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법
트라우마라는 것은 결국 내가 극복하지 못한 무언가라는 뜻이다. 그것은 감정의 잔해일 수도, 부모님에게서 물려 받은 상처일 수도 혹은 어린시절에 스스로도 모른 채 얻게 된 마음의 생채기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기에 저마다의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게 되는데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때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지 않고서는 스스로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만다.
나에게도 오랜 트라우마가 있었다.
유연하게 흐르는 듯 보였던 아빠와 나의 관계에 감정의 모래들이 쌓여 자유롭게 바다로 흘러가는 관계의 흐름을 방해하던 그 순간, 우리는 4년이란 시간을 멀리 돌아와야만 했다. 하고 싶어하는 일에 으름장을 놓으시던 그리고 온전하지 않은 나의 일에 불만을 가지셨던 아빠. 사실 그 모든 감정의 시초에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고 본인의 생각이 관철되지 않으면 무작정 화부터 내셨던 아빠가 있기 때문이었지만 나 역시도 아주 오래 전 아빠에게서 받았던 상처가 관계의 장애물로 남아 아빠가 하는 말들에 모두 토악질을 질러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때 나는 아빠가 꺼내는 그 모든 말들에 의미없는 반항심이 들곤 했다. 스페인 순례길을 걷기 위한 오랜 가출 끝에 그 모든 감정들의 시초에는 아빠가 내 뺨을 때린 그 어느 어린 시절의 순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나는 33일의 시간동안 오롯이 아빠에 대한 나의 모든 감정들을 나열해 그 모든 것들을 아프지만 오롯이 마주할 수 있었다. 5살의 내가 여전히 잊어버리지 않은 채 가지고 있는 그 아팠던 기억과 내 곁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던 친구 그리고 코 끝에 흘렀던 피는 20년이 한참 지날 때까지도 머릿속 한 켠에서 감정선과 뒤엉켜 아빠에 대한 감정을 만들어 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내가 이 모든 감정들을 가지고 있기에 아빠와의 관계가 어려웠었다는 것을, 때리는 것이 결코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아빠 역시도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기에 실수를 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의 울음 뒤에는 아빠의 아픔도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기까지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길을 걸으며 어느 날 문득 마주하게 된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를 안아주고서야 나는 비로소 아빠에게 이 모든 사실들을 덤덤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프고 힘들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의 시작이 어디인지, 그 모든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풀지 못한 트라우마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다시 다음 세대에게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말테니 말이다. 길 위에서 몇 번이고 머릿 속으로 연습했던 아빠와 대화의 순간을 거짓말처럼 두 눈 앞에 가지고 온 순간, 나는 그 어떤 미움도 두려움도 없이 아빠에게 내가 느껴온 감정들을 나눌 수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들여다 본 나의 아픔은 햇살을 받아 보송보송 말라 있었다. 그 것에서는 더 이상 아픔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물론 아빠의 눈은 나를 바라 보지 못한 채 창 밖의 어딘가로 향해 있었지만 나는 흔들리는 아빠의 눈동자가 이미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그 날 이후로 나는 아빠와 마음이 닿은 세상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아빠 역시도 어른의 준비가 채 되기 전에 날 만났기에 그 모든 것들에 미숙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며,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부모님으로 받은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있었다. 아들만 좋아하던 아빠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은 친구, 언니만 좋아하는 엄마에게 끝없는 비교를 받아온 친구, 술을 마실 때마다 폭력을 휘두르던 아빠를 두려워 하던 친구, 둘째로 자라며 사랑이 부족하다 느껴왔던 친구... 대부분의 어른들은 트라우마를 자신의 일부로 안고 살아가지만 그 트라우마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상처받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상처들을 온전히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부끄럽고 아프지만, 나의 모든 감정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가만히 꺼내어 안아줄 여유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심코 낸 상처까지도 짊어질 수 있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것을 성숙이라 부를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