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마음에 떨어진 별 하나

Hodophile 로드트립 _ 에스페란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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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행복지수가 얼마나 높아지는 지를 나는 호주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고개를 뻐근하게 올려 들지 않아도 시야의 60% 이상이 파란 하늘을 차지하게 되는 풍경들을 눈 앞에 두고 나는 자꾸만 가슴 한 구석에서 뜨거워지는 어떤 응어리들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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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를 떠나 와인의 고장이라 불리는 마가렛리버 지역으로 향하는 길엔 보물같은 바다가 있었다. Greens pool이라는 이름의 이 해변은 커다란 암초들이 파도를 막아주어 잔잔한 작은 수영장이 형성된 곳이었는데 거대한 암초 주위로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는 스노클링 포인트로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스팟이었다. 12월의 여름을 즐기는 호주 사람들은 긴 연휴가 시작되면 가까운 나라로 여행을 떠나거나 조금 더 시원한 남극해가 있는 남쪽으로의 여행을 미리 계획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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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을 앞에 두고선 언제나 생각나는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태어나서 한번도 제대로 된 비행기를 타본적이 없는 부모님이, 내 형편을 알고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주고 간 친구가 그랬고, 그 언젠가 이 곳을 함께 여행오자고 했던 한 때의 소울 메이트가 그랬다. 언제나 여행은 '만약'이라는 조건과 함께 한다는 걸 좋은 풍경을 앞에 두고서야 깨닫고 만다. 오랜 여행을 다니는 사람의 마음엔 어딘가 크게 허기진 구석이 있다는 것이 아마 여기서 오는 말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했다. 긴 여행으로 채워진 감성과 삶에 대한 생각만큼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허기지는 것은 여행에 대한 영원한 모순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외로운 삶과 허기진 삶, 어쩌면 그 둘은 영원히 함께 채워질 수 없는 삶의 조건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결정이 어려운 것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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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와서 가장 크게 놀랐던 건 아빠들이 아이들과 유난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주말의 공원은 온통 아이와 아빠의 모습 뿐이었다. 일주일동안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잠시의 휴식시간을 주기 위해 엉성하게 쨈을 바른 샌드위치를 담아와 아이와 함께 잔디밭에 누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걸 다시 한번 더 느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을 나는 아마 호주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의 일상 속에서 나는 배우지 말아야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배울 점들을 얻어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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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떠나 다시 먼 길을 떠나는 길, 사실 나는 바닷가에서 홀로 스노클링을 하던 중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으려 바위에 붙어 있는동안 물살에 쓸려 발바닥이 찢어지는 사고가 나고 말았다. 수영을 하는 동안에는 알지 못하다가 바닷가로 나오고서야 발자국을 따라 선명하게 묻어있는 핏자국을 누군가가 알려준 바람에 알게 되었는데 피가 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아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급히 상처가 심장의 높이만큼 되도록 조치를 취하고 응급함에 있는 소독약과 붕대로 응급처치를 한 후에야 비로소 여행은 다시 시작되었다. 나무 계단마다 붉은 발자국이 새겨지던 걸 지켜본 꼬마가 나만큼이나 아파보이는 얼굴로 나를 곁에서 위로해준 덕분에 나는 어른스럽게 웃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여행은 언제나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라는 걸 아픔을 통해 깨닫는다.



마가렛리버가 있는 남쪽에는 유난히 울창한 수풀림이 조성되어 있다. 비가 자주 내리고 따스한 해가 강렬하게 비추는 것이 아름다운 숲을 만드는데 일조했던 모양이다. 길게 뻗은 유칼립투스 나무 사이를 달리는 기분이 여행의 설레임을 더해주고 있었는데 울창한 숲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을 바라보는 일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만들어내는 싱그러운 향기가 좋았고 길게 뻗어 자란 그들의 삶의 모습이 좋았다. 호주를 떠나게 된다면 이 울창한 숲이 얼마나 많이 그리워질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건 이 곳은 후에 서호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3곳의 장소 중 한 곳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아도 그 곳의 바람이 느껴질만큼, 그 숲이 나에게 주는 영감의 깊이는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이 장소에 대한 강렬한 느낌은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오랫동안 이어졌는데 영화 '10억'을 찍었던 장소라는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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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주는 특히나 환경보호에 엄격한 동네이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공원을 전체적으로 관리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해 곳곳에 세워진 표지판으로 관리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사람들 개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트래킹을 떠나기 전엔 언제나 표지판을 통해 트레일의 난이도를 확인하곤 하는데 대략적인 거리와 시간, 트래킹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를 살펴보고 떠난다. 나는 종종 이 드넓은 호주에선 '나'라는 존재 하나가 사라져도 알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그와 나의 생각이 어느정도 얼추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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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 듯이 길쭉하게 뻣어있는 유칼립투스의 일종인 Gum Tree를 보면서 우월한 유전자라는 말은 이렇게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오후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도 흔들림없는 시간을 지켜내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또 그 속에 잠시나마 속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에 대해 나는 자꾸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재해, 그 중 산불에 대한 인지도가 높았던 호주 사람들은 높게 뻗은 나무 위로 올라가 위험을 감지하곤 했는데 그 옛날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심어두었던 엉성한 계단은 오늘 날 사람들에게 마가렛리버의 울창한 수풀림을 내려다보는 하나의 포인트로 자리매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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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생활하며 깨닫게 된 것 한 가지는 그들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데 큰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엉성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 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는 일은 무척이나 두려운 일일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아빠와 딸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어느새 작은 점이 되었다. 아마 나였다면 쉼호흡을 열 번 즈음은 내쉬었을텐데 말이다. 붕대를 칭칭 감은 발을 바라보다 다음을 기약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아름다운 풍경을 꼭 한번 내려다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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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길을 달려 퍼스로 향하는 길, 우리는 잔뜩 주린 배를 채우려 고즈넉한 마을의 한적한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레스토랑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메뉴를 기다리는 일은 조금은 도전적인 일, 내가 주문한 메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공적이라면 조금 더 행복해지는 그런 일이 맞다. 여행을 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것들로 행복해진다. 결국 여행이라는 건 삶을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을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여행을 오랫동안 해 온 사람들의 눈가에는 깊이 있는 삶의 흔적이 엿보이는 것이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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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4차선 도로로 들어서고서는 야간 운전이 조금은 안전해졌다. 빛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퍼스에 가까워지면 빛 공해로 인해 밤 하늘의 별을 마음껏 올려다 볼 수 없기에 하이웨이 위의 작은 간이 쉼터에 잠시 멈춰 섰다. 문을 열면 시야 가득 들어오는 밤 하늘의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그 하늘 아래 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오랜 시간동안 호주에 살면서도 이 아름다운 하늘을 한번 못 올려다보고 떠난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 하늘에 깊이 빠져버려 호주로 천문학 공부를 떠나온 이도 있었다. 별은 그리고 그 별을 담고 있는 하늘은 이성적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의미로, 감성적인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느낌으로 바라봐지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그 하늘은 한번만 올려다 본 사람은 없을정도로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오죽하면 이 하늘을 잊지 못해 다시 호주를 찾아오게 되었다고 말을 한 것일까. 북반구에서는 빛의 공해에 가려져 있던 밤 하늘의 별들이 남반구에서는 선명한 잔영을 남기며 사라져간다. 아주 잠시라도 누군가에게 선명한 여운을 남기고 떠날 수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 나는 여행이 끝나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카메라가 더 많은 별들을 담아낼 수 있길 바라면서 나라는 사람의 마음에도 더 많은 별의 잔상이 남길 바라고 또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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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note


Destination : Albany - Perth

Distance : 614km

Reference


+ William Bay, Elephant Rock : 알바니를 떠나 남쪽을 둘러 마가렛리버를 통해 퍼스로 이동하게 된다면 아름다운 윌리엄베이에서 시간을 보내길 추천한다. 비교적 잔잔한 바다와 아름다운 색의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는 포인트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다. 스노클링 장비와 간단한 음식을 챙겨가는 것이 좋은데 우리나라처럼 주변에 상점이 있어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화장실 시설만 갖추어져 있다)


+ 여행시 주의사항, 빈 차 털이범이 많은 호주에서는 차 안에 귀중품을 두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차를 비울 때는 언제 어디서든 보이지 않는 곳에 귀중품을 미리 숨겨두는 것이 좋고 그렇지 않다면 들고다니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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