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두나 씨

비밀의 숲 한여진 경감

by 열무샘

‘왜 여성 직업인은 정형화되었을까’라는 의문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다. 시민단체 여성 실무자는 딱 두 타입이었다. 1번은 남성과 비슷한 여성, 2번은 여성성을 충분히 지닌 여성. 기 센 여자, 큰 소리로 속사포처럼 해야 할 말을 하는 여자, 남자들만큼 많이 알고 똑똑한 여자는 1번이다. 2번은 따뜻한 품성으로 사람과 살림을 챙기는 여자. 나는 어떤 타입이었을까? 2번은 확실히 아니고 1번? 1번이라고 단정하려 하니 기분이 좋지 않다. 나는 기가 센 게 아니었는데,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자신 있게 밀어붙였을 뿐이라고. 큰 소리로 해야 할 말을 하는 여자? 큰 소리로 말한 적은 없는데, 확실히 말 속도가 빠른 건 사실이지만. 많이 알고 똑똑한? 남자들만큼은 틀린 표현이다. 나는 멍청한 남자들을 숱하게 겪었다.


확실히 내 인식에 문제가 있었다. 나라는 사람을 1번과 2번 타입에 대입하는 건 질색하면서, 왜 선배와 동료, 후배 여성은 두 타입으로 나누었을까? 편견과 선입견이다.


20년 전, 10년 전 시민단체, 시민사회 영역에서 여성 실무자의 영향력은 남성의 영향력에 비해 훨씬 적었다. 단체의 장은 남성이었고, 공기관이나 정치권에 진입하는 사람도 거의 남성이었다. 업무는 여성이, 결정은 남성이 하는 구조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이런 구조에서 여성은 두 가지 태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엉터리 결정을 하는 남성 ‘장’에게 문제 제기를 하거나, 문제가 터졌을 때 수습하는 역할은 1번. 남성 권력자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사람과 살림과 돈 문제를 챙기는 역할은 2번. 언뜻 보면 1번은 남성과 대립하는 것 같고, 2번은 남성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아무 말 안 하고 묵묵히 조직을 챙기고 잔걱정에 머리가 아팠던 2번은 그냥 평온하기만 했을까?

여성이 원래 1번과 2번의 타입을 가진 게 아니라, 1번과 2번을 요구하는 구조가 의문의 답이다.


정리는 이렇게 말끔한데, 왜 짜증이 나는 걸까? 여성을 두 타입으로 나눌 수 있는 일터는 그래도 낫다는 걸 경험했다. 나의 첫 직장은 남자 대다수에 오직 나만 여자였다. 끔찍했다. 요즘도 그때를 떠올리면 고개를 흔들 정도다. 안산의 시민 사회 영역에는 여성이 많았고, 그 여성들이 정형화된 타입이었다 하더라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짜증은 이런 게 아닐까? 나는 그 여성들에게 어떤 자매애, 연대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원래 내가 연대감이 없는 인간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예컨대 남자 실무자에게 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자고 주장했을 때….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줄줄이 말하다가는 이 글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될 것 같다.

나에게도 짜증이 난다. 고백건대, 나는 여성 실무자들이 답답했다. 왜 저렇게 할 말을 못 해, 왜 저렇게 멍청해 등등. 과거 일터에서 나라는 여성은 성인지 감수성은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성급하지만 바뀐 현실에 환호성을 지른다. 이유가 무엇이든(잘난 남자들은 이미 여기저기 주류 사회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남아 있는 사람은 소수의 남성과 다수의 여성이라는 기울어진 시민운동 판이 제일 큰 이유겠지만) 시민사회 영역에서 여성은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여성 실무자는 연대 의식을 자랑하고, 무엇보다 여성주의가 중요한 이슈가 되었으니까.


<비밀의 숲> 한여진 경감은 환호성을 증명해주는 캐릭터다. 그녀는 기가 센 1번도, 여성적 품성(여성적 품성이란 표현이야말로 편견 덩어리다. 여성적 품성이라는 말을 쓰는 건 동의해서가 아니다. 여성적 품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냉소다)을 지닌 2번도 아니다. 그녀는 그냥 한여진 경감이다. 잘 웃지만 화를 낼 때는 시원하게. 열심히 일하지만 기본 태도는 느긋하고 여유 있게. 그녀는 사고는 신속히, 말은 천천히 한다. (아, 왜 나는 사고도 말도 빠른 사람이 되었을까? 억울하다) 취미는 프라모델 모으기, 패션은 센스 있게, 건강한 맨 얼굴과 편한 신발 차림. 남자 동료와 적절한 우정을 나누되, 연애 감정 같은 건 과시하지 않는다.


한여진 경감이 중성적이라는 표현도 있던데, 동의할 수 없다. 중성적인 게 뭔가? 여성처럼 잘 웃다가 남성처럼 일을 잘하면 중성적인가? 바지를 입었는데, 머리는 길어서 중성적인가? 사고는 객관적인데 사람에게 따뜻해서 중성적인가?


나도 한여진 경감처럼 나라는 사람으로 그냥 드러나고, 인식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렇겠지? 세상은 좋아졌으니까. 아닌가?


세상이 좋아진 것만으로 한여진 경감이 가능했던 건 아니다. 배두나라는 배우, 8.5등신 인형이 되었다가, 노란색 후드티를 입고 시종일관 뛰어다닐 수 있는 배우가 있으니까, 한여진 경감은 <비밀의 숲>에서 나다움을 드러낼 수 있었다. 배두나라는 독특한 배우가 오랫동안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역시 시대의 변화이겠지만, 이 배우의 유일성은 유일성으로 칭송받아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시대와 세상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도 가능하지 않을까? 너무 가버렸다. 세상과 개인, 공정한 세상과 배두나라는 배우가 적절히 서로서로 영향을 주면서 한여진 경감을 창조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고 싶다. 나는 못했지만,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두나 씨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시대와 세상을 주도하는 사람이기를.


안녕! 두나 씨. 두나 씨의 자리에 더 많은 누구와 누구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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