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을 하는가' 사이에서

by JESSIE HEO

우리가 영어를 배우며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내가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한다”는 문장일 것이다.

나에게 이 둘은 영어라는 언어가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과 같다.

Be 동사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의 상태를 규정한다면, Do 동사는 '나는 무엇을 하는가‘ 라는 행위의 책임을 묻는다.


Be 동사: 고정된 상태의 안전지대


처음 혼자 여행을 시작했을 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I am a student"라는 문장 안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이 문장은 내가 누구인지를 명료하게 규정해주었다. 한국에서 나를 따라다니던 모호한 정체성들,

예를 들어 '아직 뭘 하는지 모르는 사람', '진로를 고민 중인 사람' 이 영어로는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Be 동사는 영어 문장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동사다.


I am a teacher. (정체성)
I am happy. (상태)

Be 동사가 만들어내는 문장의 세계는 안정적이고 고정적이다. Be 동사의 문장은 그 상태가 '지금 그러하다' 는 확정적인 선언을 제공한다.


나는 이 Be 동사의 세계를 가르칠 때마다 '안전지대' 라고 설명한다. 당신의 정체성(I am a teacher)은 문장 내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일시적인 상태 (I am happy) 역시 명확하게 규정된다. 특히 한국어처럼 모호함에 익숙했던 나에게, Be 동사의 '명료한 규정' 은 논리적 사고의 틀을 제공해 주는 듯했다.

하지만 가끔, 너무 오래 그 안전지대에 머물렀던 날들이 있었다.


"I am tired", "I am confused", "I am overwhelmed" 이런 문장들 속에서 나는 그저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 상태가 곧 나인 것처럼 살았다. Be 동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깔끔하고 흔들림 없는 답을 요구하지만, 때로는 그 답이 나를 가두는 틀이 되기도 했다.


Do 동사: 행위와 책임의 역동성

반면, Do 동사는 Be 동사가 규정하는 정적인 상태를 벗어나,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촉발한다. Do 동사는 행위의 '발생 여부'를 묻고 규정하는 기능을 한다.


Do you teach English? (행위의 발생 여부)
I don't teach math. (행위의 부재 선언)


Do 동사가 지배하는 세계는 역동적이며, 행위자로서의 책임을 요구한다. '선생님이다'(I am a teacher)는 상태일 뿐이지만, '영어를 가르친다'(I teach English)는 선택과 노력의 결과인 행위다.

이 일을 시작하며 영어를 왜 아직도 공부하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런 식으로 대신 하곤 한다.


"Because you do things with it. You solve problems, you connect with people, you make choices."

영어를 통해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과 연결되고, 더 나은 선택을 내리기 위해 나는 여전히 영어를 공부한다.


Do 동사는 '나는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촉진하며, 이는 곧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한다. 강사로서 나는 학생들이 Do 동사를 사용할 때 '행위의 주체로서 세상에 참여하고 있다' 는 점을 깨닫기를 바란다. Do는 단순한 문법 규칙이 아니라, 영어라는 언어가 화자에게 세상에 대한 행동적 책임을 부여하는 강력한 장치다.


상태와 행위의 충돌


나의 이중 언어 경험은 'Be'와 'Do'의 충돌이기도 했다. 한국어의 나는 정서와 정체성을 주로 'Be' 동사의 영역(I am complicated, I am emotional)에 가두려 한다. "나는 원래 이래"라며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영어의 나는 'Do' 동사의 세계(I do the work, I solve the problem)에서 끊임없이 행위와 해결책을 찾도록 요구받는다.

이 차이를 극명하게 느낀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논문 마감을 앞두고 한계에 부딪힌 나는 지도교수님 앞에서 영어로 하소연하곤 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토로하면, 교수님은 늘 이렇게 물으셨다.


"What do you do about it?" (그래서 넌 뭘 할건데?)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힘든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즉각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답해야 했다. 'Do' 동사는 나에게 도망칠 곳을 주지 않았다.


어떤 날은 그냥 "I am tired"라고 말하며 무력한 상태에 머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영어는 집요하게 묻는다.

"그 상태를 바꾸기 위해 넌 무엇을 할 거니?" 그러면 나는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휴식을 취하든, 치를 마시든, 산책을 나가든.

영어는 나에게 '피해자'로 남을 권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언제나 삶의 주도권을 쥔 '행위자'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결국 나에게 영어 학습이란 정적인 존재 상태(Be)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에 참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역동적인 행위(Do)로 나아가는 훈련 과정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를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두 질문 사이에서


요즘 나는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Be'와 'Do'는 영어 문장의 가장 기초적인 문법일 뿐이지만, 사실 이 두 동사는 '정체성과 행동'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양극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Be' 동사는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확인하며 존재의 뿌리를 내리게 한다. 하지만 'Do' 동사는 우리를 그 안전지대 밖으로 밀어낸다. 세상 속으로 나아가 무언가를 시도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Who are you?)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하나요? (What do you do?)"


우리는 이 두 질문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조금씩 성장한다. 'Be'와 'Do'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며 더 풍부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때로는 존재의 상태에 머물며 내면을 성찰하고, 때로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세상과 부딪히며 외연을 확장한다.

어쩌면 가장 성숙한 삶이란 이 두 동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삶일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I am)"와 "내가 무엇을 하는지(I do)"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서로를 온전하게 완성해 주는 삶.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나, 매일 문장을 짓듯 그 균형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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