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닌 척하는 것으로

by 열무샘

우리가 가난하므로 사악해질까?

- 존 웹스터, <하얀 악마>



폭력, 절도, 살인을 부추기는 뇌는 귀 바로 뒤쪽에 발달했다, 귀와 이빨, 머리카락, 입술 생김새로 살인자를 알아낼 수 있다 등등. ‘범죄 사회학’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스무 살 초반이었다. 정말 웃겼다. 머리 모양과 얼굴 생김새 따위로 범죄 가능성을 측정하다니, 이런 바보, 멍청이 같은 이야기가 어디 있나 싶었다.

하지만 이 괴상한 학문은 홀로코스트와 인종 폭동의 간접적인 원인이 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내 비웃음과 상관없이.



“쟤 머리 모양 이상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지능이 떨어진 아이들은 얼굴에서 나타나요.”

“한글 모르는 아이들 어쩐지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아요. 영수 좀 보세요. 입도 그렇고.”

종종 듣는 말이다. 듣는 순간 ‘말도 안 되는’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뒤 끝이 개운치 않다. 찜찜하고, 민망하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서.

한글 교실 아이들을 포함한 어디선가 만난 가난한 아이들 중에는 유달리 뚱뚱하거나 마른 아이가 많다.

민희는 처음 만난 4월부터 그 해 12월까지 계속 살이 쪘다. 티셔츠가 꽉 끼어서 보는 사람이 불편할 정도였다. 하루는 멜빵 치마를 훌러덩 벗어 버리는 바람에, 나한테 무척 혼이 났다. 민희는 멜빵 치마 때문에 배가 아파 죽겠다고 징징거렸다. 나는 민희를 볼 때마다 “아이스크림 너무 많이 먹지 마.”라고 잔소리를 했다.

온몸의 뼈가 성난 것처럼 앙상하게 드러난 지호, 지호는 과자도 좋아하고 밥도 잘 먹었다.

재민이는 목이 없었다. 턱 살이 너무 많아서 목이 보이지 않았다. 1학년 재민이가 4학년이 된 어느 날, 재민이를 보고 속이 울렁거렸다. 턱 때문에, 늘어난 하관 때문에 머리와 얼굴 모양이 삼각형으로 보였다. 그 순간 재민이 얼굴을 오래 보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밀려와서, 속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영수의 몸은 근육이란 게 없어 보였다. 어떻게 땅 위에 서 있나 싶을 정도였다. 글자를 쓸 때도, 도미노를 쌓을 때도 아슬아슬했다. 글자는 비뚤비뚤했고 도미노는 쉽게 무너졌다. 얼굴 근육도 발달되지 않은 걸까, 영수의 웃는 모습은 괴상했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얼굴, 웃음소리를 내지 않으면 영수가 우는 건지 웃는 건지 헷갈렸다.

유난히 작았던 꼭 다섯 살 여섯 살 같았던 몇 명의 아이, 까칠하고 파리한 피부의 아이, 앞 이빨 여덟 개가 모조리 비뚤 한 아이.

아이들은 친구가 자길 놀렸다면서, 뚱뚱하다고, 힘이 없다고, 이상하게 생겼다고 놀렸다면서 이르곤 했다.

지현이는 동글동글한 생김새에 잘 웃는 아이였다. 보통의 어른이라면 귀엽다는 느낌을 받는 아이였다. 지현이는 글자, 숫자 실력 모두 바닥이었고 지능도 낮았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현이를 보면서 지현이가 예뻐서 참 다행이라고, 다른 아이들도 지현이처럼 귀엽게 생겼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멍청한데, 바꿀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아이는 어른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다. 이 말은 윤리적 당위가 아닌 과학적 사실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생물 종에 비해 긴 양육 과정을 필요로 한다. 안아주고, 먹여주는 행위는 고되다. 고된 양육을 보상할 대가가 필요하다. 어린아이의 귀여운 용모는 그 대가를 위한 진화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동그란 눈동자와 부드러운 피부를 보며 마음과 몸을 아이 쪽으로 기울인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자주 보고 싶지 않은 용모를 지녔다면, 그건 어떻게 되는 걸까? 아이는 왜 그런 얼굴과 몸집을 하고 있는 걸까? 유전 혹은 운명일까?



민희 엄마는 민희에게 껌과 사탕을 사주고, 아침에 오백 원을 주며 간식을 사 먹으라고 한다. 민희가 드문드문하는 말로는, 민희 엄마는 못 살겠다는 말을 달고 산다. 민희 아빠가 자꾸 회사에 안 나가서라고 했다. 민희가 먹을 걸 좋아하는 건 유전일까, 잘못된 식습관 때문일까, 나는 영양학 전문가가 아니라 모르겠다. 민희는 뭐든지 모은다. 민희 가방에는 수십 개의 지우개와 온갖 종이와 몽당연필과 색연필이 들어 있었다. 걔 중에는 다른 친구들 것도 있었다.

재민이가 소아 당뇨 판정을 받았다. 재민이 형도 엄마도 뚱뚱했다. 재미이는 엄마에게 맞았다. 재민이는 하고 싶은 게 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냥 의자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는, 공부도, 운동도, 친구도 다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상담 선생님 말로는 재민이가 미술 치료를 하면서 조금씩 움직인다고, 칭찬을 받고는 소심하게 뭔가를 만든다고 했다. 재민이가 조금 날씬해졌는데, 당뇨 치료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 날씬해진 재민이는 전보다는 활기차게 움직일 테다.

한 번은 지호 뺨이 퉁퉁 부어서, 얼굴이 비대칭 적으로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빠에게 맞았다고 했다. 지호는 한 번 울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러다 아빠한테 맞았다고 했다. 건너서 들은 이야기로는 지호 아빠는 신체장애 판정을 받았고, 엄마는 지나치게 소심해서 아이들을 적절하게 양육할 능력이 없다고 했다.

영수도, 유난히 작았던 아이도, 까칠하고 파리한 아이도, 한 개의 앞 이빨도 제대로 나지 않았던 아이도 얼굴만큼 어딘가 문제가 있는 부모를 둔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가난과 부적절한 가정환경을 운명이라 말한다면, 아이의 현재, 미래 역시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러니까 타인이 할 수 있는 건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동정 정도일까, 그러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된 아이가 자기보다 약한 누군가를, 아내와 자식에게 자신이 받은 폭력을 고스란히 되돌려 준다면, 그건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아니 어른이 되기도 전에 끔찍한 집을 나가 어른 흉내를 내고, 오토바이를 훔치고, 매춘을 하고, 강간을 하고,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면, 너무 과한 상상일까, 아이들이 그럴 리 없다고, 그럼 신문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범죄자들은 어린 시절이 없었던 걸까, 그들은 어릴 때부터 범죄자로 타고난 걸까, 골상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건 누가 어떻게 간섭을 해도 변하지 않는 범죄자의 운명일까.



가난한 아이들이 귀엽지 않은 얼굴과 평균과 차이가 나는 체격을 하는 건 이유가 아니라 결과다. 돈이 없어서, 살기 팍팍해서, 가난이 대물림돼서, 음식을 만들 시간과 여유가 없거나, 우울하고 외로워서, 화가 나서, 그런 이유 때문에 발생한 결과일 뿐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법칙을 벗어난 돌연변이가 아니라, 가족과 국가, 경제 시스템이라는 사회적 법칙을 명백히 드러내는 표상이며, 그 법칙이 실패했다는 증거다.

같은 맥락으로 골상학을 비롯한 범죄 생물학은 틀렸다. 과학도 아니고 뭣도 아닌 미신이고 헛소문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골상학을 비웃을 자격이 없다.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훌륭한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를 거라는 생각, 마른 사람은 정신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 지나치게 작은 사람은 채용하기 곤란하다는 지침, 외모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흔해 새롭게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럼 한글을 모르는 가난한 아이들은 다 이상하게 생겼다는 발언은, 제발 살을 뺐으면 좋겠다는 잔소리는, 내가 가르치는 모든 아이들이 귀엽게 생겨서, 어른들의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속생각은 괜찮은 걸까? 골상학은 어처구니없는 학문이고, 외모로 인한 사회의 편견은 우리 모두가 고쳐야 할 문제고, 아이를 둘러싼 나와 내 주위의 생각은 정당한 건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걸까?

골상학 따위가 전부인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러나 끔찍한 만큼 실현 가능성이 없다. 편견이 전부인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 전체가 100% 완벽하게 외모 차별과 편견 따위로 똘똘 뭉쳐 있는 건 불가능하다. 골상학부터 민희가 살을 빼고 영수의 얼굴 근육이 발달했으면 하고 바라는 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구성원과 체계로 현실 사회는 구성된다. 어쩌면 선의를 가장한 내 생각 같은 것들이 저 꼭대기의 골상학 따위를 떠받치고 있는지 모른다.



가끔씩 드는 생각인데, 분노할 수 있을 때 실컷 분노하는 게 좋겠다 싶다. 순수한 분노는 자신과 상관없을 때, 켕기는 게 없고 불편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자꾸 분노할 대상이 없어지는 건, 나만 그런 걸까, 혹시 우리가 아닌 척하는 것으로 사악해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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