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st'라는 순위표를 떼어내고 얻은 것들

by JESSIE HEO

영어 문법에서 최상급을 만드는 규칙은 단호하다. 단어 뒤에 ‘-est’를 붙이거나 앞에 ‘most’를 더하는 것.

그리고 그 앞에는 반드시 정관사 ‘The’를 붙여 이것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선언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 ‘The’가 붙은 사람이 되라고 종용한다. 가장 뛰어난(The best), 가장 유명한(The most famous) 존재가 되어야만 가치가 증명된다는 듯이 말이다.


벽에 붙은 숫자, 차가운 최상급


대형 학원에서 일을 할 때, 강사실 한쪽 벽에는 늘 커다란 도표가 붙어 있었다. 수강생 수, 재등록률. 소수점 단위까지 정교하게 계산된 그 숫자들은 동료 강사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개되었다. 그곳에서 강사의 가치는 오직 숫자의 크기로만 결정되었다. 가장 높은 곳(The highest)에 이름을 올린 이는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서열 아래로 밀려났다. 문법적으로 최상급 앞의 ‘The’는 유일함을 뜻하지만, 그 벽 위에서의 ‘The’는 지독한 선 긋기였다. 동료는 함께 걷는 파트너가 아니라 내가 딛고 올라가야 할 ‘비교급의 대상일 뿐이었고, 숫자가 나를 증명해 주지 못하는 날이면 나는 금세 쓸모없는 문장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est’를 떼어내고 발견한 고유함


홀로서기를 하여 ‘원더스피크’를 운영하는 지금, 나는 그 벽 위에 붙어있던 숫자들의 최상급 놀이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내가 시험 영어를 가르치던 안락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영어회화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험 영어는 단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지만, 회화는 수만 개의 ‘원급'이 존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문법에서 원급은 비교 대상이 없는, 형용사 본연의 모습을 뜻한다. ‘Kind’는 그 자체로 친절한 것이지, 누구보다 더 친절해야 할 의무가 없다. 나는 이제 학생들에게 ‘가장 점수를 잘 올리는 강사’로 기억되기보다, 영어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주는 ‘가장 나다운(The most like me)’ 파트너가 되기를 선택했다. 서로를 이기기 위해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만큼 혹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만큼의 진심을 담아 가장 나다운 나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말이다.



더 높은 곳보다는 더 멀리


이 깨달음은 ‘원더스피크’를 운영하는 나의 태도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제 혼자서 빛나는 ‘가장 좋은 강사’가 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가장 좋은 팀’이 되기를 꿈꾼다. 최상급의 강사가 되는 길은 외롭고 위태로운 꼭대기를 향하지만, 최고의 팀이 되는 길은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며 더 멀리 나아가는 여정임을 알기 때문이다. 인생은 단 한 명만 올라갈 수 있는 좁은 꼭대기를 향한 ‘최상급’의 질주가 아니다. 나는 이제 ‘더 높은 곳'에 매몰되어 숨 가쁘게 위만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더 멀리' 나아가는 법을 고민한다.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옆 사람을 밀쳐내는 최상급의 경쟁보다,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함께 걷는 동등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들은 숫자로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들이다. 문법책은 여전히 가장 높은 곳에 ‘The’를 붙이라고 가르치지만, 나는 내 삶의 문장에서 무거운 ‘-est’를 지워나간다. 비교의 늪에서 걸어 나와 나의 원형을 회복하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가 아닌 ‘나답게’ 우리와 함께 멀리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영어를 가르치며 배운 가장 단단한 문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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