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싸이드 학교의 별난 아이들
레슬리의 두 갈래로 땋은 머리. 한 갈래 땋은 머리라면 어땠을까? 아니면 두 갈래 묶은 머리였다면 괜찮았을까? 폴이 레슬리의 두 갈래 땋은 머리를 잡아당기고 싶은 건, 폴 탓이 아니다. 레슬리의 총총총 땋은 머리, 허리까지 내려오는 두 갈래 머리가 자꾸 폴 손을 유혹한다. 폴도 참느라 힘들다. 땋은 머리에 손을 내밀다가 “안 돼!”라고 겨우 참아 내지만 쉽지가 않다. 폴은 땋은 머리를 외면할 수가 없다. 땋은 머리가 눈앞에서 당겨 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눈을 감아도 머리카락 냄새가 나고 머리카락 소리가 나는데. 심지어 머리카락 맛까지 느껴지는데 어떻게 참을 수가 있을까?
끝내 폴은 레슬리의 오른쪽 땋은 머리를 잡아당긴다. 선생님께 야단 한 번 맞고 말지 했는데, 이번에는 왼쪽 땋은 머리가 폴에게 말을 건넨다. “그건 불공평해. 나도 잡아당겨달라고!”
웨이싸이드 학교에는 다 별난 아이들만 있다. 거꾸로 쓴 글자만 읽을 줄 아는 아이, 어쩌다 보니 자꾸 경고를 먹는 아이, 빠진 앞니를 귀엽다고 말하는 아이들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아이. 한 명 한 명 떠올려 보니 별나지 않은 것 같다. 글자를 제대로 못 읽는 아이, 억울한 아이, 다른 사람의 칭찬을 믿지 않는 아이는 방과후에도 있다. 땋은 머리를 잡아당기는 폴이랑 비슷한 아이도 방과후에 많다.
“왜 다른 사람의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만져?”
내가 a에게 물었다.
a가 답했다.
“몰라. 이렇게 길쭉한 걸 보면 자꾸 손이 가.”
a의 답을 듣고 프로이트를 떠올린 건 나뿐이 아니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맞을 수도 있다. 아니 맞을 확률 70%? 생각해보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맞고 안 맞고가 뭐 그리 중요할까? a는 길쭉한 걸 보면 자꾸 손이 가고, 손이 가면 만져야 하고, 만진 다음 “왜 만졌어?”라는 화와 혼남과 책망을 듣는 건 다음 일이다. 땋은 두 갈래 머리가 폴을 유혹하듯, 길쭉한 물건이 a를 자꾸 유혹하는 걸.
웨이싸이드 학교의 별난 아이들에 관해서라면 아이 한 명 한 명 다 신나게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아이는 누굴 닮았고, 누가 소리를 지를 때 보면 이 아이가 떠오르고, 이름이 같다는 건 스트레스일 거야 아이들을 보면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저분한 전학생은 누구를 닮았을까? 비옷을 푹 뒤집은 채 얼굴은 보이지 않고, 지독하게 고약한 냄새를 풍겼던 전학생의 정체는 교실에 들어오고 싶었던 죽은 생쥐였다. 우리 아이들 중에서도 전학생 같은 존재가 있을까? 지금은 없는 것 같다. ‘냄새나는 겹겹 비옷을 걸친 것처럼 힘든 아이가 있다면 교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겠지’ 싶다가도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건 내 생각, 교사 생각이고. 아이들은 또 어떨지 모른다. 아이들 모두는 마음속 한 구석에 “나는 냄새나는 죽은 생쥐야.”라고 소리를 지를지 모른다. 뭐 아이들만 그런가?
이야기 하나하나는 울림이 깊고 크다. 하지만 울림은 떠올렸을 때 일. <웨이싸이드 학교 별난 아이들>은 굉장히 재미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삼십 층 건물의 학교, 사과로 변해버린 못된 선생님, 은근히 두렵지만 신기한 1과 3/4 같은 교실. 후속작 <웨이싸이드 학교가 무너지고 있어>에서는 소떼가 학교로 몰려오고, 감자 샐러드로 변신한 선생님까지 등장한다. 비현실적이고 기괴하고 기발하고 강렬한 이야기라고 책은 소개된다. 비현실적, 기괴, 강렬.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 반대도 정확하다.
현실적, 보통, 일상적. 방과후 아이들은, 모든 아이들은 다 비현실적이고 기괴하고 강렬하다.
저녁을 먹다 한숨을 내쉬는 내게 아이가 묻는다.
“왜 한숨을 쉬어?”
“힘들어서.”
“힘든 데 왜 교사 해?”
“재미있으니까?”
“진짜? 방과후 교사가 재미있어?”
아이는 그 날 오후 저학년 아이들 프로그램 보조 활동을 하다 눈물을 펑펑 흘렸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너무 힘들다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힘든데, 재미없으면 왜 하냐? 재미있으니까 하지.”
아이들은 원래 다 별나다. 별나서 별난 만큼 별나니까, 아이들은 원래 다 재미있다. 어쩌면 이건 내 마음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