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통제에서 감상주의로

그 날의 이상한 abcde

by 열무샘

이상했다. 불편했고, 약간 두렵기까지 했다.

a가 특별히 우습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b가 부자연스럽게 웃기 시작한다. c가 정말 우습다고 과장해서 맞장구를 친다. d가 자신은 우습지 않다고 말한다. a가 본격적으로 우스운 표정을 짓는다. b가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c가 깔깔거리고 더 크게 웃는다. d가 약간 멋쩍게 함께 웃는다. 멀리 있던 e가 다가와 웃는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면 얘네 재미있네 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상하고 불편하고 약간은 두려웠다.

a는 윤리 규칙, 놀이 방법 등을 아이들에게 명령하는 아이다. 한편으로는 아이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재미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b는 재미있게 놀고(혹은 놀아주고), 상냥하게 말하고(혹은 말해주고), 잘 참는(혹은 참아주는) 아이다. 심하게 다쳤는데도, 자신을 때렸던 아이의 안부를 묻는다.

c는 충동적이다.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하고, 잘하지 못해서 불안을 안고 다닌다. 충동적이라 불안한지, 불안해서 충동적인지 인과관계는 모르겠다. c는 아이들 안에서 인정과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d는 독립적이고 고집이 세다. 솔직한 편이다.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손과 발이 먼저 나가는 경향이 있으나, 그 나이 때의 성향, 방과후 문화를 감안하면 오히려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느낌이 든다.

e는 유아적이다. 몇 가지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있다. 또래 평균이 가지는 세상에 대한 관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유아적이라 의존적이다.


조금 더 정리하면 이렇다.

a, b, e의 관계는 오래되었고 강고하다. 어떤 틈이 잘 보이지 않아, 교사는 물론 친구와 형, 누나가 끼기가 힘들다. 충동적인 d는 아마 끼고 싶었을 테지만, 그 충동과 불안, 한편으로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심성으로 a, b, e의 관계에 끼어보다, 좌절하다, 관심 없다, 상관없다를 간간히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나는 안 우스운데.”라고 했던 d는 a, b, e랑 잘 놀지 않는다.


이상했던 건, 우습지 않은 광경을 보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불편했던 건, 우습지 않다고 말했던 아이나 멀리 있던 아이까지 와서 웃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부분은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내 평소의 가치관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려웠던 이유는 복잡하다. a, b, e의 사이가 계속 이렇게 강고해지리라는, 그래서 교사의 적절한 개입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두려움. 그리고 이 아이들 모습에서 보이는 ‘가부장적 구도’다. 어쩔 수 없이, 그리 보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스톱하지만 자연스럽게 자꾸 보인다.


무엇보다 저 장면의 감정 코드가 ‘웃음’이었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두려웠다. 웃는 것도 의도되어야 하나 싶어서, 어떤 열패감까지 느껴졌다.


<감정의 항해> 제2부 역사 속의 감정(1800~1850년의 프랑스) 편 제5장 감상주의의 만개 1700~1789 챕터 1 절대주의 군주적 명예 코드와 감정 피난처에 관해서 읽었다.

엄격한 감정 통제 정치를 겪고 있던 이 시기 프랑스 귀족들이 찾은 감정 피난처에 관한 사실에 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살롱, 프리메이슨, 연애결혼, 새로운 우정을 특별하게 만든 요소는, 감정 통제 정치에 관한 반발이었다. 여성들, 특히 기혼 여성들이 살롱 형태의 소모임을 선호하는 이유가 가부장 권력에 대한 반발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재미있는 건 200년 전의 살롱 중심인물이나 현재의 소모임 중심인물이나 비슷한 덕목을 칭송받고 있다는 점이다. 공감해주고, 잘 들어주고 등등(잠깐 고백. 나는 이런 소모임이 그다지 편한 사람이 아니라, 왜 기혼 여성들은 자기 이야기를 지지해주는 소모임을 좋아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흥미롭게도 책은 이 지점에서 연애결혼, 새로운 우정에 관한 찬사, 살롱과 프리메이슨의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감정이 아닌 ‘감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감정이 억압되었기에 감정이 용인된 것이 아니라 감상주의가 만개되었다? 아마 다음 주 독서에는 이유와 과정이 상세히 설명되지 싶다. 내가 주목하는 건 흔히 남성적 권력 방법이라고 이해되는 감정 통제가 여성 권력과 문화로 이해되는 감상주의로 어떻게 이행되는지 이다.


그 날의 abcde 사이에서 최고 권력자는 누구였을까? 특별이 우습지 않은 이야기에도 호응을 받는 a? 웃기 시작하면서 모두를 웃게 만든 b? 나는 c가 호응을 하지 않기를 바라고, d가 끝까지 웃지 않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e가 가까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랐다. 최고는 잘 놀아주고, 말해주고, 참아주는 b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 두렵다. 약간 두려웠던 게 아니라 많이 두려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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