음이 좀처럼 전달되지 않는 아이, 호의는커녕 어떤 반응도 쉽게 보여주지 않는 아이. 경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경재는 공부방의 문제아다. 동생, 친구, 누나, 형 모두 똑같이 말한다. “경재 정말 싫어요.” 아이들을 나무라지 못하겠다. 내가 봐도 경재가 싫어할만하다. 그러지 말라는 건, 어쩐지 아이들에게 착한 아이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 공부방에 머무르는 네 시간 동안 ‘경재가’ ‘경재 때문에.’ ‘경재야.’라는 말을 사십 번은 더 듣는 것 같다. 나도 많이 쓴다. 경재, 경재, 경재.

선생님들에게도 경재는 골칫거리다.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서 조금이라도 말이 통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기색이 안 보인다. 십 분 공부시키는 데 삼십 분이 소요되고,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다. 창문 밖으로 바깥을 내다보다, 안전 문을 열고 몸을 밖으로 뺀 적도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얼마나 철렁했는지.

한 번은 얼굴에 손톱자국이 한가득 해서 공부방을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고개라도 끄덕거려야 할 텐데, 무뚝뚝한 얼굴로 “몰라요.” 그런다. 공부방 저녁 급식이 다 끝난 시간에 출석부에 제 이름을 쓰려고 나타난 날도 있었다. 어디서 놀았는지, 얼굴은 꾀죄죄하고 땀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밥도 없고 반찬도 없는데, 만두를 쪄줬더니 허겁지겁 먹는다.

늦은 저녁 만두를 먹는 경재를 앞에 두고 선생님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심보선의 <인중을 긁적거리며>를 읽은 어린 친구는 자신도 이런 청혼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달력에 사랑의 날짜를 빼곡히 채우는 여인. 오전을 서둘러 끝내고 정오를 넘어 오후를 향해, 내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기는 여인.’이라는 수식어를 부여받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일랑 잊고서, 인중을 긁적거리며, 나와 함께 살아요.’라는 근사한 청혼이라니. 어떤 남자, 어떤 여자도 받고 싶은 청혼일 테다.

누군가 ‘옛 동지와 함께 첨탑에 올랐다 떨어져 다친 친구, 그들의 붉은 피가 내 손에 닿으면 검은 물이 되고.’라는 문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이십 년 저 너머를 떠올렸다가, 현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 그 사랑의 대상이 연인이든, 이웃이든, 진리이든, 역사이든 모든 사랑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우리는 믿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좌절할 테니까. 연인은 변심하고, 이웃은 배반하고, 진리는 보이지 않고, 역사는 거꾸로 가니까. 연인, 이웃, 진리, 역사 모두 내 것이 아니니까. 사랑의 대상은 내 것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내 전생을 아는 천사가 지그시 누른, 모든 것을 망각하라고, 하지만 네 삶은 이미 정해졌다고, 그렇게 생겨 난 인중. 우리 삶은 코와 입술의 가운데에 지나지 않는 살덩이를 필연과 운명의 증거로 받아들일 만큼 약하고 절박한 걸까?

이제 나는 어떤 것에도 ‘반드시’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근사한 청혼도 결연한 연대도 없다. 아이들과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를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가능한 호의와 공평을 유지하는 것도 버겁다. 내가 만났던 아이가 어떻게 변할지, 어떤 어른이 될지, 그 어른이 누군가를 어떻게 해할지 모른다. 하물며 아이를 책임질 공동체를 꾸린 것도 아닌, 그저 간간이 아이를 만나는 내가 뭐 대단한 교사 인양, 운명의 선생님 인양 구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내가 손가락을 인중에 갖다 대는 이유는 뭘까.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그랬다. 공부방 선생님과 다르고 싶어서, 초등학교 2학년 아이쯤은, 그 아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커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었다. 경재의 행동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기 때문에, 몇 가지 원칙과 규칙으로 아이를 대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경재가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변하는 게 내 눈에는 보였다. 맞춤법이 다 틀린 편지를 쓰기도 했고, 공부가 재밌다는 말도 했다.

공부방 문 앞이었다. 누군가 “깔깔 선생님!”이라고 불러 뒤를 봤더니 경재였다. 경재가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세상에,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날 보던 경재가 손을 잡아 주다니, 나는 맘껏 잘난 척을 하고 싶었다.

내 인중 속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던 걸까, 경재와 내가 친해지라는, 경재가 좋은 아이가 되고 내가 좋은 선생님이 되라는 비밀 말이다. 그렇게 내가 인중을 긁적거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아니라는 걸 모두가 다 안다.

그날 경재는 친구를 때렸고, 때린 이유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심한 말로 한 선생님을 언짢게, 아니 어쩌면 그 선생님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선생님 싫어요, 선생님 말 안 들어요로.

잘난 척을 거둬야겠다. 경재가 변했다고 으쓱 댈 일도 아니고, 내가 좋은 교사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마음을 페기 처분해야겠다 .

경재는 경재다. 나는 경재와 함께 있는 순간에 그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어른일 뿐이다.



경재의 코와 입술에는 인중이 있다. 경재의 인중에 숨은, 경재가 모르는 전생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좀처럼 사랑받기 힘든 행동을 하는 게 경재의 운명일까, 경재의 인중에는 그런 운명이 숨겨져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편안하지 않은 환경, 넉넉하지 않은 집 안, 혹은 유전과 기질적 이유로 경재는 지금 모습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이 문제 행동을 하는 건 불가해한 운명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인 구체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자꾸 경재의 인중에 다른 무언가가 숨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달력에 날짜를 채우게 하는 연인을 만난다든지, 높은 데서 떨어지는 자신을 받아주는 친구를 만난다든지 하는 운명까지는 아니래도, 아빠가 고함을 지르지 않고, 엄마가 편안해지고, 경재를 귀엽게 받아주는 넉넉한 교사를 만나고, ‘네가 참 멋져.’라고 말해주는 친구를 만나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이 예정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인중에 차가운 손을 갖다 대는 건, 어쩌면 경재를 포함한 아이들 때문일지 모른다.

조금만 더 생각해 봐. 저 아이들 모두에게 인중이 있어. 나는 알고 있어. 아이들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기대할만한 어떤 미래 같은 게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그러니 넌 멈추지만 않으면 돼. 그렇게 천사가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지금도 내 인중은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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