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고민하게 만든 a
감정에 관한 글을 써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은 작년 겨울, 학부모 한 사람의 제안이었다. 방과후에서 감정에 관한 글을 써보시면 어때요 하고. 그때는 또 ‘감정’ 그랬다.
방과후에 처음 들어와서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공감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만날 때도 공감, 학부모와 만날 때도 공감, 마을의 갈등 상황을 대할 때도 공감. 공감, 공감, 공감.
솔직한 내 느낌은 이랬다.
1. 공감이 뭐지? 교사들이 말하는 공감이 도대체 뭐지? 내가 감정을 이해 못하는 감정맹인가? 그런 면도 없지 않지.
2. 공감이 만능인가? 공감이 중요한 도구, 방법 태도라고 하는데, 왜 아이들은, 학부모는, 마을의 갈등 상황은 제자리걸음(제 자리는 아닐지도, 더디지만 효과가 있었을 수도)일까?
3. 그리하여 공감이 지겹고 지루해짐. 동어반복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공감 안에도 다양한 태도와 방법이 있고, 다른 색깔이 있을 텐데, 구체적 이야기가 오가지 않는다. 역시 결론은 지겹고 지루하다.
그리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관한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올봄. a로 인해서. 아마, 감정에 관한 첫 번째 글에도 a의 이야기가 있었을 테다. 고학년 a의 감정 표현에 관한 교사들의 생각, 태도는 조금씩 달랐다. 세세한 다름을 묶어서 거칠게 나누면 상반된 두 가지였다.
1. a는 오랫동안 나쁜 경험을 했다. 제대로 된 양육 환경이 아니었고, 자기 의지를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a의 감정 표출은 억눌렸던 자기 드러냄이다. a를 공감해야 한다.
2. a의 감정 표현은 무기다. 적절하지 못한 양육 환경, 현재의 스트레스를 인정한다. 하지만 현재 a의 감정표현은 자기 드러냄이 아니라, 타인을 조정하는 도구이자 무기다. a의 잘못된 감정 표현을 바꿔야 한다.
짐작하겠지만 가장 강하게 두 번째를 주장하는 교사는 나였다.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교사들은 여전히 공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고(물론 내 착각일 수도), 나는 교사들이 a를 대하는 태도에 어떤 무의식적인 영역이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자기 연민, 갈등을 원하지 않는 마음, 회피, 도덕심 등등. 내가 두 번째를 계속 주장한다고 해도,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a와 b, c가 관련된 어떤 사건에 너무 화가 나서, 회의를 하다 말고 방과후를 박차고 나갔다.
몇 개월이 지났다. a덕분에, 공감 때문에, 감정에 관한 글을 제안받았기 때문에 글을 썼다. 글을 쓰기 위해서 몇 권의 책도 샀다. 열심히 읽은 책도 있고, 대충 읽은 책도 있고, 하나도 읽지 못한 글도 있다. <감정의 항해 / 감정 이론, 감정사, 프랑스혁명>은 제일 먼저 읽고 싶었으나 엄두가 나지 않아, 시작도 못한 책이다. 오늘 겨우 책 뒷 표지의 추천사를 읽었다.
“레디는 감정이 생각과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탁월하게 전개해나간다.”
의지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감정뿐 아니라 생각, 행동 모두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의지가 강조되기 시작하면, 인간을 이해하는 폭은 급속하게 얇아진다. 생각도 마찬가지 일터. 생각하고 해석하고 이해한다고 해서 감정이 조절되지도 않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생각과 의지를 조정할 수 없다. 감정을 드러내고, 표출하면, 깨끗하고 순수한 자아가 돼서 생각과 의지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감정과 생각이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다’는 적절한 표현이다. 하나가 하나를 수렴할 수 있는 성질도 아니며, 하나와 하나과 같지도 않지만 다르지도 않다. 완전히 다르다는 표현을 놓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요즘의 a. a가 험악한 욕을 섞어 가며 다른 아이를 욕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옆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욕을 중단했다. a가 펑펑 울어서 따로 이야기했다. 적당히 받아주고, 적당히 농담을 했더니 웃다가 초콜릿을 먹었다. 그럼 괜찮은 게 아니냐고? 30분 후 나는 놀이터에서 다른 교사에게 악을 쓰는 a를 발견했다. a가 나에게 막말을 해서 혼이 났다. a는 울지 않고 자기 막막을 사과했다. 그럼 괜찮은 게 아니냐고? a는 내가 나간 뒤, 내 말을 듣고 나와 깔깔거리는 자기편이 되지 않아 준 동생 b, c에게 화풀이를 했다. a가 직접 화풀이라고 말했지만, a에게 당한 b, c는 펑펑 울었다. 달래는 내게 b와 c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다가, a가 집에 간 뒤에야, 왜 우는지 진짜 이유를 말했다.
다시 a를 대했던 교사의 다른 태도 첫 번째와 두 번째로 돌아간다. a가 나를 만날 때, 멈칫하거나 웃거나, 감정 표현을 중단하는 걸 보면 두 번째가 옳다. a의 감정 표현 역시 훈련될 수 있는 성질이다. 하지만 나 아닌 다른 교사와 동생에게 감정을 있는 대로 표현하는 걸 보면, 역시 첫 번째였을까?
남는 건 미래다. 내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a를 만날 시간도 있고, 읽지 못한 <감정의 항해>를 읽을 시간도 있고, 정리하고 글을 쓸 시간도 있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꼼꼼하게 책을 중심으로 글을 써야겠다. 내게 필요한 건 탐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