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결국 다 잘 될거야
아빠는 오늘 부로 6일째 길 위에서 노숙을 하는 중이었다.
적절한 조치나 준비도 없이 일방적으로 회사 경영 중지를 선언해버린 대표와 회사 경영진들에 대해 아버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길거리 노숙을 감행하며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들 중 한 사람이 나의 가족, 나의 아빠였다. 아빠는 벌써 내 나이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한 회사에 몸 담아 일해왔다. 몇 년 후 있을 퇴직을 생각하며 조금 무리를 해서 대출을 받아 집을 짓던 중이었다. 할머니를 조금 더 따뜻하고 좋은 집에 모시기 위해 오랜 집을 허물고 오밀조밀한 빛이 드는 집을 짓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이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하며 집은 채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중단이 되었고 나머지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아빠는 목수가 되고, 때론 전기공이 되어 지붕 위로, 뒷 뜰로 분주히 움직여 집을 조금씩 세우는 중이었다. 집이 조금씩 형태를 잡아가는 동안 아빠가 회사에 나가는 일은 서서히 줄어갔다. 집이 온전히 형태를 잡아갔을 때 회사에서는 마지막까지 움직이던 기계가 작동을 멈췄고 아버지들은 빨간색 조끼를 꺼내 입으셨다. 아빠는 언제나 기름 때가 묻은 본인의 모습을 보이는게 싫어 회사 앞에 찾아오는 걸 질색하셨지만 서울에 한번도 와보지 않은 아빠는 이미 서울에 삶의 터전을 잡은 나에게 마지막까지 굳게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 아빠는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회사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래미, 여긴 서울 중심은 아닌가봐~ 사람이 별로 없어" 라고 말하던 아빠에게 나는 주말이면 한가해지는 중심가의 모습에 대해 바지런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사실 생계를 위해 삶의 터전으로 향하는 직장인들로 그 거리가 가득 메워지면 그들이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할지를 생각하는 것이, 괴로웠다. 그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고구마 두어개를 급하게 삼켜 목구멍 가득 무언가가 들어찬 기분이었다.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아빠의 속내를 알기에 피곤한 몸을 안고 아빠에게로 향했다. 열명 남짓의 아버지들이 차가운 인도와 회사 앞 어딘가에 바람을 피해 몸을 웅크리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뒷모습을 보이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허기라 느끼며 채우려던 몇몇 아버지들과 나의 아버지 그리고 그와 내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작은 돗자리에 엉덩이를 비비던 기억 그리고 그런 우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바삐 걸음을 옮기던 사람들의 시선은 꽤나 날카롭게 마음에 남았다. 5개월이 훌쩍 넘어가는 파업은 더 잔인해져가고 있었다. 노조의 대표가 되어 힘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사람들에게는 단 한푼의 월급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들은 나오지도 않는 월급 대신 조금씩 모아둔 푼돈으로 서울로, 대전으로 향하는 차비를 마련했고 이따금 헛헛해진 마음을 따뜻한 국밥을 넘기며 채웠을 것이다.
파업은 그렇게 장기전이 되어 아빠는 대전에서 6일째 노숙을 하는 중이라 했다. 침낭 하나 구하기 어려워 얇은 이불을 말아 들고 갔던 아빠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순간,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회사에서 건내준 얼마 안되는 떡값으로 할머니 용돈을 드리고 나머지 돈으로 침낭과 푼돈의 용돈을 아빠에게 건냈다. 언제나 무섭던 아빠가 작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서울살이에 고생하는 나를 생각한다며 몇 번이고 손사레를 쳤지만 내 손이 무안할까봐 엄마는 애써 아빠의 등을 두드렸다. 언제나 손등으로 무언가를 내미는 아버지의 손만 바라보던 내가 이젠 세월의 흔적이 녹아내린 아버지의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얼마 담기지도 않은 봉투를 내밀며 "얼마 안된다. 엄마랑 맛있는거 사먹어" 라고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수만가지의 감정들을 숨기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몇 일전 아빠는 이불 대신 침낭을 들고 대전으로 향했다고 했다. 대전역에서 또 대전 터미널에서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억울한 상황을 알아달라고 사연이 담긴 종이를 건내는 중이라 말했다. 그런 아빠에게 "밥 먹었냐"는 안부로 수많은 감정을 대신해서 건내던 나에게 아빠는 조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딱 너 같은 딸래미가 하나 와서 전단지 건내주는 아빠랑 아빠 옆에 있는 아저씨들한테 음료수를 주고 가는데 그게 그렇게 고맙더라. 아마 우리 보면서 아버지 생각이 났던 모양이지. 그래도 아직 세상이 따뜻하다 딸래미~"
모르는 누군가가 건내준 음료수 하나가 아빠에겐 외로운 싸움에서 얼마나 큰 위로였을지를 잘 알기에 나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오늘 하루, 작은 빚을 졌다.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누구의 움직임도 가볍지 않다는 것을, 결국 그 모든 걸음과 날개짓이 나비효과처럼 더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는 걸 나는 믿는다. 아버지 당신이 오래전 외로워 보이던 외국인 노동자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따뜻한 차와 과일을 대접하고, 먼 길을 가는 할머니를 시장까지 태워주고, 엄마와 함께 어려운 사연을 들으며 ARS전화기로 모금을 하던 모습을 지켜보며 커오던 나였기에 당신에게 오늘 주어진 작은 마음이 언젠가 당신이 누군가에게 베푼 마음이었음을 믿는다. 내가 처음보는 이에게 따뜻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당신이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버지,
당신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던지 나는 당신이 언제나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밤이다.