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생, 김지영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는 중입니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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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꽤나 오랫동안 회자되었고 동네 도서관에서 대기 번호 10번을 부여받은지 세 달이 지나서야 이 책을 받아 들게 되었다. 책을 받은지 하루만에 그 모든 글들을 읽어냈지만 읽은 속도와 마음의 여운은 반비례한 모양이다. 꽤나 오랫동안 나는 김지영씨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김지영들에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나는 어쩌면 엄마 세대가 겪어 오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고 짐짓 짐작해볼 수 있을 법한 삶을 살아왔다. 나의 의지대로 대학을 갔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인턴쉽으로 해외에 다녀올 수 있었다. 첫 생리가 시작되는 날, 무척이나 부끄러웠던 나와는 달리 엄마는 퇴근길에 케이크를 하나 사왔고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내가 처음으로 여자가 되었음을 알렸다. 동생은 엄마에게 여자가 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또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자 어려운 일인지는 설명해주셨는데 아마 나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라와서였는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는 피부로 느끼지 못하며 자랐는지도 몰랐다. 수능 100일을 앞두고 기숙사에 살던 나에게 남몰래 전화를 하시곤 맥주 몇 캔을 숨겨 들여주시던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이지 개방적인 집에서 자란 것이 맞다. 하지만 아무리 열린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내가 경험하는 사회의 모습은 과연 그렇지 못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덮고 집으로 향하는 길, 내 맞은 편에는 나와 같은 책에 열중하고 있는 한 사람의 가장이 타고 있었다. (같은 지하철 칸 안에서 우연히, 같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이다) 과연 그는 김지영씨의 삶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해를 하고 있을까. 나는 문득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P177 자꾸만 김지영씨가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

들, 그리고 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쓰는 내내 김지영씨가 너무 답답하고 안쓰러웠

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랐고,그렇게 살았고,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늘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김지영씨에게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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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서른을 넘긴 후, 나는 이제서야 김지영씨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조차 쓰지 않던 내가, 뒤늦게 한국으로 돌아와 겪는 성장의 고통은 어쩌면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그 이상의 몫이었지만 꾸역꾸역 살아내면서도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기회와 선택지 덕분이었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지 않을 수 없어졌다.하지만 그 많은 선택지 속에서도 김지영씨와 비슷한 삶의 곡선을 따라가게 되는 것은 타고난 삶의 숙명인 것일까.


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김지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혹은 김지영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이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누구도 애써, 정의 내리지 않았던 상처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남과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타인과 비슷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바라고 또 바라는 나를 보며 나는 내 자신이 얼마나 모순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p180 다양성과 개성의 시대에는 ‘나답게’ 사는 것, 그래서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개인의 과제

가 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좀처럼 ‘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통해 내가

구성되는데, ‘나’를 구성할 만한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양

하기 때문에 어떤 정체성에 보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경험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정체성들 중에서도 자기 정체성의 핵심은 ‘성’이다.




적어도, 800km의 순례길을 걸으며 온 몸으로 깨달았던 그 모든 깨달음을, 사회가 정해놓은 제도와 분위기에 휩쓸려 잃어버리지 않기를, 타자의 시선과 가벼운 돌팔매에 쉽게 어렵게 얻은 나만의 길로 향하는 모든 노력들을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82년생 김지영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88년생 김지영 중 한명이지만 적어도 나는, 억울한 마음의 응어리는 세상 어딘가에 풀어놓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훗날 김지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조금은 용기를 낼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어려운 걸음을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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