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쓰는 일기

진작 그만둘 걸 그랬습니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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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정식으로 내기 전, 나는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먼저 지르고 말았다. 매번 약한 마음으로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내가 외부의 힘을 빌어서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고, 그 누구보다 쉼이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벌써 3일째 노숙을 하고 계셨고 아마도 앞으로 4일을 더 그렇게 차가운 공기를 온 얼굴로 맞아가며 대전역 앞에서 시위를 하고 계시겠지만 나는 이 무거운 마음을 안고 기어코 제주로 가야만 했다. 내가 살아야만 타인에게 던지는 시선도 가능하다는 것을 여행 중 만난 언니에게서 배웠다. 그 메세지를 잠시 공유하자면 이러했다. 언니는 서호주로 향하는 비행기의 안내방송을 평소처럼 아무생각없이 듣다가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위급 상황시, 천장에서 떨어지는 산소 마스크를 먼저 쓰시고,

주변의 노약자들의 마스크 착용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과 그 가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우리나라의 사고로는 조금 의아할 수도 있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것은 개인의 삶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나 역시도 타인을 위한, 타인에게 보여지는 삶을 위해 오랫동안 학습되어 왔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 시선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나를 나로서 살아내기 위해 나는 지금까지 혼자하는 여행을 해왔다는 것을 언제나 여행이 끝나는 시점에서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생각 할 시간이 필요했다. 반 년이라는 시간동안 참고 있던 퇴사 생각을 비로소 풀어놓은 것은 나에게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을 전혀 주지 못하는 일에 대한 강요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상대의 가치관을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짓밟는 상사 때문이었다. 창의적인 생각을 해야하는 일은 일말의 자유로운 사고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지난 반년동안 미뤄두었던 생각을 해야만 했다. 그것은 내가 더 먼 길을 걸어가기 위함이었으며 또 안으로 넓어지기 위함이었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식지않는 애정과 동력을 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1년 전 제주에서 마주했던 거짓말같은 석양을 보고 싶었다. 그 석양이 차오를 때 즈음에 턱 끝까지 숨이 차도록 달리면서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다가 뜨거운 무언가가 뺨을 타고 흐른다면 그 것도 좋을 법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본인의 주머니를 털어 나의 길을 오랫동안 응원해주던 친구에게 마지막이라는 핑계로 다시 신세를 지며 지친 머리를 기대고 싶었다. 설렘만큼이나 그 곳에 내려두고 와야할 짐이 많았다. 수화물은 15kg 밖에 안되는데 이미 내 마음의 짐은 중량 초과를 향하고 있었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택시비도 아까워 매번 발을 고생시키는 나였지만 마음의 짐에 대한 수수료에는 관대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따금 공항으로 향하던 일이 꽤나 지긋지긋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서야 내가 가장 그리워하던 시간은 바로 공항에서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정해진 목적지라곤 없는 인생의 막연함을 대신하기 위해 이따금 선명하게 전광판을 채우는 목적지들을 한참동안 올려다보는 습관이 나에게 있었다는 걸, 그 수많은 도시들 중 언젠가 가고 싶은 도시를 잠시나마 상상하는 것이 공항을 찾는 즐거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일지 모를 더 긴 여정을 위해 새 여권을 신청했다.

10월 17일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석양을 보고 있겠다고 다짐했다.



꽤 오랫동안 심장이 뛰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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