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여유가 없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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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어쩌면 서른이 넘은 나를 통해 그리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일지 몰랐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우리가 그랬고, 내가 하고 있는 연애가 그랬다. 우리는 누구하나 풍족하지 못했고 그래서 였는지 조금은 부족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일찍이 결혼한 친구에게는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두 개의 아니 세 개의 가정이 생겼고 친구는 이따금 친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도 그리고 가장 가까운 나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속으로 삭히는 버릇이 생겼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풀어내야하는 나와는 달리 친구를 보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마 속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삼키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어머니의 암 선고를 알리며 덤덤한 표정을 애써 지어 보였다. 결국 그 누구도 여유롭지 못한 사정이기에 결국 서로에게 와닿지 않는 이야기가 되리라는 것을 알며 이따금 메신저로 안부 정도를 물을 뿐이었다. 나의 수술은 그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이슈 정도였고 나조차도 나의 일보다 친구의 일이 더 마음 아픈 일이라는 걸 알기에 잘 끝났다는 인사로 메신저에 답장을 채울 뿐이었다.



하루종일 나는 네가 쏟아낸 말들을 다시 꺼내보고 있는 중이었다. 뭐든 잘 잊어버리는 나에게 이상하리만큼 그 말들이 선명하게 꽂힌 것은 어쩌면 그 모든 말들이 진심이기 때문이었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지난 밤, 나는 길지 않은 수술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짧은 낮잠을 잤고 거짓말처럼 일어나 살아있기 위해, 어쩌면 살아내기 위해 미역국을 끓였다. 그것을 입 안 가득 밀어 넣으면서 이렇게 억지로라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이, 살아내는 것이 삶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울컥하고 목이 메여왔다. 수술을 한 건 나 자신인데, 왜 모두들 나에게 화살을 겨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꽤나 속상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고 눈을 떠서도 하루종일 그 생각들을 떨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서울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여유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과거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역할이었던 나의 모습이 이젠 힘듦을 토로하고 있는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서른이 넘은 나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없어서, 그 누구의 말도 담아줄 수 없는 그릇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주변인으로 방황하는 나의 그릇은 나 자신을 담기에도 지나치게 작아서 들어주지 못하는 사람으로 자리하고 만 것은 아닌지 하루종일 그런 생각들을 하며 5평도 채 되지 않는 방안에 누워 울컥하고 터져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여유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되는 지를 생각했다. 아마 결코 서울에서 여유있는 삶을 살기란 평생동안 어려운 일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유 하나 없는 내가 또 다시 그런 너를 만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독한 모순이라는 생각이 맴돌다 지나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창문을 열면 놀이터에서 벚꽃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래도 내일은 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생각이 하얗게 바래질만큼 낮잠을 잤고 커피를 내렸다. 소소한 것들이 결국 다시 살아가는 여유를 선물해준다는 것을, 그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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