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문장 앞에는 누가 서 있나요?

by JESSIE HEO

한국어는 주어를 생략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언어다. 아니, 오히려 주어를 꼬박꼬박 챙겨 말하는 것이 때로는 유별나거나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혼자 사는 집도 "우리 집"이라 부르고, 나만의 어머니도 "우리 엄마"라고 부른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나'라는 개인은 언제나 '우리'라는 거대한 울타리 속에 녹아들어 있을 때 비로소 안도감을 느낀다.


기분이 어때요?

처음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지점이 있다. 문장의 시작을 "I(나)"로 여는 것이다. 그들은 "기분이 어때요?"라는 질문에 "그냥 그래요" 혹은 "좋아요" 라며 에둘러 말한다.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I feel),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I want)를 문장의 맨 앞에 두는 것을 어색해하고 심지어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 머뭇거림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나'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피하거나 관계의 조화를 깨지 않으려는 오랜 습성이 자리 잡고 있다. 주어가 사라진 문장은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하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 서기보다 흐릿한 배경의 일부로 살아가는 법을 먼저 배웠는지도 모른다.


무너지지 않는 문장을 만드는 법

반면 영어는 지독할 정도로 "I" 를 요구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믿는다", "나는 원한다". 주어를 빼먹는 순간 문장은 문법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무너져 내린다. 영어의 문장을 만든다는 것은, 매 순간 세상 앞에 나라는 존재를 명확하게 세우는 작업과 같다.

처음 학생들에게 "우리(We)"라는 익숙한 단어를 버리고 "나(I)"를 주어로 세우라고 이야기할 때, 그들은 일종의 '선명한 고립'을 경험한다. 공동체 뒤에 숨을 수 없다는 두려움, 내 감정과 선택을 오롯이 내 이름으로 내뱉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색한 "I"를 반복해서 내뱉는 순간, 학생들에게서 묘한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이나 상황의 흐름에 맡겨두었던 자신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를 발명하며 만나는 자유

원더스피크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라는 안락하지만 불투명한 감옥에서 걸어 나와, '나'라는 주어를 발명하는 일이다. "I am..."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 수강생들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분노하며 어떤 꿈을 꾸는지를 직면한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전공을 택하고 회사를 전전하던 시간 동안 내 인생의 문장에는 주어가 없었다. 하지만 영어라는 도구를 통해 "I want to start something new"라고 내뱉는 순간, 비로소 원더스피크라는 내 인생의 진짜 문장이 시작되었다. '나'를 주어로 세우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의 문장을 책임지겠다는 가장 정직한 고백이다.


문장 맨 앞에 나의 이름을 놓아준다는 것

주어를 되찾는 일은 처음엔 외롭고 낯설 수 있다. 하지만 그 선명한 고립을 견뎌낸 사람만이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 속에 뭉개져 있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공허하지만, 단단한 '나'를 가진 이들이 나누는 "I"와 "You"의 대화는 뜨거운 주파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그들의 문장에서 '우리'를 걷어내고 '나'를 세워주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선명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색하게 입술 끝에 맺힌 한 글자, 'I'를 뱉어냈을 때 마주하게 되는 해방감을 학생들도 꼭 한 번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