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두들한 하루
doodle 미국식 [ˈduːdl] 영국식
(특히 지루해 하거나 딴 생각을 하면서) 뭔가를 끼적거리다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그저 말 그대로,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이끌려가다보면 무의식의 끝에 비로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그런 일들이 자주 그리고 종종 일어나곤 했다.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온지 3개월 차, 나는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과연 하루도 즐겁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울 생활과 익숙하지 않은 회사 그 모두에 적응하려 버둥거리다 결국 그 모두에 지쳐 쓰러져 버린 나를 위로하기 위해 오랜 친구가 기차를 타고 달려왔다. 친구는 내가 꼭 봐야하는 전시가 있다고 말했다. 그 전시를 보여주기 위해 그 먼 거리를 달려온 것이라 했으니 나는 오랜만에 조금의 두근거림을 안고 그동안 그 어떤 것들을 해도 나아지지 않은 기분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다독거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두들이 가득한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나는 잔뜩 지친 상태였다. 큰 기대도 없었고 단지 오랜만에 하는 문화생활에 조금의 설레임이 있었을 뿐이었다. 불과 그 하얀 벽과 검은 낙서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나의 선으로 시작해 또 다른 하나의 선으로 끝이 나는 첫번째 전시관을 보는 순간,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끊임없이 쏟아내는 생각과 엉뚱한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것이 결국에는 하나의 걸작이 되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머리를 스치는 그 감정은 사실은 나를 조금 울고 싶게 만들었다
모두가 다 '낙서'라고 치부하던 것을 묵묵하게 해오던 그가 결국에는 하나의 걸작을 만들어내며 예술가로서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운명이 정해둔 것일까를 조금은 생각했던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내가 해오는 생각,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그가 두들링을 하듯이 끊임없이 하나의 선으로 하얀 백지 가득 쏟아내고 싶어졌다. 그의 전시를 보고 오랜만에 까만 글자들을 쉴새없이 쏟아내고 싶은 허기를 느꼈다. 내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곁에 있는 누군가가 결코 감당할 수 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잠시 닫아둔 감정의 욕구가 다시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손 끝의 감촉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펜을 끊임없이 만지작 거렸고 하얀 종이가 보이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아니 어쩌면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낙서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생각을 하나 둘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이따금 머리가 무거워질 때면 쏟아내던 생각의 잔재들을 고스란히 바라보던 일을 멈추고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도 멈춘 후, 내 톱니바퀴가 점차 녹슬어가던 중이었다는 걸 너는 아마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기쁜 감정이든, 아픈 감정이든 결국 그 것들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비로소 성숙해질 수 있다는 걸 오랜 길을 걸으며 깨달았는데 나는 삶에 지쳐 잠시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생각하는대로 살겠다는 삶의 철학 대신 살아지는대로 생각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작은 감정의 조각들을 그리고 또 써내려가며 그 것들이 결국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두들링을 한다는 것은 끝없는 감정과 생각의 표출을 통해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을 고스란히 바라보는 일이며 또 그 것들을 통해 삶을 위로받는 일이다. 그리고 그 두들링이 나에게는 글을 쓰는 일이었다는 걸 짧지 않은 전시회 동안 깨달았다. 무언가를 쓰고 싶은 그리고 쏟아내고 싶은 끝없는 허기를 느낀다. 그 허기들을 하나 둘 써내려가며 언젠가 바라보게 될 나의 두들링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작품이 되어주리라는 것을 믿고 또 믿으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짧지 않은 삶의 시간동안 경험하고 담았던 모든 생각들을 바라보며 내가 위로 받듯이, 내 두들거리는 시간들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매일 두들링을 하며 나는 내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또 바라보며 비로소 생각대로 살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