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와 왓슨
30초. 홈즈는 왓슨을 처음 만나고 나서 딱 30초 동안. 홈즈는 왓슨이 이라크 참전 군인이며, 심리적 외상으로 목발을 사용하고, 왓슨의 형이 알코올 중독자에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왓슨은 경이로운 눈으로 홈즈를 바라본다. 홈즈가 왓슨에게 말한다.
“당신 반응이 다른 사람과 다르군요.”
“다른 사람은 어떤데요?”
“보통은 꺼지라고 말하지요.”
왓슨은 홈즈의 메이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만난 지 30초 만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파악한 내용을 줄줄이 말하는 괴물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왓슨은 견디지 못하기는커녕, 홈즈의 능력에 감탄을 표한다. “당신 대단하군요.”
‘홈즈를 매우 좋아합니다. 파이프 담배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길쭉한 얼굴의 원작 탐정도 좋아하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하는 드라마 <셜록> 속 홈즈도 매우 좋아합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 홈즈는 홈즈니까, 추리물 애호가는 당연히 홈즈를 좋아하겠지 하고 짐작한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홈즈 역시 당연히 그러겠지 한다. 그는 홈즈처럼 영민할 뿐 아니라 섹시(섹시하다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니까)하기까지 하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홈즈는 홈즈니까.
고학년 여자 아이들과 성인지, 여성주의 혹은 ‘나와 그’에 관한 교육 중. 마녀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쯤이었다. 한 아이가 자기는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착하게 살아서 마녀재판을 당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떤 답을 해줄까 잠시 멈칫거리는데, 누군가 빠르고 큰 목소리로 말한다.
“야, 난 깔마가 뭐라 할 줄 알아.”
내가 물었다.
“뭔데?”
사실 나는 뭐라 말할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착하다는 기준이 뭐냐고 할 걸.”
나는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 나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었지, 착함의 기준이 뭐니, 착하다는 게 마냥 좋은 거니라고.
착하고 안 똑똑한 사람, 나쁘고 똑똑한 사람. 어떤 사람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바로 대답할 자신이 있다. 나쁘고 똑똑한 사람. 나쁘고 똑똑한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고민을 해야겠다. 전에는 똑똑함인 줄 알았는데, 최근에 내가 착함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럼 나쁜 사람? 숱한 범죄자의 이름이 생각난다. 뭔가 창피하다. 나는 비윤리적인 사람이었나? 아니다. 나쁘다의 기준은 뭐지? 범죄는 범죄다. 범죄는 착하다와 나쁘다로 서술될 성격이 아니다. 범죄는 타인을, 세상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그리하여 서술어를 붙일 수 없다. ‘악’ 일뿐이다. 다시 나쁨과 똑똑함 중에 고르려고 하니 선뜻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겠다. 무엇보다 똑똑함은 어떤 나쁨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은데.
영민, 브라이트, 정확, 치밀, 통찰력, 정보와 직관의 적절한 배합 등등. 홈즈의 똑똑함은 어떤 방향에서 보든 대단하다. 그는 너무 똑똑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재수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예의라고는 하나도 없다. 드라마 <셜록> 속 홈즈는 소시오패스로 묘사될 정도로, 비사회적이며 관계맹이다. 그는 한마디로 나쁜 사람이다.
나쁜 홈즈는 나쁘기 때문에 평생 범죄나 해결하고 외롭게 살았을까?
홈즈를 좋아하는 이유, 홈즈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홈즈에게 왓슨이 있기 때문이다. 왓슨은 “꺼지라”는 말만 들었던 홈즈에게 “대단하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치부를 다 파악하고 입으로 뱉어버리는 상황을 감탄으로 느끼다니, 왓슨은 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짐작컨대 왓슨은 요즘 표현으로 자존감이 꽤나 높은 사람일 게 분명하다. 스트레스로 멀쩡한 다리를 절룩거리고 있어, 알코올 중독 형이 너무 싫어, 참전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지금 현실이 지루해 등의 자기 진술을 있는 그대로 할 수 있는 사람. 사실은 사실이야, 불편하거나 창피하거나 할 필요가 뭐가 있어. 나는 그런 사람이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왓슨 역시 결코 착한 사람은 아니었을지도. 홈즈의 나쁨에 은근 대리만족을 느꼈을 수도.
홈즈와 왓슨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셜록>을 시청하면 절절히 다가온다. 부럽다. 홈즈는 절대 될 수 없고, 왓슨 정도는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아무래도 착각인가 보다. 왓슨의 왓슨 다움도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흉내라고 내 볼까 하다가 포기한다. 왓슨이 왓슨이기 위해서는 홈즈가 옆에 있어야 한다. 홈즈가 홈즈이기 위해서는 그의 추리를 기록하는 왓슨이 있어야 하듯. 홈즈와 왓슨, 왓슨과 홈즈이지. 하나가 없는 또 하나를 상상할 수 없다.
홈즈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 왓슨 역시 이 세상에 없는 존재.
그리하여 나는 이야기를 찾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