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된다는 일

자기 책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이야기

by 열무샘

아이들을 작가로 만들겠다고 5월부터 낑낑대고 있다. 정말 낑낑이다. 아이들의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는 일부터 낑낑이 었고, 온갖 시중을 다 들어줘야 하는 걷고 낑낑이 었고, 요즘은 과연 시간에 맞추어 아이들의 작업을 끝내게 할 수 있을까가 낑낑이고, 편집 이후에는 이 광대한 작업을 편집자가 수행할 수 있을까가 예상되는 낑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아!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문에 항상 투덜거리면서 피곤을 호소한다. 그러니 모든 것은 자업자득) 아이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 아이들의 작품을 보는 일은 재미있다. 아이들의 작품 장르는 다양(일률적인 게 편하다는 것을 이번에 또 경험. 다양한 아이들에게 다양한 접근을! 은 교사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그 자체다. 형식으로 보면 글책, 만화책, 그림책. 장르로 보면 지식 정보물에서 모험담(다 나열 못하겠다)까지. 신기하게도 이 15개의 다양한 작품에서 주인공은 작가를 닮았거나 작가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누구는 노골적으로 내가 주인공이고, 누구는 은근히 주인공이고, 누구는 현재의 나를, 누구는 이렇게 되고 싶은 나를 그리고 있다. 정작 아이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작품 속의 그 주인공이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을. 그걸 보는 게 또 재미있다. 아이들의 심리를 파악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절대 절대 아니 다를 강조하고 싶다. 그냥 재미있다. 자신을 너무 노골적으로 사랑하는 아이가 부럽고, 우주에서 보물을 캐내는 상상으로 기뻐하는 아이를 보는 게 흐뭇하다. 나는 어땠을까?

소싯적에, 하하하. 어차피 고백하는 김에 다 고백하자면. 재작년까지 동화를 끄적끄적 썼다. 잘할 줄 알았다. 될 줄 알았다. 상상력도 중간 이상, 아이들을 많이 만나는 편이니까, 뭔가 하면 후딱 해치우는 능력 아닌 능력도 있겠다, 문장이야 다 쓰고 나서 고치면 되고. 이런 편한 생각으로 동화를 썼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괜찮은 습작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왜 내 동화는 더 이상 안 되는 걸까? 동화를 같이 배웠던 동기들의 말에 따르면, 내가 갈등을 싫어하고 머리만 쓰는 사람이라 그렇다고 하던데 그걸까? 한 동안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답도 몇 가지 얻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이게 문제였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아이들한테 고마워할 수밖에 없다.


내 동화 속에서 나를 닮은 사람은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아이들이 아니라 언제나 교사 혹은 어른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놀라워하는 교사, 아이들과 놀고 있는 교사, 아이에게 쿨하게 말하는 엄마, 극성맞은 마녀였다. 하지만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동화 속의 주인공은 아이였고, 그 주인공은 내가 아닌 내가 평소에 만났던 아이 중 하나였거나 둘셋의 혼합물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라는 사람은 내가 만나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기에는 아이를 알지 못했다. 관찰은 하되 공감은 서투르고, 소통은 하되 감정이입은 불가능 한 어른이니 그럴 수밖에. 심지어 나는 ‘어른은 어른, 아이는 아이, 너는 나, 나는 나’를 강조하는 편이니... 주인공은 생생하지 못하고, 옆의 어른은 생생한 어딘가 엉성한 동화를 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또 부럽다. 아이들은 작품의 완성도, 문장, 앞 뒤 맥락 상관없이 그냥 맘대로 쓴다. 오직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앞으로 쭉쭉 나간다. 나도 아이들처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다 포기한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요즘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중요한 주제가 ‘너를 둘러싼 주위를 봐라’다. 마냥 즐거운 게 다가 아니잖아, 사람의 성장 과정이라는 게 있는데 너희는 이제 주위를 둘러봐야 해, 선을 지켜 등등. 잔소리를 하다가도 아이들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난감할 때가 있다. 내 안의 욕구 때문이다. 맘대로 하고 싶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나 역시 마음대로 하는 편으로 보이겠지만, 마음대로 마음대로는 어떤 한계가 없다. 아침에는 늦잠이 자고 싶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고, 위장 걱정을 하지 않으면서 과식을 하고 싶다. 타인에게는 말하기 싫은 마음대로도 엄청 많다. 나도 그런데 너희는 오죽하겠니 하는 공감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나 나나 마음대로 살 수 없다. 그러다가는 내가 괴롭거나 내 옆의 누군가가 괴로울 테니까.


아이들이 자신의 책, 자신의 이야기 안에서 무한 질주할 수 있는 것 또한 자신의 작품을 읽어 줄 독자를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욕심을 내고 독자를 의식하는 아이는 또 다르다. 완성도를 생각하느라 중간에 작품을 포기하고, 괴로움을 호소하고, 작업 속도도 더디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책을 만들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세상 어는 것도 나 혼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다시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이 부럽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약 내가 주인공인 동화를 쓴다면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힘들다. 과거의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탐색할 정도로 과거가 지금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 현재의 나를 닮은 아이? 말도 안 된다. 나는 너무 어른이다. 그럼 어른이 주인공인 동화? 어쩌지. 아이들은 어른에게 관심이 없다. 어떤 아이도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동화 쓰기는 포기하고, 동화를 쓰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교사로 계속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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