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슬픔이에게

나는 너무 행복해서 울적해

by 열무샘

아이들이 a를 보고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와 닮았다고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닮은 것 같다. 동그란 얼굴이 비슷하고, 머리 모양도. 표정이 비슷한 걸까? 그럼 안 되는데. 아니다. 안될 것 뭔가. 슬픈 건 슬프고, 울적한 건 울적하다.


a가 갑자기 침울해졌다. 불러도 대답을 안 하고, 아무 말 없이, 얼어붙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아이들이 “응. 가끔 저럴 때 있어.”라고 말한다. 나도 안다. a는 가끔 그렇다. 하지만 가끔 저럴 때가 다는 아니다. 오늘 a의 부모님은 늦게까지 일을 하고, a는 엄마와 아빠를 기다려한다.


“왜 그렇게 울적해?”

“몰라.”

‘엄마, 아빠 기다려야 해서 울적한 거 아냐?’

“아니. 나는 행복해?”

“뭐래. 안 행복하잖아. 너 지금 표정 울적해. 엄마랑 아빠가 늦게 들어와서.”

“아니야. 나는 행복해. 너무 행복해서 행복이 너무 많아서 울적한 거야.”


a와 나는 또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거의 거의가 비슷했다. <인사이드 아웃>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a는 인사이드 아웃의 시공간이 너무 무서워서 끔찍했다고 말했다. 의아했다. 그게 그리 무서운 시공간이었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a가 <인사이드 아웃>을 본 건 오래전, 지금보다도 더 어릴 때였으니까.


그래도 a가 말을 해서 다행이지 뭐 하고 우리 대화를 마무리할 때쯤이었다.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던 b가 말한다.


“야, 너 바보냐? 행복하지. 행복이 너무 많아서, 기분이 울적해졌지. 울적한 건 행복한 게 아니라 안 행복한 거라고.”


나는 그런 b가 좋다. 우리 대화의 맥락을, a의 모순 표현을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b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아이다. b는 그런 아이고, 그런 아이는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선사받는 선물이다.


a는 그래도 계속 울적했다.


a를 봤다. 아빠가 기다리는 동안 게임을 허락했다면서 활짝 웃었다. 내가 사준 초코 쿠키에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지금은 행복하냐 안 행복하냐?”

“나 안 행복해. 울적해. 그래서 웃는 거야.”


a는 울적하다고 말했지만 무척 행복해 보였다. 아마 a는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 슬픔을 억압했던 라일리보다 더 편안하리라. 게임을 하고 초코 쿠키를 먹을 수 있어서. b가 “너 안 행복하거든”이라고 알려줘서. 거꾸로 말했지만 입으로 울적하다고 말할 수 있어서. 게다가 a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아이들, 슬픔이를 닮았다고 알려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모든 슬픔이가 a처럼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건 큰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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