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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라라쏭짱 Dec 03. 2019

10편 짹은 없지만

고양이들은 살아간다. 태어났으므로

      짹이 불의의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고 난 후 남은 아이들이 더욱 소중해졌어. 짹의 첫 번째 아이들 짹만이와 짹꼬리, 두 번째 아이들 짹투와 번개투, 폐가 방앗간에선 새애기가 새끼들을 낳아서 젖을 먹이고 있었어. 짹이 남겨놓고 간 마지막 아이들이였지. 그리고 근본을 알 수 없지만 우리 집 대장이 된 째리까지

첫 번째 아이들 중 암컷인 짹꼬리는 새애기와 함께 여전히 육아에 매진했어. 짹투와 번개투를 키워냈고 이제는 폐가에 머물면서 동생들 3마리를 돌보고 있었어. 짹만이는 페인트(울면서 다니던 옆동네 순둥이 수컷)가 사라지고 난 후 째리와 베프가 되었어. 그리고 짹투와 번개투는 새애기가 새로운 임신과 출산으로 떼어놨지만 자기네 둘이 잘 놀았어.

     짹의 사고가 11월이라서 바로 겨울이 왔어. 폐가 방앗간에서 머물고 있는 새애기, 짹꼬리, 아깽이들이 어찌 지낼까 영 걱정이 되더라고. 짹이 폐가 방앗간이랑 우리집을 건너다니다가 차 사고가 났기 때문에 짹꼬리, 새애기랑 아기들도 어찌 될까봐 겁이 났어. 마음 같아서는 구름다리라도 설치하고 싶었어. 왜  ‘동물들이 다니고 있어요’라고 도로 위로 나무 싶어놓은 에코브릿지를 만들어 놓잖아. 고양이가 다닌다고 그런 걸 해 달라고 하면 시청에서 미쳤다고 하겠지. 땅 밑으로 굴을 파 줄 수도 없고, 못 건너 다니게 해야 하는데 일단 가봐야겠다 싶었어.

길고양이 겨울집(안에 스티로폼 박스가 들어가 있는)을 가지고 폐가 방앗간에 들어갔어.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있어서 앞은 보였는데 여러 가지 들은 이야기(귀신 운운하는)도 있고 해서 무서웠어. 하지만 짹을 생각하면서 이까짓 껏 쯤이야 하고 용기를 냈어. 폐가 방앗간은 처음에 이사왔을 때 무서움 극복 차원에서 가본 적은 있었어. 하지만 겨우 앞 마당에 들어가 보고는 어디서 부스럭 소리가 나 길래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쳐 왔었지. 3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은 살림집으로 썼던 공간이고, 두 번째는 방앗간으로 쓰였던 곳 같고 마지막 채는 집 뒤쪽으로 있는데 거기는 못 들어가. 이미 지붕이며 벽이며 다 떨어져 나가 얽히고 설켜 있는데 잘 못 디뎠다가는 푹 빠지기 십상이지. 입구를 찾기도 힘들 정도니까.

길 건너 폐가 방앗간

     두 번째 방앗간 쪽으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안쪽 공간은 넓었어. 지붕은 다 허물어져서 해가 들고 있었는데 그러면 비를 피하기도 마땅치 않다는 얘기지. 들어가자마자 새애기가 있었어. 아깽이들은 우당탕 콩탕하며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고. 짹꼬리도 멀찍이 서서 경계를 하고 있었어. 새애기는 연신 하악질을 하며 노려보았지. “해치려 온 게 아니야!  너희들 추울까봐 겨울집 넣어주러 왔어. 이제 눈이 많이 올 거야. 바람도 쌩쌩 불고. 길 건너다니는 건 너무 위험해. 밥을 주러 올 테니까  아깽이들 다 클 때까지 여기 있어라.” 길고양이 겨울집을 안쪽에 놓아주고 안에 담요도 깔아주고 사료도 넉넉히 넣어주었어.

다음부터 그 무섭다는 폐가 방앗간에 매일 갔어. 여전히 새애기는 경계하고 아깽이들은 도망갔고 짹꼬리는 멀찍이 있었지만 사료와 물을 주고 왔어. 긴 겨울 무사히 나길 바라면서.

폐가 방앗간에 갖다놓은 길 고양이집


우리 집에 있는 아이들은 바람불어도 괜찮아요!♪ 쌩쌩 불어도 괜찮아요♬였어. (노래 불러주고 싶다~) 마당에는 식구들이 여름 내 고기 구워먹고 놀던 천막이 있었거든. 사방 다 가려져 있어서 바람도 눈도 막아주었지. 여기저기 길고양이 겨울집을 설치해주었는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집은 1미터짜리 큰 박스로 만들어준 ‘대저택’이었어. 뽕뽕이 비닐로 여러겹 싸고 안에 오리털 파카 안 입는 것 몇 벌을 넣어서 푹신하게 만들어주었어. 그 박스는 납작한 모양이라 옆으로는 넓어도 위로는 낮아서 더 아늑했던 것 같아. 아침에 밥주러 천막에 들어가 보면 거기서 째리, 짹만이, 짹투, 번개투가 기지개를 켜며 기어 나왔어. “서로 서로 사이좋게 무럭무럭 자라라.” 그랬는데 어느 추운 날.

세상에 대저택에서 새애기가 새끼들을 품고 자고 있는거야. 폐가 방앗간을 떠나 이사를 온거지. 졸지에 쫓겨난 나머지 아이들은 천막 여기저기에 흩어져 자고 있더라고. “무사히 건너왔구나! 잘했어. 여기가 진짜 너희들의 집이야.” 그렇게 짹이 떠난 뒷자리는 허전했지만  새로운 생명과 희망으로 그 해 겨울을 따뜻하게 넘기고 있었어.

천막안에 있던 박스집 (제일 큰 박스가 '대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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