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잘지내는지 안부를 묻고싶어지는 순간
사랑이 시작되는 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 그리고 그 어떤 감정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은 결국 우연을 가장한 인연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한쪽의 노력이 비롯되기 때문이었다. 학교 생활을 하며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가 당신과 인연이 되었던 것은 당신이 내가 눈치채지 못할만큼 야금야금 만들어내던 인연 덕분이었는데 훗날 당신과 내가 인연이 되어 이 모든 이야기들을 술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야 나는 비로소 당신이 만들어낸 모든 인연들을 선으로 그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나의 이름과 나이, 내가 소속된 단체, 내가 듣는 수업, 내가 활동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음료를 조목조목 알아가던 그의 수줍음과 그가 자그맣게 만들어내던 찰나의 인연들은 나를 웃게 만들고 말았다. 누구의 말마따나 어른들의 연애는 '오늘부터가 1일'이라는 구체적인 대답과 정의없이 그저 수줍은 웃음으로 시작되기도 한다는 걸 나는 그에게서 배웠다.
학교 정문에서 기숙사로 향하는 20분의 시간동안 그와 내가 걸음을 맞춰 걷던 일, 스쿠터를 빌려와 짧고 용감했던 드라이브를 즐기던 일 그리고 나의 심장과 그의 심장이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음을 모든 감각이 알아차리게 된 일, 밤나무에 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어느샌가부터 함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기던 일, 도서관을 좋아하는 나와 그런 나를 기다려주던 당신이 밤 9시가 되면 짧고도 긴 걸음을 옮겨 학교 후문에 있던 편의점에서 항상처럼 커피 한잔을 들고 기숙사 주변을 서성거리던 일. 그 모든 조각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되는 것은 어쩌면 그와 내가 너무나도 수줍었던 청춘의 조각을 처음으로 끼워맞추던 연애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처음 해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던 어른의 '시작점'에서 나보다 조금 더 경험이 많았던 그가 나에게 주었던 경험들은 여전히 그가 처음이었던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이 처음이었던 우리의 관계에 권태가 찾아왔다.
결국 인천에서 온 그가, 우리가 그토록 아끼던 제주에서의 대학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떠나던 날, 그와 함께 우리의 관계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게 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신과 나의 마지막과 우연한 또 다른 만남이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돌아섰던 내가 어둠 속에 숨어 몰래 뒤돌아선 당신을 바라본 순간 그 곳에는 흔들리는 어깨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서서 떠날 줄 몰랐기 때문이며 부디 내 앞에선 눈물을 흘리지 않기위해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었던 그를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마지막 모습은 부디 웃는 얼굴이길 바라며 그가 떠나는 비행편에 맞춰 공항을 찾은 나는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던 이병률의 '끌림'을 그에게 건내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냈다.
몇 년이 지나 홀로 서울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내 핸드폰에 익숙한 번호로 '잘 지내?'라는 문자가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홍대입구 9번 출구의 인파 속에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익숙한 얼굴을 순식간에 찾아내는 나를 읽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쭈뼛거리며 서로의 근황을 묻던 우리의 앞에 있던 잔이 수차례 기울어진 후에야 "우린 왜 헤어진걸까"라며 그가 물었고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 어떤 분명한 이유도 없이 헤어진 우리였기에 별다른 설명없이도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이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새벽 두시를 넘긴 시간, 집으로 향하던 그가 나에게 보낸 음악 선물은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아무런 코멘트도 담기지 않은 메세지였지만 노래 한 곡이 전할 수 있는 진심이 얼마나 큰지를 나는 그 전으로도, 후로도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 비록 한번 헤어진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운명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따금 라디오에서 김동률의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나는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지곤 한다. 그가 잘지내는지 도무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이따금 그도 이병률씨의 책을 볼 때면 나의 안부를 가끔 물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