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오늘은 비가 오지 않길 바래봅니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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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길, 만일을 위해 확인하곤 하는 일기예보였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던 건 오늘, 처음으로 서울에 온다는 아빠 때문이었다.


35년간 몸 담고 일했던 회사의 일거리가 줄어들고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족들의 생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수많은 지방의 아버지들은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서울이라는 곳이 얼마나 큰지, 그 곳의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그들이 가야할 곳은 어딘지도 모른채 말이다. 딸이 살고 있는 도시에 가면 딸을 잠시라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아빠의 일말의 기대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와 동시에 언제 끝날지 모를, 결과를 알 수 없는 집회에 대한 일말의 걱정도 조금은 섞여 있었다.


"바쁘면 안와도 돼~ 그냥 근처면 잠시 들러서 얼굴이나 보고 가던지"


아무런 기대도 없는 듯 보이는 말들에 속아 우리는 아끼는 사람들의 속내를 읽지 못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걸까.

언제나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괜찮지 않음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 괜찮지 않은 대상은 종종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곤 한다. 결국 나 자신도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유약한 동물이었던 것이다.

회사에선 4차 산업에 대한 테마로 끊임없는 기획력을 짜내는 내가 있고 나의 삶 한 켠에는 산업혁명으로 일궈진 일터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아빠가 있다. 언젠가 미생에서 한석율의 '현장'을 언급하던 대사에 오래 고개를 끄덕이던 것은 아마 나 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둔 수 많은 청춘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미생을 통해 위로를 받고 공감을 내비치던 우리가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오늘, 우리가 마주해야할 몫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시대를 탓할 수도, 기술의 발전을 원망해볼 수도 없는 일이지만 대안이 없는 삶을 바라보는 일만큼 가슴 아픈 순간은 없다. 아마 지금 이 순간, 서울에 도착한 수많은 아버지들 역시도 결국 시대의 흐름에 따라 결국 지금의 일들이 사라지는 때가 온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내야할 것들이 있기에 먼 길을 달려 서울로 오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만이 가족을 지킬 시간을 버는 일이었을테니 말이다. 언제나 '자연인'을 보며 머지 않은 미래에 자유로워지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아빠의 술자리 고뇌도 이렇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에겐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서른이 넘어 뒤늦게 고군분투하며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딸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첫 직장생활을 앞두고 있는 남동생이 적응을 할 때까지만이라도 아빠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일기예보를 조금은 원망했다. 비에 젖은 아빠를 보면 울컥하며 터져나오는 눈물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나는 오늘, 조금은 더 간절하게 비가 조금 더디오길 바래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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