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에 시작한 사회생활

나에게는 '왜'라는 회사의 본질이 중요했습니다.

by Jessie


한국에 돌아온 건 2017년 1월의 일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을 다하던 일을 그만두고도 나는 자신있게 새로운 직업을 통해 많은 경험들을 하며 글을 쓰겠다고 무식하고도 용기있는 다짐을 내뱉었지만 나는 2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5번째 회사에 마침표를 찍는 중이었다. 몇 번의 도전과 미끄러짐(나는 '그만둠'을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에서 얻어지는 깨달음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나만큼이나 '일'에 물음표를 가지고 사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오랫동안 있었다.



첫번째 역할은 헬스케어 회사의 마케터로서의 첫 걸음이었다.

마케팅은 어느 기업에서나 필요한 능력이었지만 호주의 회사 생활동안에는 배울 수 없는 능력이었기에 바닥부터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마케팅 부서에 씩씩하게 지원했지만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판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을 좀 먹는 일이었다. 의도는 좋은 회사였지만 대표의 책임감없는 행동으로 회사는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결국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의 첫 직장생활을 5개월만에 마침표 찍고 비루한 월급조차도 받지 못한 채 법원과 노동청을 여러번 오가며 임금체불에 관한 경험을 했다. 임금이 체불되는 기간동안 대표가 보낸 미안하다는 말과 믿고 기다려 달라는 문자 메세지는 희망고문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결국 대표는 믿음을 져버렸고 국가가 그 상처를 응급치료로 대신해주었다. 3개월간의 실업급여가 채워주지 못하는 삶에 대한 허기와 고달픔 그리고 그 것이 스스로를 좀 먹어가며 결국 대상포진에 걸린 일 그리고 앓아 누운동안 얼룩덜룩한 방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끊임없이 위안을 보내던 일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형광등에 노랗게 바랜 벽지의 기억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집에서 한 시간 반의 출근 시간 끝에 닿게 되는 키즈카페의 매니저 자리는 비교적 단순한 일이자 사람들을 상대하는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지만 소개로 시작하게 된 일의 깊이를 알지 못한 나는 그 때도 단순히 주머니 사정에 쫓겨 무작정 일을 시작했다. 출퇴근이 장장 세시간이나 되는 삶을 이어가는 것은 쉬운 듯 생각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르르 지하철을 채운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도 책장의 까만 글자 몇 알과 옆 사람의 대화를 한참동안 들여다본 후 나는 비로소 일터에 닿을 수 있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출근길의 시계를 바라보며 나는 이대로 삶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곳에서의 매니저 자리를 뿌리치고 나오게 된 이유는 이 회사의 구성원이 온통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모든 이익은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흘러가고 있었다. 가족이라면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한 희생들이 나에겐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었으며 나는 "주말에 두 시간이면 되니까 왔다가" 라는 당연하다는 말투를 견딜 수 없어 결국 마침표를 찍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그 것이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올림픽 의전을 하는 동안 만났던 또 다른 회사는 인건비를 가지고 장난을 하는 행동으로 나를 처음 화나게 만들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일을 총괄하는 팀장이라는 사람이 한낱 파트타이머 일지도 모르는 우리들 앞에서 매니저인 우리의 담당자를 하대하는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여행사에 대해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금 더 감정이입해서 바라본 그들의 모습이었지만 직원의 이름을 야 라는 한 글자로 아무렇게나 뱉을 수 있는 그 팀장 아래에서 견뎌내는 직장생활은, 그 팀장 뒤에서 수없이 쏟아지던 직원들의 뒷담화와 컴플레인은 그 회사의 미래를 비춰주는 것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종종 몇 푼도 안되는 돈 때문에 자존심을 팔고 사람을 짓밟기도 한다는 것을 그 경험이 알려주었다. 돈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돈 몇 푼이 아쉬워서 정당한 나의 고용 방식을 조목조목 비난하며 시간을 끌던 그 여자와의 전화 통화를 끝으로 나는 그 사람의 가정과 장차 자라게 될 그녀의 아이가 어떤 성격으로 자라게 될지를 생각했다. 보고 자라는 일은 스폰지처럼 빠르고 치명적인 일이기에.

무슨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증거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을, 해야할 말과 자신의 권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배웠다.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된 회사는 기획자의 역할이었다.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은 무척이나 액티비티하고 다양한 경험을 선물해주는 일이었지만 행사가 끝날 때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밤샘과 수면부족 그리고 엄청난 스트레스에 대한 무게는 덤과도 같은 일이었다. 일의 힘듦은 견딜 수 있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수의 아무렇게나 구겨진 감정의 쓰레기들을 가만히 맞고 있어야 하는 일과 상대의 의견을 들으려는 태도없이 무조건적으로 찍어 누르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펴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부당한 대우나 상황에 따져 물었을 때 그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대답하는 태도'와 상대의 가치관은 상관없다는 듯 나의 남자친구의 경제력에 대해 평가하는 그래서 결론은 다른 좋은 남자(=돈 많은 남자)를 만나라는 사고를 가진 사수를 매일 같이 겪으며 나는 이 회사 또한 오래 다닐 수 없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지막까지도 직원이 사직서를 내는 이유는 중요하지 않고 사직서를 받는 것만이 중요한 회사와의 마침표를 끝으로 나는 아주 시원하게 제주행 비행기를 끊었다. 3년이 넘는 대학생활동안 나를 안으로 넓어지게 해준 그 곳에 간다는 것은 내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자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산발적인 경험들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주머니 사정으로 쫓기듯 선택한 일은 보이는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과 가족 경영의 회사는 조금 더 신중하게 바라보자는 것, '무언가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회사를 조심하라는 것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회사를 조심하라는 것. 한 달 전 대표님과의 면담은 '도망치는 것이 답은 아니다'라는 결론이었지만 나는 이제야 그 결론에 반론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뀌지 않을 신념을 가진 사수, '왜'라는 본질이 없는 회사, 그 어떠한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 상대의 가치관을 존중하지 않는 회사에서도 과연 견디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말이다. 도망이 아니라 그만두는 용기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고 씩씩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이내 아쉬울 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왜 일을 하는지'의 이유가 힘듦을 견딜 수 있는 용기가 되는 사람이지만 과연 지금까지의 회사들이 그 이유에 답을 할 수 있는 회사였는지 물었을 때 그 모두가 침묵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회사로서의 자연스러운 생리이지만 그 것이 '왜 일을 해야하는지'의 이유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이제야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생겼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로가 성숙해지는 관계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