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내가 마침표를 찍고 싶다고 해서 찍어지지 않는 시제가 있다. 나에게는 코로나가 시작되자마자 교육청의 영업 금지 처분과 함께 시작된 2년의 시간이 그랬다. 수천 번 '완료' 버튼을 누르고 싶었으나, 끝내 '진행'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포기가 제일 쉬웠던 내가 10년 넘게 두 언어 사이에서 버틴 건 의지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밑바닥에서 멈추면 그것은 '완료'가 아니라 '중단'이라는 시제의 무서움을 가르쳐준 사람 덕분이었다.
본래 내 꿈은 처음부터 번역가였다. 영어와 한국어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오염되지 않은 100%의 진실을 옮기는 일에 매료됐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번역의 세계는 고독했고, 완벽한 치환이 불가능하다는 괴리는 나를 갉아먹었다. 박제된 문장들 사이에서 숨이 막힐 때쯤, 나는 밖으로 나갔다. 80%만 전달되더라도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며 살아있는 언어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강사의 일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나만의 작은 학원을 열기로 했다.
개업 떡을 돌리려던 당일, 거짓말처럼 영업 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내가 꿈꿨던 '강사'라는 이름은 시작도 하기 전에 완료(p.p)될 위기에 처했다.
학원 문은 닫혔지만, 나를 믿고 따라온 선생님들의 삶까지 닫게 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현재완료진행'은 기괴한 형태로 이어졌다. 낮에는 출강을 나갔고, 저녁에는 번역을 했으며, 새벽에는 녹즙 가방을 메고 골목을 누볐다. 나의 2년은 '영어 강사'가 아니라 '녹즙 배달원'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번 돈은 선생님들의 월급이 되었고 내 월급은 2년 내내 0원이었으며, 통장은 바닥을 보였다. 책장 사이를 유영하던 관념적인 언어들 대신,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병의 감각과 발걸음의 무게가 내 시간을 채웠다. 현재완료진행(have been -ing)은 문법책에서는 '동작의 계속'을 뜻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포기하지 못해 이어가는 관성'에 가까웠다. 너무 힘들어 이제는 정말 마침표를 찍고 싶었을 때, 곁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그만두더라도 한 번은 빛을 보고 그만두자. 밑바닥에서 끝내면 그건 미련밖에 안 남는 '중단'이잖아."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현재완료진행의 궤도로 돌려세웠다. 밑바닥에서 멈추면 내 10년의 세월은 그저 '실패'라는 이름의 현재완료로 남겠지만, 조금 더 밀고 나간다면 그것은 '성취'라는 이름의 완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남은 돈을 모두 끌어모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지금의 '원더스피크'다.
이제 내 새벽은 다시 고요해졌고, 더는 그 시절의 치열했던 가방을 메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만나는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은 여전히 현재완료진행형(have been -ing)이다. 10년 전, 완벽한 번역을 꿈꾸던 결벽증적인 번역가는 이제 없다. 대신 조금은 서툴고 오염될지언정, 사람들과 섞여 끊임없이 흐르는 언어의 생명력을 믿는 내가 있을 뿐이다.
인생의 시제는 냉정하다. 내가 멈추면 과거가 되고, 계속하면 진행이 된다. 포기하고 싶었던 수많은 새벽을 지나온 덕분에, 나는 오늘 비로소 내가 원했던 문장을 자신 있게 완성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