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이야기
50권의 전집 사이에서 엘리너 파전의 책을 꺼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림은 드문드문 있었고, 그 그림이라는 게 어지럽고 거친 펜 선으로 형체를 알아보기가 어려웠으니까. 제목도 어쩐지 이상했다. <보리와 임금님>(사십 년 전 계몽사 전집 속 <보리와 임금님>은 <작은 책방>과 같은 책)이라니, 게다가 책 후반부의 제목은 ‘그림 없는 이야기’였다. 그림이 없는 이야기는 어렵고 지루할 거라고 열 살 남짓의 나는 생각했나 보다.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었던 것 같다. 50권의 대부분을 읽었고, 어떤 권은 읽고 또 읽었으니까, 읽을 게 없어서 꺼내 들었던 것 같다.
만약 그때 내가 <보리와 임금님>을 꺼내지 않고 계속 읽지 않은 채 놔두었다면... 지금의 나는 나일까? 나라고 형성된 나는 나와 다르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겠지? 시간은 세계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책 한 권과 지금의 나를 연결시키는 건 지나친 과장이겠지? 그럼에도 이 거칠고 어지럽고 이상한 책의 첫 부분이 현재의 나를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에는 ‘작은 책방’이라는 방이 있었어. 사실 그 집에 있던 방은 모두 책방이라고 할 수 있었지. 2층의 아이들 방에도, 아래층의 아버지 서재에도 책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 책들은 식당 벽에도 늘어서 있고, 어머니의 거실에도 넘쳐났으며, 2층 침실까지도 올라와 있었단다. 책 없이 사는 것보다 옷 없이 사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웠지. 책을 읽지 않는 건 밥을 먹지 않는 것만큼이나 이상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어. - <작은 책방 : 엘리너 파전> 첫 부분
읽자마자 떠올렸던 것 같다. 1층과 2층 계단 벽 사이에 빽빽이 꽂혀 있는 책을, 올라가는 계단처럼 책이 올라가는 장면, 책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위로, 위로 올라가고 계단도 영원히 위로, 위로 올라갈 것 같았다. 거실과 침실과 식당에도 가득 찬 책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좋았다.
그리고 엉망진창의 작은 방이 등장한다. “방바닥에도 책 무더기가 기어 올라가야 할 만큼 높이 쌓여 있었으며, 창문 옆에 서 있는 책 기둥들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지곤”하는 방이었다. 번듯한 책꽂이에서 쫓겨난 온갖 책이 “길 잃은 아이나 떠돌이처럼 모여 있는” 책의 방.
갖고 싶었다. 책의 방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그런 방을 갖고 싶었다. 낡은 책과 정적과 먼지와 조금의 햇빛만 존재하는 방을 갖고 싶었다. 책으로 넘쳐 나는 아이들 방과 서재와 거실도 부러웠지만, 작은 책방만큼은 아니었다.
시간이 흘렀다.
스무 살 때는 그랬다. 나를 능가하는 지식과 사람과 사건이 너무 많아서, 가끔 도망을 쳤다. 갈 데라고는 도서관뿐이었다. 800번대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들고 읽었다. 지식과 사람과 사건을 연상시키는 책을 쳐다보기가 싫어서 애마부인의 원작이라고 소개된 책을 읽기도 했다. 800번대 서가가 지루할 쯤에, 4층으로 올라갔다. 오래된 잡지를 뒤적이다가, 지나간 신문철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어제는 누워서 19금 범죄 스릴러를 여섯 시간 동안 보았다. 그제는 퇴근하고 몹시 피곤했다. 어제 아침 왜 피곤했는지 정리를 했는데도, 계속 피곤하기만 했다. 피곤한 나는 살인과 혐오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 제목을 검색한다. 만화 전질을 자꾸 검색한다. 사고 싶은 만화 전질은 5만 원이 넘는다. 가격은 욕구를 잠재우지 못한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든다. 만화를 꽂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만큼의 책을 버려야 한다. 어떤 책을 버릴까 생각한다. 또 그러다 정신이 든다. 사놓고 읽지 않는 책의 제목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토요일도 하루 종일 드라마나 봐야겠다고 혼자 결심을 한다. 책도 필요 없고, 청소는 안 하면 되고, 글쓰기도 패스하겠다고. 여섯 시간 동안 일곱 개의 시즌을 다 보고 나서, 드라마를 검색하는 데 좀처럼 당기지 않는다. 용량 초과인가, 어마 무시한 판타지 대하드라마나 다시 볼까 하다가 잠이 든다.
어른이 된 나의 작은 책방은 이렇다. 책으로 가득 찬 집과 책의 방을 꿈꾸던 아이가 작가나 뭐 그런 창의적인 유명인으로 성공했다면 완결성 있는 스토리가 되었을 텐데, 아이는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삶의 양식? 책과 이야기가 양식이라고 하니 웃음이 나온다. 불량식품과 중독성으로 가득 찬 먹을거리도 양식이 될 수 있을까?
성공이나 양식이나 상관없지 않은가. 성공이니 양식이니 그런 단어에 염증을 느낀 지 오래되었으면서, 솔직해지자. 아직도 남아있긴 한가보다. 조금 더 괜찮은, 조금 더 근사한, 조금 더 세상이 알아주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욕망이.
다시 현실 인식. 지금으로 충분하다. 충분하지 않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다. 책과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책과 이야기가 그냥 스트레스와 힘듦과 실망과 갑갑함과 무기력을 비켜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바닥에 웅크리고 앉거나 책장에 기대 선 불편한 자세로 책을 읽노라면, 먼지가 코로 들어오고 눈이 따가웠지만 내 정신은 딴 세계를 헤매고 있었지. 환상이 실제보다 더 진실해 보이는 왕국에서 떠돌던 나는 사실이 공상보다 흥미를 끄는 나라를 향해 닻을 올렸을 때에야, 비로소 불편한 자세와 답답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어. - <같은 책>
스무 살과 쉰 살 사이, 어제와 오늘 사이. 애로물과 낡은 잡지를 뒤적이던, 꼼짝하지 않고 스릴러 드라마를 시청하는, 읽지 않을 책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나와 작은 책 방의 아이는 다르지 않다. 아이는 그저 다른 세계로 가고 싶었다. 먼지와 불편한 자세마저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환상과 공상의 세계였다.
역시 그때 <보리와 임금님>을 꺼내길 잘했다. 우리에게는 다른 세상이 필요하니까,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르기만 하면 된다. 운이 좋아서, 그 다른 세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발견이 빛난다면 더 좋을 수도.
50년 동안이나 빗자루를 들고 쓸어 대던 일곱 하녀도 내 마음속에서 그 먼지를 몰아낼 수는 없었어. 사라진 신전과 꽃과 임금님들, 곱슬머리 숙녀들, 시인의 한숨, 소년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담겨 있는 나의 먼지를. 그 소중한 이들은 어느 작은 책방에서 굴뚝청소부처럼 먼지를 뒤집어쓸 수도 있겠지만, 운 좋게도 잠시나마 빛을 보게 될 날이 있을 거야. - <같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