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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관소
by JessieJ Aug 01. 2018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상사의 감정도 내가 치워드려야 하는걸까?


 한국에 돌아온지 일년하고도 반 그리고 새로운 회사에서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회사소개를 보고 자신감있게 지원했던 회사가 자랑스럽게 써붙여놓은 자격과 복지 중에서 '자격'은 기대 이상의 수준을 요구했지만 복지는 그 어떤 항목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걸 입사 한 달 만에 깨닫게 되었다. 입사 후 회식 자리에서 옆 팀 팀장님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회사 무얼 보고 지원했어요?"


 "회사 소개가 너무 매력적이어서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 누구도나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는 걸,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두 달이 지난 후에야 조심스레 깨닫게 된 것은 내가 꽤나 둔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는지도 혹은 일에 치여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출근과 퇴근이 자유로운'이라는 항목은 (직급이 있는 강자에겐) 출근이 자유로운 이라고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퇴근이 자유롭다는 말인즉슨 퇴근 시간이 아주 늦고 주말 출근도 종종 감행해야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 또한 기획 나부랭이를 하는 사람이 감수해야하는 무엇이라 했다. 언젠가 유병재의 '젋은 꼰대' 이야기를 남 말처럼 듣고 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새 술자리 내 옆 상사는 젊은 꼰대보다 더 무섭다는 '본인이 꼰대인지도 모르는 꼰대'였고 "요즘 애들은 말이야, 주말에 출근하라고, 퇴근이 좀 늦어진다고 하면 난리야. 우리 때는 안그랬는데 말이지. 회사를 위해서 그렇게 일하면 회사가 어련히 알아서 챙겨준다고" 라는 말을 하며 마치 나를 개념이 없는 사람으로 순식간에 만들어 버렸고, 일이 채 적응하기도 전인 내가 버거움을 표하자 "우리 때는 이것보다 더 많이 일했어. 앞으로 일 많다는 말 하지마" 라는 말로 기를 죽였다. 


 그 모든 것들은 커피 한잔, 약간의 욕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내 가슴 속에 사표를 숨겨두게 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그들의 감정 미화원 역할이었다. 본인은 감정을 온통 얼굴에 드러내면서 본인의 감정에 거슬릴 때면 그는 언제나 나에게 말했다. 




"야, 좀 웃고 다녀라" 


그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해야할 말들을 나에게 던졌고 나는 마치 무대 위의 광대처럼 같은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조롱의 대상이 되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결국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하기 방식이 나를 비롯한 방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불편이 되어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그들만 모르고 있는 듯 했다. 팀이 합병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일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받은 스트레스와 잡무들은 결국 찌꺼기처럼 남아 막내 역할을 하는 나에게 어김없이 돌아왔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각자의 한숨과 화를 들고 와 자리에 앉았고 그 곳에서 생겨난 많은 일들은 감정과 함께 나에게 던져졌다. 한숨과 함께 혹은 인상을 쓰며 건내는 크고 작은 일들만 처리하기에도 하루는 벅찼다. 주말에 받기 싫은 업무 전화는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고 결국 제대로 쉬지 못한 나는 작게 병들어가고 있었다. 작은 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에러사항은 이미 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비롯해 주말의 구분없이 크고 작은 잡무들을 처리해야하는 것인데 3개월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버린 내 자신을 탓하며 내 스스로의 감정까지도 꾸역꾸역 먹어삼키고 있었다. 


지난 밤,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팀장님에게 나는 조금은 솔직한 이야기를 꺼냈다.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하며 눈치를 보고 지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힘들었다는, 이 길이 맞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 



"내일 그만둬도 후회하지 않을만큼만 하면 돼. 굳이 진흙탕에 너를 오랫동안 머물도록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노력을 해서 변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걸 짧지 않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변할 수 있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 또한 있는 법이다. 감정의 쓰레기통이 더 이상 되지 않기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하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최선을 다해 오늘을 보내며 내일을 준비하는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하며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기엔 내 청춘이 너무나도 아까우니까 말이다.



오늘은 상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겠다는 다짐을 한 첫 번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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