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진실

때론 당신에게도 꺼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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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놀랐던 이야기는 나에게 지금의 동생이 아닌 또 다른 동생이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빠는 갓 대학생이 된 내가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왔을 때 처음으로 나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나에게 지금의 동생이 아닌 다른 동생이 존재했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처음 건내던 날 엄마의 눈이 노을처럼 발갛게 번져갔던 순간

엄마를 그저 바라볼 수도 그렇다고 안아줄 수도 없어 어쩌지 못하던 그 때, 시계의 초침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맴돌았던 기억과 여전히 어디 묻힌지 모를 동생의 이름 세 글자에 대한 사연

그리고 엄마와는 또 다른 시간, 술에 잔뜩 취한 아빠가 귀퉁이가 낡아 올이 풀린 갈색 지갑 깊은 구석 어딘가에서 주섬주섬 꺼낸 아주 오래고 빛 바랜 그리고 구석구석 물방울이 번진 흔적이 있던 누런 편지 한장

아마 그 것이 엄마와 아빠, 서로에게는 불문율처럼 각자의 가슴에 묻고 있던 작은 비밀이라는 사실, 서로에게는 앞으로도 꺼낼 수 없는 커다란 상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가족의 뜻을 다시 써내려갔다.



차마 어른이 되지 못한 주변인으로 존재하던 내가 그 편지를 읽던 모습은 아빠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었을 지 채 알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울면 안된다는 생각이 아주 선명했다는 것, 입술을 아주 세게 깨물었고 양치를 할 때까지도 그 선명한 자국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던 기억이 여전히 바래지 않았다. 그 것은 내가 상상하지 못할 아픔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조금 일찍 알아버렸고,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 비해 일찍 철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동생에게 조금 더 애틋했고 아빠는 조금 더 무뚝뚝했다. 동생은 딱 사라져버린 그 아이의 몫만큼 그리고 자기의 길을 걷겠다며 이기적으로 한국을 떠나버린 나의 몫까지 두 배의 인생을 살았다. 가끔 "잘지내냐"라는 무뚝뚝한 인사를 건내는 것이 전부였던 누나를 원망할 수도 있었던 동생이었을테지만 "누나가 하고 싶은거 하면서 지내"라는 짧은 말 한 마디로 나의 모든 짐을 짊어지던 동생을 서른이라는 시간이 되어 만났을 때 나는 어쩌면 나보다 더 철이 들어버린 동생을 앞에 두고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아주 오랫동안 앞에 있는 잔을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했다. 미안한 마음을 덮어두려 짖궂은 말과 장난으로 남매의 공백을 덮어두려던 나는 시험을 위해 잠시 상경을 한 동생이 시험을 마치고 술에 취해 들어온 밤, 덤덤한 표정으로 군대 에서 이를 가는 잠버릇 때문에 방독면을 쓰고 매일 밤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으로 눈물을 몇 번이고 삼키며 돌아누운 베갯잎이 젖어가는 밤을 보냈다. 친구를 만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너에게 주머니가 가벼웠던 나는 기차 티켓 한장 사주지 못하고 떠나보내고서야 비로소 나는 만원의 지하철에서 소리내어 울었다. 너의 서러움을 알지 못한 채 하고 싶은 일만 쫓아 해외로 도망가듯 사라지는 나를 너는 얼마나 원망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터놓을 피붙이 하나 곁에 두지 못하고 살아온 네가 너무 안타까워서, 내 몫의 삶까지 살아와야했던 너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 날 이후로 가끔 그리고 자주 동생을 생각하며 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우리는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비밀이 많은 사이가 되었다. 일을 그만둔 것도, 그저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나는 당신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 엄마는 몇 일 전 10만원을 보내왔다. 수술을 한다며, 미역국이라도 끓여 먹어라 하시며 보내는 그 돈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나는 알 턱이 없지만 다시 또 나는 엄마의 눈물을 염치없이 받고 말았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 돈을 보내온 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때로 서로에게 닿지 못한 마음은 더 큰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밀이 많은 사이다. 네 사람의 공백에는 저마다의 깊은 비밀이 숨어있다. 때로 그 비밀은 서로를 위해 너무나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딱 그만큼의 삶의 무게를, 어쩌면 서로를 위해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나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아프고도 아름다운 말이자 언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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