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해도 미안하지 않아.
2학년 남자아이들과 나는 만나면 으르렁거린다. “야.” “그만해!” “면담해.” 안 그래도 큰 내 목소리는 더 커지고, 눈이 동그래진다. 아이들의 힘도 만만치 않다. “왜? 왜? 왜?” “안가. 싫어.” “깔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깔마 싫어!”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으르렁거리는 아이들이 편할 때가 많다. 가끔은 귀엽기도 하다. 아이들이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는 확인할 생각이 없다. 궁금하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 호기심을 억누르는 편이 낫다.
일주일을 쉬고 출근했다. a가 날 보더니 그 큰 눈과 큰 목소리로 외친다. “왜 안 왔어? 보고 싶었단 말이야. 일주일이나 안 하고.” 집에서 공부를 하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b가 나를 부른다. “깔마! 왔어!” c와 d가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눈이 동그래진다. “깔마 왔다.”
a, b, c, d는 저 만만치 않은 2학년 남자아이들이다. 방과후 어떤 아이보다 요란스럽게, 뜨겁게, 반갑게 나를 맞아 준다. 저절로 내 입 꼬리가 올라간다. 흐뭇하다는 건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다.
하지만 5분이 지나지 않았다. 놀이터에 나가자는 말을 “안돼. 기다려.”라고 했더니, a가 짜증을 낸다. “왜? 안 돼? 깔마 짜증 나.” b는 흥분한다며 나랑 동네 한 바퀴 하자는 벌을 완강히 거부한다. c와 d는 코로나 거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잔소리하는 내게 연신 “흥”을 외친다. 하루 종이 나는 또 아이들과 으르렁거렸다.
나는 왜 이 으르렁거리는 아이들과 있는 게 좋을까? 편하고, 귀엽고, 흐뭇하고. 물론 짜증 나고, 화나고, 귀찮을 때도 많다. 한 번은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중에, 길을 가던 학부모가 인사를 하는 바람에! 뒷 문장은 생략하겠다. 그럼에도 나는 왜 이 아이들이 좋다. 교사 중 누군가 나보고 편애한다고 농담을 했는데, 가끔은 진짜 편애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다.
살아 있다는 느낌, 으르렁 아이들은 어떤 생생함, 움직임, 충만함을 준다. 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 걸까 몰랐는데, 일주일을 쉬고 난 후 출근하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a, b, c, d는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깔마가 와서 반가워라는 감정을. 온몸이 전하는 감정은 나를 살아 있는 한 사람, 구체적인 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아이들이 있구나 하는.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짜증 나, 싫어라고 나의 개입을 거부할 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감정 소비와 다르다. 으르렁 a, b, c, d는 즐거울 때는 즐겁고, 좋을 때는 좋으며, 싫을 때는 싫고, 속상할 때는 속상하다. 다른 곳에서 경험했던 화와 짜증을 나에게 뿜어내지는 않는다. 만약 뿜어냈더라도, 몇 분만 이야기하면 풀어진다. 그리고 또 즐겁고 재미나고 좋은 일을 찾아서 즐겁고 재미나고 좋은 감정을 지닌다. 온몸으로.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지 않다. 어쩌면 이 아이들이 소수인지 모른다. 작년부터 나를 힘들게 했던 몇몇 고학년 아이들은, 울고 비난하면서 다른 아이를 공격하고, 교사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위로를 요구하느라 바쁘다. 이유는 과거의 경험이 더 많고, 감정의 변화도 더디다. 어떤 아이는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모범생, 착하고 좋은 권력을 행사하느라, 자기감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아 보인다.
책상에 세워두었던 황인찬의 시집을 꺼냈다. 사랑의 시체에 관한 시다. 죽은 사랑이, 끝난 사랑이 서성이는 모습은 심란했다. “그냥 날아가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구절에 머문다. 으르렁 아이들은 자기감정을 잘 날린다. 훅 하고 날리고, 또 새로운 감정을 받아들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아이들이 계속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시의 제목은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이다. 날아가지 않는 죽은 사랑과 시 제목이 논리적 연결과 상관없이 어울린다.
살아 있는 사랑은 결코 사랑한다고 말한 다음 미안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랑은 긍정과 부정, 선호와 거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만들 테니까, 계속 새 살을 만들고 새 공기를 마실 테니까 말이다.
저 아이들을 떠올린다. 만약 내일 아침에 사랑한다고 말하면, 왜 그러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겠지. 역시 안 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