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은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 이 권리는 구두 필기 또는 인쇄 예술의 형태 또는 아동이 선택하는 기타의 매체를 통하여 모든 종류의 정보와 사상을 국경에 관계없이 추구하고 접수하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 유엔 아동 권리 협약 제13조
“씨발년아.”
미영이 입에서 욕이 나왔다.
“너, 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리도 후들들 떨렸다.
미영이는 온 힘을 다해 나를 노려보았다. 몸에 있는 에너지란 에너지가 전부 눈으로 쏠린 것 같았다.
계속할 말이 없었다. 이건 뭐지, 이건 뭐지.
이 건 뭐 지.
돌아보니 내가 “오늘은 선생님 옆에 앉는 거 안 돼.”라고 말했을 때부터, 뭔가가 삐그덕거리고 있었다.
2학년 아이들은 욕심도 많고 샘도 많았다. 수업을 할 때마다 교사인 내 옆 자리에 앉겠다고 서로 티격태격하곤 했다. 미영이가 제일 극성스러웠다. 아이들을 밀치고 자리를 차지하거나, 다른 아이가 앉아 있으면 “내가 찜했어!”라고 큰 소리를 냈다.
안 되겠다 싶었다. 차례를 정해 순서대로 앉히고, 일단 미영이는 안 된다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왜요? 왜요?”
“계속 선생님 옆에 앉았으니, 오늘은 다른 친구가 앉아야 해.”
“싫어요. 싫어요.”
칭얼거리는 미영이를 무시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그림책을 읽어주자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2학년 아이들은 그림책 듣기를 좋아했다. 미영이도 마찬가지였다. 미영이는 그림책도 좋아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인형 같이 예쁜 아이였다.
"선생님, 미영이 보세요."
아이들 말을 듣고 미영이 쪽을 쳐다보니, 미영이가 작고 마른 몸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게 보였다. 자기 자리에서 이 쪽 구석까지, 이 쪽 구석에서 저 쪽 구석까지. 폴짝폴짝 앉아서 뛰고, 엉금엉금 기었다.
“미영이 왜 저래요?” “원숭이 같아요.”
아이들 모두 한 마디씩 거들었다.
“하지 마.”
당연히 미영이는 내 말을 무시했다.
“그만 해.” “방해되잖아.” “하지 말라니까.” “너, 일어나.” “서 있기 싫으면 나랑 따로 이야기하자.” “와야 해. 빨리 따라와.” “왜 그러는 거야?” “말 안 한다면 할 수 없지. 여기서 반성해.”
미영이가 꽥 소리를 질렀다.
“알았어요. 씨, 잘 못 했다고요. 그러니까 나갈 거예요. 씨,”
‘씨’라는 접두사가 문제였다. 성질도 났고, 버릇도 고쳐야겠다 싶고, 아무튼 그랬다.
“안 돼. 여기 있어. 5분 동안 반성해.”
나는 혼자 프로그램 방으로 들어가서, 그림책 나머지 부분을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5분도 안 되었는데, 미영이가 문을 열고 불쑥 들어왔다.
“반성했어?”
미영이가 내 말을 듣더니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공부 같이 하자고 말해야겠다 싶었는데, 미영이가 꽥 소리를 질렀다.
“쳐다보지 말라고. 꼬나보지 말라고!”
미양이 눈이 향하는 방향은 제일 친한 예원이가 앉은자리였다. 예원이가 겁에 질려 나를 바라보았다. 예원이 눈에 담긴 공포를 보니까,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다.
“너 뭐라고 했어? 왜 예원이한테 화풀이 해.”
내 목소리는 무지막지하게 컸다.
그리고 미영이와 나는 다른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방 밖에 있던 다른 학년과 선생님이 듣든 말든 큰 소리로 싸우기 시작했다. 힘이 다 빠질 정도로 싸웠다. 미영이는 한 마디도 지지 않았고, 그냥 반말을 했다. 나를 향해 “조용히 하라고 했지.”라며 소리를 질렀고, 끝내는 ‘씨발년’이라고 말했다.
싸움은 다른 선생님의 도움으로 끝을 맺었다. 미영이는 실컷 혼이 났고, 나는 그냥 멍했다. 창피하고 당혹스러웠지만, 여전히 이게 뭐지, 이게 뭐지였다.
며칠이 지나도 ‘이게 뭐지’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미영이와 일단 화해했다. 나도 소리를 빽빽 질렀으니까, 아홉 살 아이 앞에서 감정 조절을 못했으니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미영이한테 다시 그러지 말라는 다짐을 받았다. 다짐을 받지 말 걸 그랬나 싶다.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자각은 언제나 이런 순간 아이에게 교훈적 다짐을 끌어내곤 한다. 변명 같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교사니까, 어른이니까.
나와 미영이는 다시 친해졌다. 아이들이 고마운 건 그래서다. 빨리 잊어준다. 내 실수를, 내 잘못을. 그러니까 나도 ‘이게 뭐지’의 답을 얼른 찾아야 했다. 내가 모르는 게 뭔지, 내가 놓친 게 뭔지.
한 달이 지나서야 '이게 뭐지'의 답이 조금 보였다. 미영이는 옆 자리에 앉지 말라는 말부터 화가 났던 거다. 이유를 충분히 설명만 해줬어도 화가 가라앉았을 텐데, 나는 “안 돼.”라는 원칙만 강조하고 그냥 수업을 시작했다. 기분이 나쁘고, 집중은 안 되고, 혹시 선생님이 날 싫어하는 게 아닐까 불안하니까 수업을 방해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미영이는 자기가 왜 화가 났는지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아이다. 조금만 시간을 줬다면, 마음을 회복할 여유를 줬다면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았을 테다.
나는 다르게 행동했어야 했다. “미영이, 속상하구나.”하는 공감의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어도 나는 그런 좋은 어른이 아니다. “미영아, 왜 그래?”라고 친절하게, 아니 그냥 있는 그대로 물어만 줬어도 좋았을 텐데, 짜증을 내고 아이를 야단치기 바빴다.
나는 어른이고, 미영이는 아이고, 나는 교사고, 미영이는 학생이다. 나는 미영이보다 힘이 세다. 나는 미영이
보다 가진 게 많다. 미영이는 내가 자기보다 힘이 세다는 걸 안다. 내게 잘못하면 혼이 난다는 것도, 대들면 대들수록 더 크게 혼이 나다는 사실도, 그래서 끝까지 대들고 화를 냈던 거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미영이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노력을 했어야 했다.
어떤 이는 그럼 선생님은 어른은 무조건 참아야 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내가 말하는 노력은 그런 게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서 약자라는 사실을, 어떤 순간이든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똑똑한 미영이도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어땠을까? 자신이 왜 겁이 나는지, 왜 화가 나는지, 아니 겁나고 화가 났는지 자각하는 것도 서투른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어른이었을까?
며칠 전,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좋은 일이 생겼다며, 그런데 비밀이라며 깔깔거리던 미영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방과 후 선생님이 왼 손 쓰지 마래요.”
고민스러웠다. 방과 후 선생님을 욕할 수도 없고, 아이에게 왼 손을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담임선생님한테 의논하는 건 어때? 나는 왼손 잡인데 방과 후 선생님이 그러지 말래요. 어떻게 하죠라고.”
“안 돼요. 담임선생님도 날 싫어한다고요. 엉엉엉.”
미영이는 계속 울었다. 아이들 몇은 미영이를 달래고, 몇은 선생님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요즘도 왼 손을 쓰지 말라며 야단치는 교사가 있다는 게 짜증스럽고, 담임선생님은 얘를 왜 이렇게 서럽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미영이가 교실에서도 그러는구나, 조금만 부드럽게 행동하면 좋을 텐데 싶었다.
“미영아. 혹시 선생님한테 막 화내면서 말했어? 전에 깔깔 마녀랑도 화내면서 싸웠잖아.”
내 말이 끝나자마자 미영이가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깔깔 마녀랑 싸운 걸 엄마가 알아서 더 혼이 났다며, 언니가 일렀다며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나도 그랬지. 미영이 이야기를 들을 시간을 주지 않았지, 계속 성질만 냈어. 그리고 야단은 미영이 혼자만 맞았어. 나는 미영이한테 그러지 말라는 다짐까지 받았으면서, 아무한테도 혼이 안 났어. 미영아, 미안해. 아무래도 할 말이 없네.
다른 이의 마음이 돼 보는 일은 힘들다. 스스로 공감을 잘한다고 자신하는 이를 보면 그저 부럽기만 하다. 아이를 만나려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또 아이들을 만난다. 잘 못하니까, 그래서 자꾸 원칙 같은 걸 만드는지 모른다.
아이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야, 아이는 어른과 달라, 같기도 하면서 다른 점을 잊지 말아야 해. 그리고, 그리고 아이들은 약해. 약하니까 내가 조금만 더 뒤로 물러나야 해.
원칙만으로는 안 되는 거지만, 그래도 까먹지 말아야 해. 아이들은 약자야.
준범이가 편지를 썼다. 준범이는 5학년, 다른 아이들이 놀 시간에 나랑 한글 공부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한 손으로 막고 낑낑대면서 쓴 편지였다. 절대 공부방에서 읽지 말고, 집에서 혼자 읽으라는 부탁을 다섯 번도 더 했다.
속으로 기대를 했었다. 선생님이 좋다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업 시간이 재밌다 정도는 적혀 있었겠지 싶었다.
열 줄 남짓 편지를 해독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준범이가 쓴 편지였다. 겨우 겨우 이해한 편지 내용.
“선생님, 수업이 지겨워요. 재밌기도 하지만, 별 스티커는 좋아요. 하지만 지루해요. 다른 아이들처럼 놀고 싶어요. 수업 시간에 놀아요. 공부는 지루해요.”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약간 실망했다. 수업 시간이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그렇게 편지를 비밀로 했나 조금 괘심 했다. 하지만 편지를 낑낑 대며 쓰던 준범이를 떠올리면 그냥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 정말 그렇게 내가 수업을 지루하게 했나 싶어서 창피하기도 했다.
해독한 편지를 다시 읽었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준범이 발을 떠올렸다. 준범이는 그 꼬릿 꼬릿 한 발로 열심히 운동장을 뛰어다녔을 테다. 준범이는 노는 게 제일 좋은 아이다. 준범이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아는 아이들 대부분이 노는 걸 제일 좋아한다.
다른 아이들이 자기네끼리 수다를 떨거나 빈둥댈 시간에 준범이는 나랑 책을 읽고, 글자를 써야 하니 얼마나 지루했을까, 내가 아무리 재미있게 수업을 한다 해도 노는 것만큼 좋을 리 없다.
준범이한테 말해야지.
선생님도 너랑 똑같은 마음이야. 노는 게 더 좋은 거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너랑 나랑은 공부를 하기로 약속했잖아. 그 대신 선생님도 노력할게. 재밌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걸로. 하지만 노는 것만큼 재밌지는 않을 거야.
준범이는 내 이야기를 듣고 뭐라고 말할까? 아무 말도 않고 역시 내 마음을 몰라 그러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