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성숙해지는 관계에 대해서

사막에서 꽃을 피워보기로 했습니다

by Jessie


잔뜩 지쳐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정적인 색채의 피드백들을 쏟아내는 나를 스스로도 견뎌내지 못해 나는 점차 말수가 줄어갔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달리기를 했고, 이따금 글을 썼고, 술을 마시거나 울어도 봤지만 그렇게 쉬이 나아지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울컥거리는 무언가가 알려주었다. 나는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정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사회의 시선과 잣대를 기준삼아 애써 외면하려 했는지도 몰랐다. 마음을 다해 하던 일들이 경력이 되지 못해신입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일들을 시작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지고 있었고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자꾸만 스스로를 부적응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할 줄 아는게 없는 스스로를 알아차리고나니 늦다면 늦은 나이에 신입으로 나를 뽑아준 몇몇 회사들이 조금은 도전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알아차리기 위해 아주 먼 스페인으로 날아가 한 달 이라는 시간을 꼬박 걸어내며 마음이 동하는 일을 하자고 마음 먹었고, 뜨거운 사막을 건너며 스스로의 의지와 열정에 대해 인정하던 때도 있었는데 막상 그 모든 마음과 기준들을 한국이라는 세계에 들고 돌아와 적응 시킨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점차 조급해져갔다. 어렵게 시작한 서울 생활과 매 달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의 적지 않은 동그라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마음의 무거움이 더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힘들게 담아온 마음의 기준들을 모르는 척 했다. 그 기준들을 토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어려웠으니까.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닫아가고 있었다. 나는 자주 울었고 스스로를 더 많이 탓하며 점차 눈빛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그런 나를 곁에서 적지 않은 시간동안 바라봐준 사람이 있다.

지난 밤, 그와 함께 티비를 보던 중 남자 주인공이 꺼낸 이야기가 문득 마음을 부끄럽고 먹먹하게 했다.




" 넌 사막같아,

아무리 물을 퍼다 날라도 결국 모든 것들을 다 증발시켜버리고 되돌아서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결국 자신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친구에게 헤어짐을 말하던 남자의 대사였다. 그 이야기는 마치 그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만 같았고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은 나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는 나에게 글 하나를 공유했다. 의지하고 있던 많은 것들 그러니까 10년 가까이 일하던 회사와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리고 생활을 위해 부랴부랴 선택한 회사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다 결국 마음을 찾기 위해 퇴사를 결심한 동료의 퇴사 결정 스토리였다. 마음이 충분히 위로받을 시간을 가지지 못해 힘들었다는 그녀의 이야기와 상황 그리고 한참이나 어려웠을 결정에 대한 글이 마음에 하나하나 박혔다.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 회사가 퇴사 대신 3개월의 휴가를 선물해주었다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우린 결코 넉넉하거나 여유가 있진 않았지만 그는 당장의 먹고사니즘을 위해 꾸역꾸역 신발을 신고 출근을 하는 나에게 이야기 했다.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던 시간들을 위로하는 타이밍도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호주로의 휴가를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호주가 아닌 어디라도 마음이 움직이는 곳이라면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루에도 수 십, 수 백번을 갈피를 못잡는 나의 감정선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과연 당신이 나라는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려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과연 나라면 상대를 위해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들었고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정작 본인은 쉼표 하나 없이 매일 잔뜩 지친 얼굴로 잠이 들지만 좋은 회사와 기회를 만나 열심히 일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도 곧 그런 회사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건냈다. 회사와 함께 성장을 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너에게도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너의 모든 시간들을 응원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사랑을 시작한 이후 오늘이 가장 성숙해진 순간이었다.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 언어의 온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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