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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Jul 14. 2021

11편 째리, 어디 가니?

모험의 길을 떠난 청년 째리

          

새애기가 번번이, 짹짹이를 데리고 폐가 방앗간에서 길을 건너 우리집 마당에 정착한 후 째리는 새애기의 표적이 되었어. 우리집 마당에 살고 있는 아깽이들중에 새애기 피붙이가 아닌 길냥이는 째리뿐이 없었거든. 무엇보다 새로 난 아기들 번번이 짹짹이에게 위협이 될까 봐 그리도 으르렁 거리는 것 같았어. 엄마가 자기 새끼들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게 무엇이 있겠어. 본능과 모성이 극대화된 야생의 첫번째 불문율이겠지.   

 

애꾸눈 짹이 교통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너 간 후 째리에게 유일한 친구는 짹의 첫째 아들 짹만이였어. 둘이는 늘 같이 있었어. 간혹 새애기가 째리를 쫓아내서 뒷산에 올라가 빈둥거릴 때도 짹만이가 부리나케 쫓아와서 같이 있어 주었어. 짹만이는 나무를 특히 잘 탔는데 짹만이가 올라간 나무 아래에서 째리가 기다려 주기도 했어. 서로 기다려주는 수고스러움 정도는 친구라면 기꺼이 해주는 양해를 구할 것도 없는 특권이겠지. 같이 뱀이나 쥐를 잡고 놀기도 하고 잠을 잘 때에도 뒤엉켜 한 몸처럼 지냈어.


인물은 짹만이가 훨씬 멋졌지. 짹만이는 짹을 닮아서 댄디한 귀공자 타입이었으면 째리는 첫인상은 쌀쌀해 보여도 촌스러우면서 다정한 츤데레 매력이 넘쳤지.     

째리와 짹만이의 즐거운 놀이시간



여기서 잠깐 새애기의 둘째들 짹투와 번개투 근황도 들려줄게.

짹투는 첫째 짹만이에게 꽂혀있었어. 아무래도 암컷이어서 그랬는지 지 눈에도 짹만이 오빠가 멋져 보였겠지. 짹투는 슬쩍슬쩍 짹만이 오빠에게 다가갔었는데 짹만이는 째리랑 노는 것 외에는 관심도 없었지. 짹만이는 이미 중성화 수술을 한 만년 초딩이었거든.  세상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생겨나는 거야. 둘이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는것. 거기에는 항상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 우리는 이쪽에 있는  나를 외면하는 저 쪽 너를 도대체 이해 할 수가 없어. 내맘 같지 않은 너. 그건  내안에  내맘  한가득이라 실제의 너는 없는거라 그래. 잘 따져보라고. 누가 짹투에게 너의 오빠 짹만이는 너를 받아들 일 수 없는 몸이라서 그러는 거다.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뭐 이런 얘기를 해 줄수는 없는거잖아!

  

반면에 번개투는 수컷이었는데 세상 먹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어. 어차피 새애기 엄마는 이제 돌봐주지 않았고 째리와 짹만이 형아는 지네들끼리만 놀았고 동기인 짹투는 짹만이만 쫓아다녔으니까 그래서 심심할때마다 먹었어. 바뻐야 살도 안 찌지. 먹는 시간도 없게 바빠봐! 다이어트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 나중에는 정말 돼지 한 마리가 되었어. 이 모든 고양이들 중에 가장 몸집이 커졌으니까.  하지만 그 속은 아직도 마냥 얘기였지.

   

일견 평화롭게만 보였던 이 아이들의 세상은 번개에 의해 파괴되곤 했어. 기억하지? 짹의 일생일대의 강적 번개

짹이 죽고 난 후 마당 냥이들의 세계는 번개가 접수했어. 애꾸눈 짹이 없으니까 이제는 매일 매일 왔어. 어슬렁 어슬렁 느릿 느릿 거리며 한껏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이 없을때 사료를 싹쓸이했지. 점령군 번개는 째리를 다음 타깃으로 삼았어. 새벽녘에 고양이들 싸움 소리가 크게 난 후에 아침에 나와 보면 째리의 털이 한 움큼씩 빠져있었어, 한 번은 째리의 몸통에 원형탈모증처럼 동그랗게 맨 살이 드러나 있는 적도 있었어. 다행히 째리는 맞서지 않고 도망을 가니까 그나마 많이 다치지 않았지만 번개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늘 위협이 되었지.      


그런 것들이 다 이유가 되었던 것 같아. 신년 초에 여행을 갔다 온 후에 째리가 보이질 않았어. CCTV를 돌려보니까 1월 3일 아침에 우리 집 아래쪽 논두렁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듯 어깨를 으쓱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내려가는 째리 모습이 마지막이었어.      


발정 때가 되면 만만한 수컷 친구 짹만이를 데리고 연습은 많이 해봤지만 실속은 없었고  암컷 짹투는 아직 아기이고 새애기는 쥐 잡듯 자기를 싫어했고, 무서운 번개는 수시로 공격을 해오고, 사나이 인생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싶었던 것 같아. 그래 떠나자.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찾아. 세상은 넓고 암고양이는 많다! 쯤 되지 않았을까? 장성한 수컷들은 길을 떠난다고 하더니 바로 째리가 그랬어. 우리 집 마당을 나서면 어디에 가서 푹신한 잠자리와 맛난 사료와 간간이 나오는 참치 연어캔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 텐데도, 친구 짹만이도 버리고 무엇이 그리 중해서 그렇게 가버렸을까?


처음에는 마실 나갔다가 돌아올 줄 알았어. 짹과 째리만이 내 만질 수 있도록 나를 허락해준 넉살좋은 녀석들이었는데 이제는 아무 고양이도 손에 잡히지 않았어. 먼저 와 착 감기던 째리 생각에 견딜수가 없었어. 식구들이 수색대를 조직해서 온 동네를 뒤져보기로 했어. 뒷동네, 아랫동네까지 샅샅이 다녔지. 웬 길냥이들이 그리 많은지. 하지만  우리 째리는 아니었어. 그런데 누구를 발견했는지 알아? 윗동네 어느 집 농기구를 잔뜩 쌓아놓은 창고옆 계단참에 점령군 번개가 낮잠을 자고 있었어. 기가막혀서! 그러고 있으니 온순한 마당냥이처럼 보이더라구. ' 저 놈이 지 본색을 숨기고 이 집에선 귀여운 마당냥이 노릇을 하고 있었구나!' 주인을 찾아서 얘기를 해 줄 수도 없고. 다른 곳 다른 장면에서 만난 번개는 도망도 안가고 세상 천진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유있게 나를 응시했어. 입을 딱 벌리고 기가막혀 하고 있는 나를 말야.

위부터 째리. 짹만이. 번개투


짹투와 번개투

'째리는 워낙 붙임성이 좋으니까 암컷이 있는 어느 집이건 들어앉아 귀염받고 잘 살꺼야' 라는 생각이 위로가 되었어.


짹만이는 째리가 떠난 후에는 어느 고양이하고도 교류가 없었어. 나무를 타거나 빈둥거리며 몸을 뒤집고 놀거나 하던 어떤 유희도 다 거부한듯 심심하게 늙어갔어. 이젠 우리집에 살지도 않았어. 이삼일에 한번씩 밥을 먹으러 왔는데 아무리 살갑게 대해도 표정 없는 얼굴로 들릴 듯 말 듯 한 야옹소리를 내는 게 친근감의 표시였어. “만아, 가서 째리 좀 찾아와!” “너는 절대로 없어지면 안된다!”하면서 다짐을 받고 싶었는데, 오래 머물지도 않았고 밥만 먹고는 다른 고양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금방 사라지곤 했어. 엷어지는 인연의 끈을 한사코 붙잡으려고 나는 짹만이가 올 때 마다 호들갑을 떨어대며 산해진미 캔을 따고 후하게 대했지만 가끔,, 드문드문,, 한동안.. 있다가 가곤 했는데  어느 날  잠깐 있다가 가버리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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