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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Aug 18. 2021

12편  강하고 지혜로웠던 '새애기'

모두의 엄마 - 최선의 삶을 살았던

    

째리가 떠나고 난 후 완연한 봄이 되었어. 난 세종시에 두 번째 TNR을 신청했어. 째리가 그렇게 떠난 게 아무래도 발정의 문제였던 것 같아서 수컷들을 못 떠나게 하려면 수술을 시켜야 된다고 생각했거든. 나중에 중성화 수술을 했던 짹만이, 번개투가 떠나고 나서야 결국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말이야.


이번에는 둘째 번개투, 셋째 번번이, 짹짹이 이렇게 세 마리 수컷들만 병원에 갔다왔어.  새애기와 둘째 딸 잭투는 이미 임신을 한 상태여서 빠졌지. 새애기의 짝은  애꾸눈 짹이 죽었으니 누구인지 뻔했어. 어쩌면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점령군 번개인지도 모르겠어. 주인공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거잖아! 번개는 불사조이고 언제나 어디서나 나타나니까 말이야.

   

짹투는 가끔 오던 새까만 길냥이랑 정분이 난 것 같았어. TNR과정은 여전히 잔인하고 아이들에게 너무 큰 시련이라 마음이 안 좋았어. 번개투는 포획들 철창에서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발톱이 다 빠졌더라고.  

    

새애기는 아깽이들을 길 건너 폐가방앗간이 아니라 우리 집 마당에서 키웠어. 세 마리였어. 늘 두 마리씩만 남았었는데. “이번에는 더 잘했어 새애기!”라고 칭찬해 주었어. 새애기가 아깽이들을 숨기고 키우는 곳은 창고 바닥에 깔려있는 파렛트 사이였어. 파란색 방수포가 위에 덮어져 있었는데, 낡아서 터진 좁은 구멍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키웠어. 그 좁은 곳에 어떻게 들어가서 젖을 먹이는지 모르겠지만 길 건너 지저분한 폐가방앗간보다는 훨씬 나았지. 새애기는 닭가슴살 국물을 특히 좋아했는데 출산 후 몸조리하라고 자주 끓여 주었어.


이번에 육아도우미는 번번이가 당첨이 되었어. 암컷인 짹투가 임신 중이라 써먹을 수 없으니 번번이를 뽑았나봐. 중성화수술을 마친 번번이는 새애기옆에서 아깽이들을 챙겨주었어.


첫째 딸 짹꼬리는 페가에서 이사올 때 따라오지 않고 거기서 살았어. 번번이 짹잭이까지 키워주었으니 할 일을 다한걸까? 은퇴한 후 조용히 혼자만의 은둔의 생활을 시작했어. 다른 고양이랑 놀지도 않고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었어. 밥 먹을 때만 건너왔고 늙어가는 게 완연했어. 길고양이들의 1년은 우리의 30년은 되는 것 같아. 사라진 짹만이처럼 가끔씩 왔었는데 점차 색깔도 바래고 기운도 없어 보였어. 그래도 밥 먹으러 오는 게 어디야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오지 않았어. 그러면 그냥 그게 끝 인거야. 이제 난 그걸 알아.   

색이 바랜 짹꼬리

  

새애기가 자동차 사고를 당한 건 한 낮이었어. 길 한복판에 번번이가 앉아 있고 그 옆에 뭔가 갈색뭉치가 보여서 쫓아갔는데 새애기였어. 이미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어. 혹시 다른 차가 와서 2차 참상이 날까봐 서둘러 거뒀어. 그제야 번번이도 쫓아오더라구. 죽은 어미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망연히 앉아 있던 번번이 모습이  안스러웠어. 새애기는  애꾸눈 짹 옆에 묻어주었어.   

엄마 새애기와 셋째 번번이

 

우리 마당의 모든 고양이들의 어머니. 새애기는 그렇게 떠났어. 내가 그 조그만 갈색 고양이를 짹 옆에서 처음 발견한 그날부터 새애기는 계속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반복했어. 2번의 봄이 오는 동안 네 번의 출산으로 9마리 고양이들을 키워냈어, 마지막으로 태어난 세 마리의 아깽이들이 이제 막 젖을 떼고 사료를 먹기 시작한 후였어. 게다가 폐가방앗간이 아니라 우리집 마당에서 자라고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보잘 것 없는 길 고양이 한 마리의 아깽이들에게도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주는 것이 하늘의 뜻일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새애기는 이번 아기들은 끝까지 키우지 못할 걸 알았던걸까! 그건 아마도  새애기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갈 때  뒤돌아보지 않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도록 해주었을 거야. 자연의 세계에서 야생동물에게 주어진 사명은 자손을 낳고 번창 하게 하는 것 이상이 있을까!   


새애기는 주어진 임무를 다했어. 최선을 다해서. 나는 새애기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어.‘이제는 편히 쉬렴!’ ‘짹을 만나면 너희들도 좀 놀아. 자신을 지키고 새끼들을 낳고 키우고 여기는 늘 전쟁통이였잖아!. 무지개다리 그 너머에선 아무런 위협도 과업도 없이 그냥 뒹굴고 놀으렴.' 뜨거운 눈물이 불쌍한 새애기의 작은  흙 무더기 위로 하염없이 쏟아졌어.

새애기가 애꾸눈 짹을 처음 만나서 놀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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