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어린아이가 그럴 수 있죠?

아이와 연애 감정, 혹은 아이와 어른

by 열무샘

그는 완벽한 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완벽은 이야기 속에나 등장하는 것이지 우리가 사는 삶에 속한 것은 아니다.

-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중에서


‘그게 왜 마음에 안 든다는 거죠?’라고 묻고 싶었다.

불쾌감 45%, 진정 궁금한 마음 45%, 나머지 10%의 정체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듣기만 했다. 상대방은 자신의 판단, 신념 그런 걸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묻고 싶었고, 그래서 묻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왜 문제가 있다는 거죠? 이유가 뭐죠?’라고.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여자 아이들이 모여서 킥킥거리고 소곤거리는 게 부쩍 눈에 띄었다. 어른인 내가 끼고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뭔가를 공유했다. 비밀이라고 했다. 비밀? 비밀이라고 하기에는 뭘 이야기하는지 귀에 다 들어왔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만 알고 있으라며, 귓속말을 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누구와 사귄다는 이야기였다. 두 명의 남자아이를 동시에 좋아하는 아이도 있고, 좋으면서 일부러 화를 내는 아이도 있다. 어떤 2학년 아이는 인기가 많아서 여러 아이가 고백을 했는데,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는 따로 있다고 했다.

와? 정말? 우와? 진짜?

비밀 아닌 비밀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 뺨이 볼그레하다. 사랑과 연애는 누가 언제 어떤 이야기를 하든 재미있나 보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바빴다.

그런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했다. 아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아직 사춘기도 안 된 아이들이 남자 친구가 어떻고 그러네요.”

질문도 아니었고, 단순 서술도 아니었다.

아이들의 가정과 지역 환경과 가난과 방치의 맥락 가운데 자리 잡은 이야기였다.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조그만 얘들이 그럴 수 있죠?”

내가 그에게 되묻고 싶었다.

“나는 당신이 이해가 안 돼요. 어떻게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초등학교 아이에게 연애 감정이 있냐 없냐는 문제를 논하고 싶지 않다. 성적 잠복기가 어쩌고, 애착이 어쩌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냥 내 경험을 보면 내가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가난한 마을이건 중산층 밀집 지역이건, 남자 아이건 여자 아이건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누가 누구를 사귄다는 건 언제나 아이들의 관심거리였다. 어른이 판단을 하고, 문제라고 삼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 ‘문제’ 발언 이후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어린아이가 이성에 관심을 갖는 걸 보며 어떤 기분이 드는지 질문했다. 다양한 대답을 들었다. ‘당연한 거 아냐? 얘들도 사람인데’라는 답부터 ‘좀 그렇지 않아?’라는 답까지. ‘관심 없다’는 대답도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이론적으로는 아이들도 평등한 인격적 존재니까 인정을 해야겠죠. 근데 아이들이 너무 노골적으로 그러면 뭔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나요?”

그러니 아이를 비난한 문제적 발언에 너무 열 받아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덧붙였다.

정답 같은 대답이었다. 우리 사회가 성을 바라보는 태도, 어른과 아이 사이의 위계 의식을 염두에 둔다면, 어린아이가 연애 감정을 드러내면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인정한다고 해서, 옳다는 건 아니지만.

‘순수’라는 표현이 걸린다. 어른이 아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대부분 ‘순수’와 연결된다. 아이는 어른과 다르니까, 티끌 없이 깨끗하고 세상의 때가 끼지 않았으니까, 곤하게 잠자는 아기, 엄마 손을 꼭 잡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 깨끗한 흰 자위 위로 반짝이는 큰 눈, 작은 몸집처럼 복잡하지 않은 언어 표현, 귀여운 미소 등등.

아이를 순수한 동심의 소유자로 바라보는 관점은 몇 가지 사실을 억압한다. 아이가 먹고 자고 안기고 싶은 욕망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아이도 어른과 똑 같이 미움과 증오를 포함한 온갖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어떤 계기를 만나면 어른보다 더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하지만 어른은 자명한 사실을 부정하면서까지 ‘아이는 순수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대부분 어른보다 대부분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아이는 어른과 다르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간결하고 명확하고, 즉각적이고 솔직한 존재. 정말 모든 아이가 그런 걸까? 만약 ‘네가 만나는 아이가 그렇지 않다면 넌 아이를 싫어할 거니?’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변명거리를 찾아본다. 나는, 어른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이미 지나가버린, 되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특별히 유년 시절이 행복해서가 아니라 사라졌으니까, 사라졌다는 이유로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 시절을 순수하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혹은 우리보다 약하고 작은 존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 환상을 만들고, 스스로 암시하는 걸까? ‘어린이는 귀엽고 순수하다, 그러니까 지켜야 해, 보호해야 해’라고.

머리가 아프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아이를 자신과 다른 존재로 보고, 자신과 달랐으면 하고 바라는 거고, 나 역시 똑같다는 거다.

나는 아이들이 사랑 고백 쪽지를 서로 건네고,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아이도 사람이니까 당연하잖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이라면? 혹시 아이들이 서로 입을 맞추고, 유달리 이성에게 성적 뉘앙스를 풍기는 행동을 한다면, 그 행동의 원인이 대중문화 탓이건 다른 이유건, 그래도 당연하잖아 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어떤 문제의 징후라고 볼 것 같다. 아니 실제로 그런 장면을 목격한다면 그 아이의 행동과 환경을 심각하게 분석하고 판단할 것 같다.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첫째, 아이는 인격적 존재다. 둘째, 아이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이 두 가지는 아슬아슬하게 동맹을 맺고 있다, 어떤 순간에는 서로 갈등을 일으킨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니, 미성년자 중범죄에 대한 처벌이니 하는 문제를 만날 때마다.

아이가 연애편지를 보낼 때는 첫째 관점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기고,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적 착취에는 둘 번째 관점이 확실히 이길 텐데, 입맞춤하는 아이를 보면 어떤 관점이 이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가 없다. 다른 어른들과 의논해도 마찬가지다. 한쪽 끝과 한쪽 끝,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할 텐데 말이다. 사회적 합의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치자. 우리 사회의 합의는 무엇이지? 합의가 있다 해도, 만약 그 합의가 가벼운 입맞춤은 괜찮고 더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라 한다면, 그 합의는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답은 없는 걸까?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당사자인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아이의 말을 들어보지 않았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너는 왜?”라고 물어보고 아이의 생각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아이의 말을 들어본다고 해서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아이의 언어는 어른과 다르다. 아이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어른이 있을까? 듣고 번역하는 과정에 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건 과연 가능할까?


어떤 문제든 나는 똑같은 결론을 내린다. 나는 아이를 모르겠어, 그러니까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라고. 완전한 건 없으니까, 완전하지 않으니까 변할 수 있고, 변할 수 있으니까 다행이라고, 여기까지 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게 왜 마음에 안 든다는 거죠?’라고 묻고 싶다. ‘당신은 어린 시절 누구는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로 웃어 본 적이 없나요?’라고.

문득 가수 아이유가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해프닝이 생각난다. 교복을 입고 성적 유혹의 포즈를 취하는 여자 아이돌인데, 스스로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어린 여가수는 참을 수 없다는 이중 의식이 웃긴다고 생각했었다.

그래, 스무 살이 넘는 여자 가수도 성적 욕망을 드러내면 안 되는데, 아이들이 그러면 불편하겠지, 너라고 다른 거도 아니잖아, 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같잖아요. 사람은 나이건, 인종이건, 성별이건, 학력이건, 지역이건, 성적 지향이건 차별받아서는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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